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팀 주장! 손흥민이 런던에서 보내온 아주 멋진 당부
Q : 지금 한국은 어디를 가나 손흥민 선수 얼굴로 가득해요. 패스트푸드점, 정류장, 카페, 은행 등. 손흥민 ‘메타버스’에 갇힌 기분이 들 정도죠
A : 그래서 좋은 것 맞죠? 질리신 건 아니죠(웃음)? 오늘도 대표팀 주장 단체 채팅방에서 ‘인증샷’을 받았어요. 편의점 라면 사진이 “흥민아, 잘 먹을게”라는 말과 함께 왔더라고요. 후배들이 커피잔과 자기 얼굴이 나오게 찍은 사진을 보내기도 하고요.
Q : 정원에 앉아 있는데 안에서 이야기와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더군요. 오늘 발표된 유럽 축구 선수 상 ‘발롱도르(Ballon d’or)’ 11위 수상을 축하하는 이야기도 들렸고요
A : 꾸준히 함께하는 스태프들이다 보니 항상 만나면 반가워요. 좋은 에너지를 주는 사람들과 함께라면 항상 웃으며 일할 수 있죠. 그들이 제 경기를 보러 오면 그 자체로 좋은 경기를 펼칠 수 있는 동력이 돼요.
Q : 손흥민 경기를 ‘직관’하는 건 한국 축구 팬들의 꿈이기도 합니다. 확실히 한국 팬을 보면 힘이 나나요
A : 엄청 힘이 되죠! 경기력에도 영향을 미치고요. 토트넘 홈구장에서 경기할 때면 특히 많이 보이는데 정말 응원이 피부로 느껴져요. 영국에서 경기를 뛰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만큼이요.
Q : 지난해에는 서울에서 만났습니다. 7년째에 접어든 런더너 생활은 어떤가요
A : 언어를 비롯해 문화적인 측면에서는 많이 익숙해진 것 같아요. 맨체스터 같은 지역에서 쓰는 단어를 사용할 때면 팀원들이 ‘런더너 다 됐다!’고 해요. 아직 피시앤칩스는 못 먹어봤지만요.
Q : 그건 좀 심각한데요(웃음)
A : 그렇죠? 다들 놀라요. 아무래도 식단이 거의 정해져 있으니까요. 경기를 마친 뒤에는 몸에 좋은 걸 먹어야 하는데 튀김은 거의 금지 품목이거든요. 제 ‘집돌이’ 성향도 한몫했을 테고요.
Q : 그럼에도 런던을 오가면서 발견한 좋아하는 풍광이 있다면
A : 전 런던 날씨가 좋아요. 많은 분이 런던 날씨가 우울할 거라고 예상하는데, 오히려 눈도 많이 내리고 추웠던 곳은 독일인 것 같아요. 전반적인 느낌이나 오래된 건물이 풍기는 분위기가 아름다운 도시라고 생각해요. 물론 비바람이 불지 않는다는 전제하에서!
Q : 버버리는 영국을 대표하는 브랜드입니다. 버버리 앰배서더가 됐다는 소식을 들은 토트넘 선수들, 특히 해리 케인을 비롯한 잉글랜드 선수들의 반응이 궁금한데요
A : 일단 놀리죠. 저희는 축하할 일이 있거나 고마울 때도 무조건 놀리거든요(웃음). 마침 지난 6월에 웨일스 출신인 벤 데이비스의 결혼식이 있었는데요. 결혼식에 어떤 옷을 입고 갈 거냐고 묻길래 “당연히 버버리에 가서 사야지”라고 했더니 “오! 모델은 역시 다르다”면서 놀리더라고요. 요즘 ‘버버리 모델’로 불리고 있습니다. 다들 장난꾸러기예요.
Q : 지난 7월에 성사된 토트넘 홋스퍼의 내한은 올여름 한국에선 즐거운 뉴스 중 하나였습니다. 선수들뿐 아니라 콘테 코치와 라비 구단주까지 한국을 찾았죠. 직접 공항에 마중을 나갔어요
A : 사실 고민스러웠어요. 입국하는 선수들에게 쏟아져야 할 관심이 제게 올까 봐 걱정되기도 했고요. 그런데 막상 가고 나니 잘했다 싶더군요. 뜨거운 환대를 저도 함께 느꼈거든요. 선수 한 명 한 명에게 환호하고 소리 질러주셔서 덩달아 자랑스러웠죠.
Q : 동료들이 내 고국을 찾아주는 것은 각별한 경험이겠죠. 다른 선수의 고향 중 찾아가고 싶은 곳이 있나요
A : 함부르크랑 레버쿠젠 때도 팀 선수들이 내한했었는데 정말 감사했어요. 음, 이런 생각은 들어요. 다른 어떤 곳을 찾아가도 토트넘 선수들이 한국에서처럼 환영받을 수 있는 곳은 없지 않을까요. 공항에 입국하는 순간부터 일주일 내내 정말 열기가 뜨거웠거든요.
Q : 톰 홀랜드, F1 선수 랜도 노리스, 테니스 신성 에마 라두카누까지. 모두 토트넘의 팬임을 밝혔어요. EPL 여러 구단 중에서 내가 생각하는 토트넘이라는 팀의 매력은
A : 어릴 때부터 가족이 구단의 팬이어서 자연스럽게 응원하게 된 경우도 있고, 특정 선수를 응원하기도 하겠지만 우선은 좋은 선수들이죠! 저희 팀만의 에너지가 확실히 있어요. 선수끼리 호흡도 잘 맞고, 다양한 색이 잘 조합돼 있죠. 잘생기고 젊은 선수가 많기도 해요. 저는 제외하겠습니다(웃음).
Q : 스포츠를 흔히 약육강식의 세계라고 표현합니다. 동의하나요? 동의하는 부분이 있는 반면 달리 표현하고 싶다면
A : 축구는 냉정한 스포츠예요. 아주 가깝고, 함께 밥 먹고 수다 떨던 친구도 필드에 들어서는 순간 눈빛부터 달라지죠. 다툼도 많고, 치열해요. 그런 면에서는 약육강식의 세계라는 표현이 맞지만, 또 경기를 마치면 서로 어깨를 두드려주며 안을 수 있다는 것. 전 이게 축구라서 가능한 멋진 세계라고 생각해요. 냉정하지만 서로 존중하죠. 다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얼마나 노력한 끝에 이 자리까지 왔는지 누구보다 잘 아니까요.
Q : 팀의 정신적 지주였던 잔 피에로 코치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처럼 살다 보면 소중한 사람을 잃거나 떠나보내는 일이 생기곤 해요
A : 되게 힘들었어요. 그분을 정말 좋아했거든요. 소식을 들은 날 저희는 물론 감독님도 힘들어해서 그날은 훈련을 쉬었을 정도죠. 그런데 누군가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코치님은 우리가 더 잘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할 거라고. 이렇게 슬퍼하기보다 좋은 마음으로 보내야 한다고. 쉽지는 않겠지만 앞으로도 나를 응원해 줄 분을 자랑스럽게 만들고 싶다는 생각은 들었어요. 제게 보낸 메시지들을 다시 읽어보기도 하고요.
Q : 주변 사람으로부터 배운 것이 있다면
A : 잔 피에로 코치는 엄청 강한 분이었어요. 정신은 물론 육체적으로도요. 중요한 경기를 앞두고 있을 때면 “우리에게 가장 쉬운 날은 어제였다(The only easy day was yesterday)”며 선수들의 한계를 항상 그 이상으로 끌어내려 했죠. 콘테 감독에게선 ‘위닝 멘탈리티(Winning Mentality)’를 많이 배워요. 모든 게 승리에 초점이 맞춰져 있죠. 이겼을 때는 정말 꼬마처럼 좋아하고 그 기쁨을 선수들에게 돌리지만, 졌을 때는 누구보다 화내고 가장 먼저 뒤를 돌아봐요. 순수하게 축구를 좋아한다지만 결국 이기기 위해서 하는 게임이거든요. ‘이긴다는 것’의 의미를 가장 확고하고 간절하게 느끼게 해준 분들이에요.
Q : 선수들에게 정신력은 항상 중요한 문제죠. 특히 필드 위에서 강한 모습을 보여줘야 하고요. 경기장 밖에서도 약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어색한가요
A : 전혀 주변에 드러내지 않는 편이에요. ‘힘들다’는 말은 아버지에게도 해본 적 없는 것 같아요. 어릴 때부터 대표팀 생활을 했고, 힘든 모습을 보이면 안 되는 사람처럼 여겨졌으니까요. 타고난 낙천성도 한몫했죠. 좋은 일은 오래 간직하되 안 좋은 일은 최대한 빨리 잊는 편이거든요. 안 좋은 상황에서도 좋은 면을 보려 하고요. 그리고 힘들어하다가도 막상 운동장에 들어가면 다 잊어요. 그 순간만큼은 신나게 뛰어놀게 되니까.
Q : 다른 사람을 실망시키는 것과 자신에게 실망하는 것. 둘 중 어떤 게 당신을 더 두렵게 하나요
A : 제가 만족하지 못했는데 다른 사람이 만족할 수 있을까요? 자책할 만한 상황에서 괜찮다고 말해주는 건 저를 너무 관대하게 봐주는 거예요. 그런 마음도 감사하지만, 저는 사람들이 제게 기대한 만큼을 보여주고 싶어요. 그러려면 우선 자신에게 실망하지 말아야죠.
Q : ‘손흥민’과 ‘대한민국’는 마치 한 단어 같아요. 특히 월드컵을 앞두고 있는 지금은요. 대표팀 경기를 보는 국민들이 어떤 것을 중점적으로 봐줬으면 하나요
A : 퍼포먼스는 오로지 선수들의 몫이기 때문에 그 부분에 있어 어떻게 봐주었으면 좋겠다고 바라는 건 없어요. 물론 컨디션에 따라 잘하고 못하고는 분명 나눠지겠지만요. 다만 선수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정말 노력하거든요. 식단과 수면 시간, 모든 생활 루틴을 그 중요한 순간에 실수하지 않기 위해 맞추고요. 경기를 잘하는 것은 우선적으로 선수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모든 면에서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한 번쯤 생각해 주셨으면 해요. 저는 모든 선수가 격려를 받았으면 좋겠어요. 축구뿐 아니라 모든 스포츠 선수가요. 이미 충분히 많은 응원을 보내주고 계시지만요.
Q : 대표팀 주장이라는 큰 산을 한번 넘고 나면 어떤 사람이 돼 있을 것 같나요
A : 주장을 하면서 인간으로서도 축구 선수로서도 많이 배웠어요. 처음에 주장을 맡았을 때는 겁이 많이 났어요. 큰 책임감을 지는 자리에 있어야 한다는 게. 그런 순간에도 두려움 없이 끌고 가야 많은 사람과 함께 갈 수 있겠더라고요. 더 높은 산, 더 큰 산을 향해 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Q : 아버지 손웅정 감독의 자전 에세이 〈모든 것은 기본에서 시작한다〉에는 전설적인 선수 요한 크라위프의 ‘내가 만난 월드클래스 선수 중에 인성이 나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는 말이 인용됩니다. 하지만 요즘은 실력과 인격성이 비례할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은 것 같아요. 인격의 중요성에 대해 스스로 공감하거나 지지하는 바가 있나요
A : 내가 지금 이런 위치니까 인간적으로 더 훌륭하게 잘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나 노력하지는 않아요. 다만 많은 분이 제 성격적 면모를 좋게 봐주신다면 그건 부모님 덕이 가장 큽니다. 가장 비싸게 치러야 할 수업을 어떻게 보면 저는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받은 거죠. 두 분이 삶을 통해 직접 보여준 부분도 있고요. 그렇다 보니 좋은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게 된 것 같아요.
Q : 크리스마스와 새해는 리그가 가장 바쁜 시기죠. 그럼에도 꼭 사수하고 싶은 시간이 있다면
A : 새해를 한국에서 맞이한지 정말 오래됐어요. 유럽보다 크리스마스 분위기는 덜하겠지만 그래도 한 번쯤 한국에서 새해를 맞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언젠가 실컷 할 수 있는 순간이 올 테니 지금은 열심히 뛰어다니며 순간의 행복을 맘껏 누리려고요.
Q : 여전히 행복한 거죠? 축구할 때
A : 살면서 행복한 순간을 행복한 것인지 모르고 놓치는 순간이 진짜 많거든요? 저는 축구하는 게 너무 재미있어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것을 할 수 있어서 정말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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