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병주의 직격인터뷰] "이태원 참사 명단 공개, 철저하게 유가족 입장에서”
'트라우마 전문가' 오강섭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이사장
지난 17일에는 이태원 참사 유가족ㆍ부상자를 위한 진료연계센터가 문을 열었다. 오강섭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도 참여하고 있다. 그가 이사장은 맡은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참사 발생 다음 날 참사 현장 영상 유포와 혐오 발언을 하지 말아 달라는 성명을 신속히 발표하기도 했다. 지난 22일 강북삼성병원에서 오 교수를 만났다. 이날 참사 유가족들은 처음으로 공개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의 진정한 사과와 책임 있는 진실 규명을 촉구했다. 오 교수는 “집회, 추모시설 마련 등 모든 활동은 철저하게 유가족들 입장에서 진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는 물론 모든 국민이 책임을 나눠서 공감력을 발휘해야 사회적 트라우마를 극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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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선의 치유법은 국민의 공감, "아직 살 만한 곳" 함께 나눠야
누구나 희생자 될 수 있어… '내 일 아니다'는 생각에 2차 가해
영상·뉴스만으로도 트라우마 겪어, 사회적 불안감 확산 막아야
유족·부상자들의 소통공간 필요… 국가트라우마센터 정비해야
」
SNS의 무분별한 보도 자제해야
A : “기본적으로 이번 참사가 거기에 있었던 사람들의 잘못이라는 인식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2차 가해는 누구나 처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는 걸 고려하지 않은 무분별한 행위다. ‘왜 내가 낸 세금 희생자들이나 유족들에게 써야 하냐’는 태도 역시 마찬가지다. 교통신호를 지키며 차를 몰거나 보행을 하던 사람이 사고를 당했는데, 왜 그 길을 가다 사고 났느냐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이태원 그 길에 있던 사람들의 잘못이 아니라는 생각이 기본이 돼야 한다.” 최근 희생자 명단 공개에 대한 논란이 컸고, 아직도 그 명단은 희생자 유족들의 요청이 있을 경우에만 삭제되고 있다.
A : “희생당한 사람들은 내 이름을 어떻게 공개하라 하지 말라 얘기할 수가 없다. 그런데 유가족들은 입장 표명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내 가족이 이렇게 안타깝게 죽었는데 애도하기 위해서 명단을 공개하겠다고 할 수 있다. 한데 제3자가 판단하는 건 유가족들을 위해서도, 희생자들을 위해서도 맞지 않는 일이다. 일단 명단을 공개해 놓고 삭제를 원하면 연락하라는 건 이해가 안 되는 행위다.” 명단을 공개한 곳도 언론을 자칭한다.
A :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언론을 향해 재난보도준칙을 준수해 달라고 요청했다. ‘취재보도 과정에서 피해자 명예와 사생활 등 개인 인권을 보호하고 사회적 혼란이나 불안을 야기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했다. 정부 관계들과의 미팅에서도 이런 의견을 전달했더니 개인 언론을 자칭하는 유튜브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제하기 힘들다고 하더라. 사회적 공감대 확산을 통해 많이 좋아지고 있지만 지속적인 자정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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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족 얘기 들어주는 게 핵심”
Q : 추모 공간을 계속 유지하느냐 마느냐를 가지고도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A : “이런 일이 생기면 유가족들이나 관련인들은 ‘이 세상이 정말 위험하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멀쩡한 애가 놀러 갔다가 집에 안 들어왔으니까 굉장히 사회에 대해 안 좋은 생각을 갖게 된다. 그분들한테 아직 사회가 안전하진 않더라도 살만한 곳이라는 위안을 줘야 한다. 추모 공간 역시 그런 의미에서 소통의 장소가 될 수 있다. 그 공간을 통해 자신의 억울한 심정을 공식적으로 토로할 수 있다. 정치적 논리를 떠나 유가족의 입장에서 판단해야 한다.”
Q : 이태원 참사를 계기로 주말마다 집회가 이어지고 있다. 트라우마 확산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A : “집회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집회에서 사건 당시의 사진들을 노출하는 식의 일은 없어야 한다. 자꾸 아픔을 되새기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제일 먼저 해야 할 것은 부상자나 유가족의 얘기를 잘 들어주는 일이다. 집회 역시 그 사람들이 얘기할 수 있는 장이 될 수 있다.” 이번 참사의 경우 현장에 없었던 사람들에게까지 미치는 불안감이 크다.
A : “현장에 없었는데 뉴스나 SNS를 통해 참사 관련 소식과 영상을 접해서 느끼는 충격이 현장에 있던 사람들과 차이가 있다고 볼 순 없다. 개인이 느끼는 충격의 차이는 개인마다 다르다. 참혹한 장면을 계속 바라보면 분명히 뇌의 공포 중추를 자극한다. 이 때문에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PTSD)로 진행될 수 있다.”
오랜 시간 후에도 ‘스트레스 장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여부는 어느 시점에 판단할 수 있나.
A : “대개 1∼3개월 이내에 증상이 생기지만 한참 뒤에 생기는 사람들도 많다. 그 전까지는 경황이 없어 자기를 돌보지 못하다 한참 뒤에 고통이 오는 경우가 있다. 깜짝깜짝 놀란다거나 안 좋은 장면이 자꾸 떠오르는 현상, 불면증과 악몽 증상이 대표적인데 우울해지거나 화를 잘 내게 되기도 한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가 참사 발생 하루도 지나지 않아 영상유포 혐오 발언을 하지 말라는 성명을 발표했는데, 어떻게 가능했나.
A : “세월호 참사 이후에 학회 안에 재난정신건강위원회(위원장 백종우 경희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를 만들었다. 참사 이튿날 아침 급하게 연락이 와 성명서를 작성하자고 했다. 코로나19가 발생했을 때도 심리방역지침을 냈었다. 전염병의 창궐도 재난으로 생각해야 하는데, 격리 상황이 발생하고 급속하게 퍼지니 많이 두려워했다.” 사회적 재난에 따른 트라우마에 대처하기 위한 국가적 장치는 어떻게 돼 있나.
A : “보건복지부 국가트라우마센터가 중심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국립정신건강센터 안에 국가적으로 트라우마를 다룰 국가트라우마센터를 만들었다. 그리고 각 지역의 담당 사무를 보는 정신건강복지센터가 있는데 상담 등 실무를 맡고 있다. 저 역시 거기에서 활동한 바 있는데, 재난이 발생할 경우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일이 많다. 트라우마를 겪는 사람들과의 의사소통을 위한 사회적 지원, 그리고 신체적ㆍ정신적 부분을 포괄하는 의료적 지원이 모두 필요한데 인력이 너무 부족하다.”
사회·의료적 재난지원 시스템 빈약
인력 충원만 하면 되나. 구조적인 문제점은 없나.
A : “국가트라마센터를 제대로 만들어야 한다.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재난이 자주 생긴다. 코로나19 역시 사회적 재난으로 봐야 한다. 그로 인한 트라우마도 있는데, 마치 이태원 참사처럼 큰 이슈가 생길 때만 트라우마가 있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리고 재난이 생길 때마다 이를 담당하기 위한 하부 센터가 만들어진다. 이제는 재난 지역에 한시적 센터를 만들기보다 정부가 단일적 센터를 구성해 이태원 참사 같은 상황이 발생하면 신체적인 의료 출동팀이 먼저 일단 출동을 하고, 이후 정신과 의사와 사회복지사 등이 참여하는 심리지원팀이 출동해서 조치해 주는 방식으로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지역 보건소 차원에서 감당할 수 있는 없는 상황들이 발생하고 있다.” 법률적으로 필요한 보완책은.
A : “외국의 경우 사법입원이라는 게 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심해질 경우 법원에서 입원 여부를 판단하는 제도인데 현재 우리나라는 법적으로 마련돼 있지 않다. 대신 권역별 정신응급의료센터를 잘 운영하면 되는데 현재 두 개밖에 없다. 확충 작업을 진행 중인데 잘 안 되고 있다. 일차적으로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상담을 받고 치료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의료센터를 연결해주는 방식이 확장돼야 한다.”
본인 자신의 노력만으론 한계
Q : 희생자 유족이나 부상자를 위해 주변에서 개인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A : “아픔에 공감하는 게 중요하다. 공감도 3가지 단계가 있는데 우선 그 사람의 마음을 알아야 한다. 저 사람이 슬프겠다고 하는 생각이다. 같이 슬퍼해 주는 감정적인 공감이 2단계다. 마지막으로 공감적 배려가 필요하다. 각자의 행위나 물질적인 지원이다. 슬퍼하는 친구에게 밥을 산다거나 힘든 사람의 집 청소를 해주는 것도 좋다. 세월호 참사 때도 이런 식을 많이 사람들이 공감하며 아픔을 나눴다. 추모장소의 자원봉사 역시 좋은 공감의 표현이다. 사고는 발생했지만 이렇게 도와주는 사람들이 많아서 세상이 살만한 곳이라는 생각을 갖게 해 줘야 한다. 최선의 치유법이다.”
Q : 부상자들이나 희생자 유가족들에게 권유하고 싶은 트라우마 극복 방법은.
A : “본인 스스로 노력으로 극복할 수 있는 정도가 한정돼 있다. 그렇다고 억지로 검사받으라고도 할 수도 없다. 국가트라우마센터 통합심리지원단에 연락해서 자신의 상태에 대해 상담받을 것을 권유 드린다. 어떤 치료가 필요한가 의논해보고 국가의 지원을 받아 치료받으시길 바란다.”
문병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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