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유가격연동제 판박이 될 납품가격연동제 [최준선의 Zoom-In]

데스크 2022. 11. 24.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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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유가격연동제 폐해 떠안은 소비자
납품가격연동제까지 시행되면 글로벌 경쟁력 상실
반시장적 정책에 따른 경기침체 우려도
서울우유가 우유 원료인 원유의 구매가격을 인상한 가운데 18일 오전 서울 시내의 대형마트에서 한 시민이 우유를 고르고 있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우리나라 우유의 세계에서는 수요와 공급의 원리가 작동하지 않는다. 남아돈다는 우유 가격이 또 올랐다. 지난 17일부터 우유 한팩(1리터)의 소비자가격이 업체별로 180원~250원 올라 이제는 2890~2990원이 됐다. 이로써, 한국 우유는 미국, 독일 등 대부분의 나라들보다 훨씬 비싸진 셈이다.


우유의 세계에서 이처럼 경제원리가 작동하지 않은 이유는 원유가격연동제 때문이다. 2013년에 도입된 이 제도는 낙농가를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우유의 공급과 수요에 관계없이, 우유 생산비가 상승하면 원유 기본가격을 생산비 상승폭의 90~110% 범위에서 인상하기로 하는 제도다. 이 제도 도입의 결과를 요약하면 한국 우유 가격은 일본 다음으로 높고, 원유 소비는 줄어 생산된 우유는 남아돌고, 가공유의 수입은 크게 늘어나는 부조리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2016년부터는 유럽연합, 미국에서 수입되는 우유와 치즈에 붙던 관세가 철폐될 예정이라 유제품 수입은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생산자, 유업체와 오래 논의한 끝에 지난 3일 낙농진흥회 이사회에서 내년부터 원유가격연동제를 폐지하고 이를 대체하는 용도별 차등가격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앞으로는 원유가격을 결정할 때 시장상황을 반영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우유가격연동제 폐해 떠안은 소비자

이번에는 국회가 ‘납품가격연동제’ 입법을 예고했다. 이 제도는 하도급 계약에서 원자재 가격이 오르면 원사업자가 수급사업자의 납품단가를 올려주도록 하는 제도다. 법안에는 원자재 가격이 10% 이상 상승하거나 하락할 경우 납품대금에 연동해 단가를 올리거나 내리는 내용을 약정서(계약서)에 기재하는 것을 의무화하는 내용이 담긴다고 한다. 이 제도는 제품 제조에 쓰이는 원자재 가격은 올랐는데 납품 단가가 그대로면 수익이 그만큼 줄기 때문에 대기업에 제품을 납품하는 중소기업이 꾸준히 요구해 온 제도다. 여야가 각각 유사한 법률을 발의했기 때문에 연내 통과가 유력시된다.


이 제도의 부작용은 원유가격연동제의 그것과 판박이가 될 것임을 어렵지 않게 예측할 수 있다. 먼저 최종 상품·서비스의 가격상승을 초래해 소비자 피해가 발생한다. 가격을 통제하면 시장이 보복한다. 1971년 미국 닉슨 정부는 대중의 인기를 얻기 위해 석유 가격 통제했다. 가격 통제로 수익이 감소한 석유 공급회사가 석유 공급이 축소됐고 석유부족 사태가 발생했다.


2011년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정부는 물가상승을 막기 위해 생활필수품에 대한 가격 상한제를 실시했다. 생산자는 당연히 공급을 축소했고 생필품 부족현상이 발생했다.


가격이 보장되면 납품 중소기업이 혁신을 통한 발전보다는 현재 상태에 머물려고 하는 안주효과로 인한 도덕적 해이가 발생하기 쉽다. IMD 국가경쟁력 보고서(2021년)에 따르면 한국 중소기업의 기업 효율성은 전세계 64개국 중 57위로 글로벌 최하위 수준이다. 현재도 중소기업에 대해서는 중소기업 적합업종제도, 중소기업 제품 구매 촉진 제도, 정책금융 지원, 기술보호 지원, 국내외 판로 개척 지원 등 다양한 지원책이 시행 중이다.


이에 더하여 납품가격연동제까지 시행된다면 비용 인상요인은 원사업자에 떠넘기고 생산비 절감에 필요한 노력은 게을리하게 될 우려가 크다. 생산비용은 계속 상승하고 품질 개선은 미미할 수밖에 없으며, 중소기업의 경쟁력은 더욱 추락할 수 있다. 한국은 이미 대기업에 대한 강력한 규제와, 이에 반비례하여 강력한 중소기업 보호정책으로 인해 중소기업 전반에 중견·대기업으로의 성장을 회피하는 ‘피터팬 증후군’이 만연해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원사업자는 계약서상의 의무조항이 적용되지 않는 해외 수급업체 발굴에 적극적이 된다. 한국 중소기업의 경쟁력 하락으로 국내 산업 생태계가 악화되어 한국 수급업체는 일감 자체를 얻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하게 되고, 고용감소, 정부 지출감소와 무역수지 악화는 GDP감소로 이어진다.

반시장적 정책에 따른 경기침체 우려

한국경제연구원의 납품단가연동제로 인한 경제적 영향 분석(2022년)에 따르면 원자재 가격이 10% 상승하고 이를 납품단가에 반영할 경우, 대기업의 국내 중소기업제품에 대한 수요는 1.45% 감소하고, 해외제품 수요는 1.21% 증가해 국내 총산출은 0.14% 감소한다고 전망한다.


4만7000명(대기업 1만9000명, 중소기업 1만7000명)의 일자리가 감소하고, 실업자는 2만8000명 증가하면서 실업률은 0.2% 포인트 상승할 것으로 추계된다고 한다. 부품가격 상승에 따른 상품가격 인상으로 소비자물가지수가 14% 증가하고, 소비는 0.14% 감소하며, 투자는 0.25% 감소하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정부의 세수입은 0.2% 감소하고 교역조건이 15% 정도 악화되면서 수출이 0.97% 감소한 반면, 수입은 0.46% 감소에 그쳐 무역수지가 10% 정도 악화될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전체적으로 국내총생산(GDP)이 0.29% 감소할 전망이라 한다.


우유처럼 단일 품목이 아닌 수 십만개의 부품이 들어가는 업종에서 이 제도를 시행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지도 의문이다. 소요 부품수를 보면 선박은 10만개, 자동차는 3만개, 핸드폰은 700개에서 1000개 정도다.


이미 ‘납품대금조정협의제도’가 시행 중이다. 이 제도를 강화하면 충분할 것인데, 사인 간의 계약 내용까지 국가가 지정하고 의무화하는 반시장적 정책을 도입한다니, 한국이 자유시장 경제국가가 맞나라는 의구심이 든다. 납품단가연동제는 우유가격연동제처럼 실패가 기정사실화 되어 있는 정책이 될 것이다.


글/ 최준선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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