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표 입법 0…"경제대통령 외친 그 맞나" 의구심 짙어졌다 [흔들리는 이재명의 민주당 下]
“유능함을 인정받은 이재명이 당에서도 실력을 발휘하겠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8월 전당대회에 출마하며 ‘유능하고 강한 민주당’이란 슬로건을 내걸었다. 당대표 수락 연설에선 “첫째도 민생, 둘째도 민생, 마지막 끝도 민생”이라며 과감한 민생 입법 추진을 약속했다.
하지만 지난 석 달 동안 당내에선 이 대표의 ‘유능’이란 간판에 의구심을 던지는 시선이 많아졌다. 과감한 정책 추진으로 호평을 받았던 경기지사 시절과 달리, 국회에선 입법 성과가 ‘제로(0)’이기 때문이다. ‘이재명표’ 입법 과제가 대부분 공전하면서 이 대표 본인의 한계가 드러났다는 평가도 나온다.
①고금리 등 달라진 경제상황…‘퍼주기 법안’ 잇달아 불발
학계에선 해당 법안이 좌초한 이유로 1년 새 급변한 경제 상황을 꼽는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과 교수는 “고금리가 될수록 돈 빌리기가 어려워지고, 그렇게 되면 신용도가 낮은 취약계층이 불법 사채로 내몰리기가 쉽다”며 “불법 사채에 대한 대책은 필요하지만, 이건 서민금융과 같이 가야 하는 정책”이라고 말했다.
당 일각에선 “포퓰리즘 법안의 전형”이란 말도 나왔다. 익명을 요구한 정무위 소속 민주당 의원은 “표면적으론 서민에 유리한 법처럼 비칠지 모르지만, 한 꺼풀만 벗겨 들여다보면 악법(惡法)”이라고 말했다. 법정 최고금리보다 높은 금리로 체결된 계약을 강제로 무효로 할 경우, 저신용자들의 제2금융권에서조차 대출을 거부당하게 돼 불법사채시장으로 내몰린다는 이유에서다. 이 의원은 “대선 때 경제 대통령을 내세웠던 것에 개인적으로 물음표가 생겼다”고 지적했다.
이 대표가 지난달 국회 첫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핵심 정책 어젠다로 내세웠던 기초연금 확대도 주춤하는 상황이다. 당시 이 대표는 “기초노령연금을 월 40만 원으로, 모든 노인으로 점차 확대하겠다”며 노인 100% 지급론을 폈지만, 최근 민주당은 소득 하위 70%에만 지급하는 규정은 그대로 둔 채 ‘부부 감액제’만 폐지하는 것으로 한 발 물러섰다.
그러나 이마저도 정기 국회 내 통과를 장담할 수 없다. 부부감액제 폐지에만 약 1조 6000억원의 예산이 추가로 소요되기 때문이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요즘같은 삼중고 경제 상황에선, 재정 지출 부작용이 큰 만큼, 정책을 추진할 때는 목적과 대상이 아주 분명해야 한다”며 “전체 일반을 대상으로 지원을 쏟는 복지 정책들은 현 상황에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공당이라면 최소한의 재정 건전성에 대한 고려를 해야 하는데, 이 대표의 핵심 정책들은 상당히 포퓰리즘적 성향을 띄고 있다”며 “이 대표는 이런 정책으로 인기를 끌려 하겠지만, 퍼주기 정책에 대해선 오히려 국민 반감도 적지 않다”고 꼬집었다.
②헤매는 금투세·종부세…단체장식 리더십의 한계?
이 대표는 지난 14일 최고위원회 회의에서 금투세 유예론 가능성을 시사했다가 당내 거센 반발을 맞닥뜨렸다. 기획재정위원회 민주당 간사인 신동근 의원은 다음 날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시행에 노력하겠다”고 공개 반기를 들었다. 이어 당내 최대 의원모임인 더좋은미래가 22일 공동성명서를 통해 “99%의 개미투자자를 위한 증권거래세는 인하, 폐지하고 금투세는 예정대로 시행해야 한다”는 입장을 모았다. 민주당의 한 수도권 의원은 “이 대표는 여론 동향에 너무 민감하게 반응한다”며 “그러니 사사건건 의원들 반발에 부딪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선 기간 때 ‘1세대 1주택자 종합부동세(종부세) 폐지안’까지 검토하며 과감히 추진했던 이 대표의 ‘종부세 완화’ 기조도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민주당이 1주택자 기본공제금액을 한시적으로 14억원으로 올리자는 정부의 특별공제안을 좌초시킨 탓에 “문재인 정부에 비해 뭐가 나아졌냐”는 비판이 나올 정도다. 이에 대해 민주당 관계자는 “1주택자 종부세 폐지를 내세워서 선명성을 드러냈어야 했는데, 이 대표가 당내 여론을 끝내 뚫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 대표의 대선 공약에 포함됐다가 최근 중점 법안에서 제외한 ‘망(網)사용료 의무화 법안’을 놓고도 당내 뒷말이 많다. 넷플릭스·구글 등 글로벌 플랫폼 사업자가 국내 통신기업에 통신망 사용료를 지급하라는 내용인데, “사용료가 결국 소비자에게 전가될 것”이라는 우려가 쏟아지자 이 대표가 스스로 입장을 바꿨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과감한 결단으로 성과를 냈던 이 대표의 리더십이 한계에 봉착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최병천 신성장경제연구소 소장은 “지방자치단체는 상명하복 체제다 보니, 단체장의 개인기가 즉각 성과로 연결될 수 있다”며 “그러나 당 대표는 권위와 세력을 바탕으로 당내 이견을 조율해야 하는 전혀 다른 자리인데, 이런 경험이 없는 이 대표가 한계를 보이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③與 주도 법사위의 벽…이재명 “황당무계한 상황”
이런 상황에 대해 이 대표는 18일 노무현재단 유튜브 방송에서 “황당무계한 상황을 제가 당면하고 있다”며 답답함을 호소했다. 이 대표는 “국회에는 묘한 제도가 있는데, (이 제도가) 다수당이어도 별로 의미가 없는 상황을 만든다”며 “모든 법안이 법사위를 넘어야 하는데, 법사위를 넘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가 상임위 강행 처리를 밀어붙였던 ‘양곡관리법’이 대표적이다. 정부·여당의 반대에도 민주당은 지난달 19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에서 이 법안을 단독처리했는데, 아직껏 법사위에선 ‘법안의 무덤’이라 불리는 법안2소위(체계자구심사)에 갇혀 있다. 이 대표의 대선 공약이던 간호사법도 복지위를 거쳐 법사위에 넘어왔지만, 상정조차 안된 상태다. 민주당 관계자는 “법사위에 많은 법안이 가로막히는 건 사실”이라면서도 “법사위 탓만 할 게 아니라, 여야가 무쟁점법안에 한해선 신속하게 처리하도록 하는 정치력을 발휘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지원 기자 yoon.jiwo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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