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간 1조6000억 날린 악몽…산업계 물류마비발 셧다운 공포

김기찬 2022. 11. 24.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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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가 24일 집단 운송 거부에 돌입했다. 이날 경북 포항시 남구 오천읍 포항철강산업단지에 화물연대 조합원들의 화물차가 운행을 중지하고 길 옆 도로에 주차해 있다. 연합뉴스


민주노총 산하 화물연대가 24일 집단 운송 거부에 들어갔다. 철도노조와 서울지하철노조는 이날 준법 투쟁으로 가세했다. 서울지하철노조는 30일, 철도노조는 다음 달 2일 전면 파업을 예고한 상태다.

이에 따라 자칫하면 육상 물류의 축인 화물차와 철도가 동시에 멈추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다. 산업계의 물류 동맥이 끊긴다는 뜻이다. 물류가 멈추면 전체 산업의 셧다운으로 번질 수 있어 가뜩이나 어려운 국가 경제에 치명상을 입힐 수 있다.

화물연대는 이날 오전 10시 전국 16개 지역본부별로 총파업 출정식을 열고 운송 거부에 돌입했다. 철도노조는 준법투쟁에 들어가면서 철도 민영화 정책 철회, 공공기관 구조조정과 정원 감축 시도 철폐, 인력 충원을 통한 안전대책 마련 등을 요구했다. 그러면서 '대국민 호소문'을 내고 "본질적으로 시민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두려는 것"이라며 "불편해도 인내하고, 투쟁에 함께 해달라"고 호소했다.

산업계는 비상이 걸렸다. 당장 현대제철 포항공장의 하루 출하물량인 8000t의 철강재가 반출되지 못했다. 이 철강재로 상품을 만드는 기업도 피해를 입게 됐다. 태풍 힌남로로 공장 전체가 침수돼 지금도 복구작업 중인 포항제철은 복구에 필요한 장비와 설비가 반입되지 않아 발을 구르고 있다. 석유화학 업계에선 "집단 운송 거부가 열흘을 넘기면 3000억원의 손실이 날 것"이라는 전망을 했다.

이날 한국경영자총협회와 전국경제인연합회, 중소기업중앙회, 무역협회, 대한상공회의소, 한국중견기업연합회 등 경제6단체는 화물연대의 집단 운송 거부 중단을 호소하는 입장문을 발표했다.

4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역 대합실 전광판에 전국철도노동조합(철도노조)의 준법투쟁(태업) 관련 소식이 안내되고 있다. 철도노조는 이날부터 시간외·휴일근무 거부 등 준법투쟁에 돌입하고, 정부와 코레일의 입장 변화가 없을 시 다음달 총파업을 이어간다는 계획이다. 코레일은 비상수송대책본부를 운영해 신속한 대응체계를 유지하고 역과 열차 안내에 가용 인력을 총동원해 이용객 불편 최소화에 나설 계획이다. 뉴스1


산업계는 물류 마비에 따른 악영향이 예전과 다른, 심각한 양상으로 번질지 모른다는 우려를 하고 있다. 화물연대의 집단 운송 거부가 장기화해서 자칫 철도노조의 파업과 겹치면 육상 물류의 동맥이 절단되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어서다. 이상철 경총 홍보실장은 "지난 6월 화물연대의 파업 때 철강, 시멘트, 자동차, 화학, 전자 등 주력 핵심 산업에서 수 조 원대의 피해가 발생했다"며 "철도까지 파업 대열에 가담하면 물류 우회로조차 막히는 것이어서 그 피해는 어마어마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걱정이 엄살은 아니다. 올해 6월 화물연대가 8일 동안 운송 거부를 했을 때 산업계가 입은 피해액은 1조6000억원에 달했다. 2016년 9월부터 72일간 이어진 철도노조 파업 때는 코레일만 하루 14억원의 손실을 냈고, 산업계 전반에 미친 간접 피해는 엄청났다. 당시 대학 입학시험을 치르는 수험생이 피해를 보는 등 국민 생활에도 큰 불편을 야기했다.

또 물류 동맥이 절단되는 데 따른 파급효과까지 따지면 국내총생산(GDP)의 감소 등 엄청난 손실이 불가피하다. 물류산업의 제약은 생산의 제약으로 번진다. 이는 가뜩이나 꽉 막힌 공급망의 붕괴로 이어진다. 한마디로 산업 셧다운 공포가 몰아치는 셈이다. 여기에다 유통망 교란, 생산비 상승과 같은 국민 경제 전반에 재난급 피해를 준다.

김의준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팀이 2018년 한국지역개발학회지에 발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2016년 철도 파업에 따른 GDP 감소액이 6조2550억원에 달했다. 철도화물 운송서비스 산업 이외에 다른 산업으로 파급된 간접 피해가 막대했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김 교수가 철도파업을 '사회재난'으로 규정할 정도였다.

외국도 물류에 대해서는 정부가 민감하게 반응한다. 올해 9월 17일 미국 철도노조가 파업하려 하자 백악관이 나서 잠정합의문을 끌어내며 파업 돌입 직전에 진정시키기도 했다. 미국 철도노조의 요구사항은 우리와 사뭇 다르다. 가족 돌봄 병가를 인정하고, 응급 의료에 따른 결근 시 해고를 금지해달라는 정도다. 한국에선 기본적으로 보장되는 제도다. 다만 잠정합의안을 조합원들이 부결시키면서 연말 파업 전운이 돌고 있다.

외국의 노조도 정부나 산업계 못지 않게 물류 산업의 경제적 민감성을 안다. 그래서 한국처럼 무기한 파업과 같은 사태는 좀처럼 보기 힘들다. 인플레이션에 따른 임금인상을 요구하는 영국 철도해운노조(RMT)는12월 13일~14일, 16일~17일, 내년 1월 3일~4일, 6일~7일 등 총 8일간 파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파업 일에는 기존 열차의 5분의 1이 운행한다.

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 wol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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