복지사각에 맞춘 ‘안심소득’, 교회 돌봄사역 연계 땐 시너지효과

김재중 2022. 11. 25.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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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돌봄사역과 맥이 통하는 서울시 ‘안심소득 사업’은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난 2월 22일 시청 브리핑룸에서 열린 기자설명회에서 안심소득 시범사업의 구체적인 계획을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I, Daiel Blake)’의 주인공 다니엘은 영국에서 40년간 목수로 열심히 살았지만 지병이 악화되면서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절박해진 그는 복지급여를 받기 위해 관공서를 찾았고 자신이 일을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음을 처절하게 증명해야 했다. 결국 다니엘은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존중도 받지 못한 채 쓸쓸하게 죽음을 맞게 된다. 복지제도가 있었지만 절차가 까다로워 정작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무용지물이었던 것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이 영화를 보면서 사회 구성원 모두가 소외되는 사람 없이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받을 수 있는 복지모델의 필요성을 절감했다고 토로했다. 서울시가 전국 최초로 ‘안심소득’ 사업을 실시하게 된 배경이다.

한국에서도 ‘근로능력이 있다’는 판정을 받고 복지급여를 받기 위해 무리하게 일을 하다가 유명을 달리 한 안타까운 사례들이 있다. 사업실패와 급격한 채무 증가로 생을 마감하고 숨진 지 한달이 지나서야 발견됐던 성북구 네 모녀 등 서울시에서만 저소득 121만 가구 중 72.8%인 88만 가구가 복지혜택을 전혀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작년 한해에만 저소득가구 76명이 고독사로 생을 마감했다. 까다로운 기준 때문에 문턱은 높고 소득보장 수준도 부족하다보니 복지혜택에서 소외되는 사각지대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7월 4일 '서울 안심소득 시범사업' 출범식에서 오 시장(가운데 오른쪽)이 가구소득이 낮을수록 안심소득 지급액이 많다는 내용의 퍼포먼스를 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기본소득 제도는 소득수준에 상관없이 모두에게 동일한 금액을 지원하는 보편적 복지인 반면 안심소득 제도는 어려운 가구를 선별해 소득이 적을수록 더 많이 지원하는 하후상박(下厚上薄)형 소득보장제도다. 가령 1인 가구의 경우 가구실제소득이 0원일때 안심소득 최대 지원액은 중위소득 85%의 절반인 82만7000원이고 소득이 중위소득의 30%(58만3000원)일때 53만5000원, 소득이 중위소득의 50%(97만2000원)일때는 34만1000원으로 안심소득이 차등 지급된다. 본인 소득과 중위소득의 85%간 차액의 절반만 주기 때문에 근로의욕은 꺾지 않으면서도 저소득층일수록 많이 지원하는 구조다.

안심소득은 또 재산을 소득으로 환산하는 기존 복지제도와 달리 재산과 소득 기준을 각각 보기 때문에 선정절차가 간편하다. 지원대상 범위와 소득보장 수준은 대폭 확대해 폭넓게 지원하도록 설계했다.

서울시는 지난 7월 11일 첫 안심소득 지급을 시작으로 5년간의 정책 실험에 돌입했다. 올해는 1단계로 중위소득 50% 이하 500가구를 대상으로 실시하고, 내년에는 2단계로 기준 중위소득 85%이하 1100가구를 추가 선정해 총 1600가구로 확대할 계획이다.


첫 선정된 500가구 중에는 현행 복지급여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는 비수급 가구가 41.2%로 가장 많고 기초생활수급 가구 34.4%, 차상위계층 24.4%다. 안심소득 대상자로 선정된 강모(61·노원구)씨는 “나이가 있어서인지 일을 찾을 수가 없어서 자존감도 많이 떨어지고 경제적인 부분이 제일 힘들다”며 “안심소득을 받게 되어 관리비 등 주거비로 주로 쓰고 국가자격증을 따려고 노력 중이다. 제게 안심소득은 ‘도전이고 희망’이다”고 말했다. 또 다른 대상자 정모씨(50·구로구)는 “컴퓨터 수리업을 하는데 요즘 스마트폰 때문에 컴퓨터 쓰는 인구가 많이 줄어 경제적으로 어렵고 최근에는 집주인이 집을 비워달라고 해서 많이 힘들다”며 “제게 안심소득은 고마움”이라고 감사를 표했다.

서울시의 안심소득 사업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이 가치있고 존귀한 삶을 살 수 있도록 가난한 이웃을 돕는 교회의 돌봄사역과도 일맥 상통한다.

교회 성도 중 갑자기 직장을 잃거나 일감이 줄어 경제적으로 어려운 이들은 안심소득을 신청해볼 만하다. 지역공동체에서 주민들을 대상으로 돌봄사역에 나서고 있는 교회 목회자나 교역자들이 교회 봉사활동과 안심소득을 접목한다면 시너지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서울 개봉동 사랑교회 강채은 목사는 24일 “교회 성도들의 20~30%가 돌봄 사역 대상이다. 기독교가 촘촘한 네트워크를 갖고 있으니 서울형 안심소득 제도를 주변에 알리고 교회 자체의 봉사 프로그램과 접목시켜 활용한다면 어려운 이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독일 등 소득실험을 진행하고 있는 각국의 학자들도 서울시의 안심소득 정책실험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2019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마이클 크레이머 미국 하버드대 교수는 “안심소득 시범사업은 기존 연구와는 아주 다르게 설계돼 있다. 이번 실험이 엄청난 기회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한다”고 전했다.

서울시는 ‘안심소득 시범사업 연구자문단’을 중심으로 소득보장제도 발전을 위한 국제협력 체계 구축에도 적극 나설 방침이다. 단기적으로 독일, 미국 소득실험 연구기관과 연구자문단 학자간 정기 학술모임을 갖고 장기적으로는 소득보장실험을 진행하거나 관심있는 각국 도시, 연구기관, 학자들이 참여하는 (가칭)‘글로벌 소득보장 네트워크’로 강화해 나갈 계획이다.

서울시는 다음달 6일 오후 2시 복지 사각지대 해소 및 소득격차 완화를 위해 ‘2022년 서울 국제 안심소득 포럼’을 서울 중구 DDP 아트홀2관에서 개최한다. 포럼 주제는 ‘약자와의 동행을 위한 새로운 복지제도의 모색’이다. 각국의 소득보장실험 연구자들이 참여해 서울의 안심소득을 비롯해 미국·핀란드·독일의 소득보장 정책실험 사례를 공유하고 토론하는 시간을 갖는다.

빈곤 연구 전문가인 미국 존스홉킨스대학 로버트 A. 모핏 교수가 ‘소득보장의 필요성’이라는 특별연설을 한다. 이어 서울 안심소득을 주제로 ‘안심소득의 비용과 경제적 효과’ ‘안심소득 기초선 조사결과’가 발표된 후 미국 소득보장제 시장모임(100여개 도시 참여)을 이끌고 있는 마이클 터브스 대표, 핀란드 기본소득실험을 주관했던 연구자인 헤이키 힐라모 교수 등의 토론이 진행된다. 김상한 서울시 복지정책실장은 “이번 포럼이 빈곤과 불평등 해결을 위한 미래 복지시스템을 함께 만들어 가는 국제적 연대의 초석이 될 것”이라며 “올해 포럼을 시작으로 서울시는 해외 도시·학회·연구기관 등과 교류 및 연구 협력체계를 구축하고 지속적인 논의를 위해 ‘글로벌 소득보장 네트워크’를 출범시킬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재중 기자 j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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