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된 적자’ 이론 증명될까…창사 이래 첫 흑자 꿈꾸는 쿠팡과 배민

최창원 매경이코노미 기자(choi.changwon@mk.co.kr) 2022. 11. 24.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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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3월 11일(미 현지 시간) 김범석 쿠팡Inc 의장이 미국 경제 방송 매체 CNBC와 인터뷰했다. 쿠팡 미국 뉴욕증권거래소(NYSE) 상장에 맞춰 진행된 만큼 금융 시장에서도 주목했다. CNBC 앵커는 ‘흑자전환’ 시기와 관련해 세 차례 질문을 했다. 김 의장은 “장기 투자자들과 함께해 행운이라고 생각한다”며 엉뚱한 대답을 내놨다. CNBC 공식 유튜브 채널에는 관련 내용이 삭제된 영상이 올라왔다.

시장 반응은 부정적이었다. “흑자전환 가능성이 없다고 보는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왔다. 쿠팡은 ‘계획된 적자’를 강조했다. 점유율을 높이는 과정에서 비용 지출이 늘었고 적자는 불가피했다는 설명이다. 반대로 말하면 충분한 점유율과 매출만 확보하면 수익은 자연스레 따라온다는 의미였다.

뉴욕증권거래소 앞에 걸린 쿠팡 현수막과 태극기. (쿠팡 제공)
▶출혈로 이뤄낸 외형 확대

▷7년간 판관비만 14조원 투입

계획된 적자 이론 증명을 위해 필요한 건 ‘출혈’이었다. 막대한 비용이 인프라 구축, 사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투입됐다. 쿠팡 감사보고서(연결 재무제표 기준)에는 ‘투자 활동으로 인한 현금 유출액’ 항목이 있다. 부동산(물류센터) 취득 등 투자 과정에서 빠져나간 현금 규모다. 로켓배송 출시 이후인 2015년부터 2021년까지 누적 투자 활동 현금 유출액은 2조7878억원에 달한다.

이게 다가 아니다. 같은 기간 누적 판매관리비(영업관리비)는 14조2214억원을 기록했다. 판매관리비는 검수, 입고, 포장·상하차 같은 배송 준비 관련 비용과 결제대행 수수료, 온라인 플랫폼 설계 구축, 마케팅 비용 등으로 구성됐다. 조 단위 매출에도 매출원가, 판매관리비를 제외하면 남는 게 없었다. 그간 영업이익을 내지 못한 이유다.

피투성이 쿠팡에는 믿는 구석이 있었다. 시장점유율 추이다. 적자에도 시장 내 존재감은 커졌다. 쿠팡의 순결제금액 기준 이커머스 시장점유율은 2018년 10% 미만에서 올해 20% 가까이 높아졌다. 나이스신용평가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쿠팡 순결제금액은 32조원, 월 결제자 수는 1830만명이다. 전통 유통업체 SSG닷컴(순결제금액 6조원, 월 결제자 수 310만명)과 비교하면 순결제금액과 월 결제자 수 모두 5배 가까이 차이난다.

그리고 올해 계획된 적자 이론은 반쯤 증명됐다. 쿠팡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올해 3분기 실적 보고서에 따르면, 3분기 매출은 51억133만달러(약 6조7300억원), 영업이익 7742만달러(약 1037억원)다. 특히 흑자를 이끈 건 본업(커머스 사업)이다. 쿠팡은 3분기 커머스 사업에서 2억3922만달러(약 3260억원) 조정 에비타(감가상각 전 영업이익)를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 1억1824만달러(약 1600억원) 적자를 낸 것과 대비된다. 쿠팡은 연간 흑자도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실현 시 계획된 적자 이론이 100% 증명되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쿠팡식 성장 모델의 입증’이라고 평가한다. 정연승 단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소비자 신뢰와 충성도 상승으로 손익 구조가 안정적으로 개선됐다”고 설명했다. 규모의 경제 효과가 본격화된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쿠팡 물류센터가 늘고, 배송 인프라가 구축됨에 따라 배송에 필요한 비용이 절감된다는 의미다. 김 의장은 3분기 실적 발표 자리에서 “현재 쿠팡 물류센터 규모는 축구장 500개 크기에 달한다”고 강조했다.

쿠팡의 흑자는 플랫폼, 스타트업 업계 전반에 희망 섞인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스타트업 초기 목표는 이용자와 점유율 확보다. 이 때문에 스타트업들의 사업 초기 적자는 일반적인 현상이다. 새롭게 시장에 뛰어든 만큼 마케팅, 연구개발, 인건비 등 돈 들어갈 요소가 많기 때문이다. 반면 소비자 입장에서는 처음 보는 서비스인 만큼 지갑 열기가 꺼려진다. 규모와 시기만 다를 뿐 쿠팡식 모델이 플랫폼 스타트업 성장 전략 전반에 내재돼 있다.

익명을 요구한 스타트업 대표는 “소프트뱅크의 대규모 투자를 받은 쿠팡과 시드 투자로 버티는 스타트업을 동일선상에서 비교할 수는 없다”면서도 “적자에도 시장점유율을 높여 이익을 낸 쿠팡 사례를 보며 지금의 스타트업 성장 전략이 틀린 건 아니라고 느낀다”고 말했다.

▶다음 입증 사례 누가 될까

▷외부 변수 수혜 본 배민

‘계획된 적자 이론’을 입증할 다음 사례로 배달의민족 운영사 ‘우아한형제들’이 꼽힌다. 배달 시장은 이커머스 시장만큼 출혈 경쟁이 치열하다.

배달의민족은 2010년 서비스를 시작했다. 2년 뒤 요기요가 세상에 나왔다. 배달 앱 시장 주도권을 두고 경쟁이 펼쳐졌다. 경쟁은 갈등으로 치달았다. 2019년 배민장부 이슈가 터졌다. 배민장부는 배달의민족이 내놓은 입점 사장님용 매출 관리 서비스다. 배달의민족은 배민장부에 각 매장 요기요 매출 정보 관리 기능까지 넣었다. 요기요는 운영 노하우가 남용된다며 반발했다.

양 사 경쟁은 외부 변수로 끝났다. 경쟁 중 요기요가 매각 절차를 밟게 됐다. 모회사였던 딜리버리히어로는 요기요를 시장에 매물로 내놓으면서 에비타 개선에 집중했다. 코로나19로 배달 시장이 커지던 시기였지만 마케팅 비용을 줄였다. 성장 시기 긴축 운영을 펼친 셈이다. 수익성은 개선됐지만 점유율은 하락했다. 2019년 40%에 달하던 요기요 시장점유율은 20%대까지 떨어졌다.

요기요를 떨쳐낸 배달의민족 앞에 쿠팡이츠가 새로운 경쟁자로 떠올랐다. 쿠팡이츠는 단건 배달을 내세웠다. 배달의민족은 곧바로 동일한 서비스 ‘배민 1’을 시작하며 맞불을 놨다. 서비스 품질에서 밀리지 않겠다는 판단이었다.

이 과정에서 출혈 경쟁이 심화했다. 단건 배달은 시스템 특성상 라이더가 많이 필요하다. 라이더 한 명이 주문 한 건만 처리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소비자는 빠른 시간에 따뜻한 음식을 받지만, 회사는 비용 부담이 늘어나는 구조다.

실제로 배달의민족 운영사 우아한형제들 감사보고서(연결 재무제표 기준)에 따르면 2021년 영업비용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건 ‘외주용역비’다. 2018년 562억원이던 외주용역비 규모는 2021년 7863억원으로 커졌다.

비용 부담은 커졌지만 점유율은 상승했다. 시장조사업체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올해 9월 기준 배달의민족 월간 활성 이용자 수(MAU)는 1956만명이다. 요기요(653만명)와 쿠팡이츠(369만명)를 더해도 비교 불가다.

전문가들은 플랫폼 1위 사업자의 특권이라고 설명한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플랫폼 사업에서 충성고객이 생기면, 점유율은 잘 안 바뀐다”며 “소비자는 전환비용을 따지게 되는데, 가격·서비스 등 배달의민족을 압도적으로 넘어서는 앱이 없다면 소비자는 앱을 바꿀 필요성을 못 느낀다”고 말했다. 배달의민족 입장에서는 경쟁사와 동일한 수준의 서비스만 제공해도 고객 이탈 우려를 덜 수 있다는 의미다.

점유율을 한껏 높인 배달의민족은 연간 흑자를 바라보고 있다. 2021년도 사실상 흑자였다. 지난해 우아한형제들 영업손실 규모는 756억원이다. 다만 여기에는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의장이 직원들에게 지급한 개인 주식 1000억원이 ‘주식보상비용’ 명목으로 포함됐다. 주식보상비용은 종업원 급여로 회계 처리되고, 이는 영업비용 증가에 영향을 미쳤다. 주식보상비용 제외 시 2021년 우아한형제들 수익성은 영업이익 243억원이다.

전문가들은 쿠팡과 배달의민족 성장 전략이 큰 틀에서 같다고 평가한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쿠팡과 배달의민족은 적자를 감수하면서도 많은 회원을 모으고, 회원의 앱 충성도를 높인 뒤 수수료·배달비를 인상해 흑자를 기대하고 있다”며 “플랫폼의 성장과 수익성 전략의 시작은 결국 회원을 늘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85호 (2022.11.23~2022.11.29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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