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애의 시시각각] '도어스테핑'은 계속돼야 한다
MBC와 충돌로 중단, 바람직 안 해
대통령 초심 새기고 언론도 호응을
선의(善意)로 제도를 만들 순 있으나, 선의로만 제도를 유지하긴 어렵다는 걸 다시금 느낀다. 윤석열 대통령이 출근길 기자와의 문답을 중단한 걸 보며 든 생각이다. 흔히들 ‘도어스테핑’이라 불리는 제도다.
“책상은 다 마련했느냐.” 5월 11일 윤 대통령이 취임 다음 날 출근하며 대통령실 청사 로비에서 기다리던 기자들에게 건넨 말이다. 이후 “취임사에 통합이 없었다”는 질문에 “너무 당연하기 때문에 (취임사에서 뺐는데) 우리 정치 과정 자체가 국민 통합의 과정”이라고 답했다.
한국 대통령제에선 처음이었다. 후대에 역사적 순간으로 기록될 수도 있다. 청와대 시대엔 불가능해서다. 대통령의 출근? 일정이 공개되고 사진·영상으로나 확인할 수 있었다. 대통령이 온종일 관저에 머물러도 알 길이 없었다. 기자와의 문답은 회견에나 가능했다. 얼마 전 문재인 정권의 ‘스핀 닥터’(정치를 잘 비틀어 전달하는 홍보전문가)가 “문 대통령은 각본 없는 기자회견을 했다”며 도어스테핑 중단을 비난했던데, 5년 내내 기자회견 몇 번 안 한 대통령의 참모로서 할 얘기가 아니었다.
사실 실감할지 모르겠으나 도어스테핑은 미국·영국과 비교해도 손색없는 취재 제도다. 어느 면에선 더 파격적이어서 대통령에겐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 대통령이 기자들과 매주 한두 차례 상시로 문답한다는 자체가 이례적이다. 역대 대통령들이 누려 왔던 특권인 ‘권력형 침묵’을 먼저 내려놓았다. 윤 대통령이 사정을 알았어도 한다고 했을까 싶을 정도다.
미국·영국과 비교하면 확연하다. 우선 백악관 출입기자단(The White House press corps)의 구성부터 보자. 백악관 브리핑룸의 좌석은 49개로 65개 언론사에 배정돼 있다. AP·로이터통신, CNN·폭스 뉴스, 뉴욕타임스·워싱턴포스트 등 소속의 베테랑 기자들이다. 대부분 여러 정권에서 백악관을 출입했다. 8명의 대통령을 취재하며 40여 년간 백악관 출입기자였던 헬렌 토머스가 썼듯 “사실 보도에 관한 통제는 대통령이 바뀌면서 항상 있었던 단골 메뉴였다”(『백악관 맨 앞줄에서』)는 걸 안다. 이들도 대통령과 수시로 문답하진 않는다. 언론과 싸우길 즐기는 트럼프가 예외적인 경우고, 바이든은 “드물게(few)만 할 뿐”(폴리티코)이다. 영국엔 ‘로비’(The Lobby)로 불리는, 의회 내 공간(로비)에 특별히 접근할 권한이 주어진 400여 명의 기자군이 있는데, BBC 등의 내로라한 사람들이다. 이들도 총리와 주기적으로 만나지 않는다.
도어스테핑이 얼마나 돌출적인지 느껴지나. 여기에 더해 덜 위계적이기까지 하다(완곡어법이다). 질문하는 기자들 대부분 대통령실 취재 경험이 없거나 일천하고, 기자 경력 자체도 길지 않다. 열정적일 순 있으나 경험과 시야가 한정될 수 있다. 여의도 취재의 연장선이다. 기자들로선 대통령과의 문답이 쟁취한 게 아니라 주어진 거라 관성대로 했을 것이다. 이러는 사이 대통령 입장에선 본인 잘못이 큼에도 선의나 진의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고 느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도 지속한 건 본인 말대로 의지였을 것이다. “도어스테핑 때문에 지지가 떨어진다고 당장 그만두라는 분들이 많이 계셨지만, 그거는 제가 용산으로 대통령실을 옮긴 이유이고, 새로운 대통령 문화를 만들어내는 과정이기 때문에….”
MBC와의 충돌은 윤 대통령에겐 ‘선의가 악의로 돌아온’ 일종의 임계점이었을 수 있다. 분명 MBC의 대통령직에 대한 배려는 부족했다. 이럴 때면 대통령들은 격발하곤 했다. 클린턴이 기자들이 공보담당관실로 가던 복도를 금지구역으로 정했는가 하면(그러다 풀었다), 부인은 기자단을 백악관 밖으로 내보내려고 했다.
그래도 ‘새로운 대통령 문화’를 만들 기회를 이렇게 날려버릴 순 없다. 윤 대통령은 초심을 되새겨야 한다. 기자들도 함께 ‘역사’를 만들 책무가 있다. 어떤 식으로든 대통령과 기자들의 문답은 계속돼야 한다.
고정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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