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평생 험지서 발로 뛰며 복음 전한 선배들, 당신들은 영웅입니다” 은퇴 목회자 발 씻긴 후 입 맞추자… 세족식 눈물바다

박지훈 2022. 11. 24.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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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의 세족식이었다.

행사를 시작하기 전 은퇴 목회자들은 발이 더러워서 창피하다고, 무좀이 있어서 양말을 벗을 수가 없다고, 남의 손에 내 발을 맡기는 게 쑥스럽다고 했다.

김 목사는 23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감리회 목회자에게 호남은 기피 지역"이라며 "다른 지역 교회에 청빙을 받으려고 50대 중반이 되기 전에 호남을 떠나는 목회자도 많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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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필수 기감 호남특별연회 신임감독
연회 소속 원로목사 부부 초청 위로회
김필수(오른쪽) 목사가 지난 11일 전북 군산 비전교회에서 열린 ‘호남특별연회 원로목사 부부 초청 위로회’에서 한 은퇴 목회자의 발을 씻겨 주며 기도를 하고 있다. 비전교회 제공


눈물의 세족식이었다. 행사를 시작하기 전 은퇴 목회자들은 발이 더러워서 창피하다고, 무좀이 있어서 양말을 벗을 수가 없다고, 남의 손에 내 발을 맡기는 게 쑥스럽다고 했다. 하지만 세족식이 시작되자 이들은 하나둘 행사에 동참했고, 행사가 끝날 때쯤엔 눈물을 훔치거나 아이처럼 울음을 터뜨리며 감사의 뜻을 표시했다.

세족식을 연 주인공은 지난달 말 기독교대한감리회(기감) 호남특별연회 신임 감독에 취임한 김필수(63) 목사였다. 김 목사는 지난 11일 자신이 시무하는 전북 군산 비전교회에서 연회 소속 원로목사 17명의 발을 차례로 씻겨준 뒤 이들의 발에 입을 맞췄다. 한평생 발로 뛰며 복음을 전한 선배들에게 존경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원로목사들 발등에 입을 맞춘 뒤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은 목사님을 정말 사랑하실 겁니다.”

행사의 명칭은 ‘호남특별연회 원로목사 부부 초청 위로회’였다. 그런데 왜 김 목사는 이런 행사를 열었던 것일까. 그 이유를 알려면 한국 감리교회 지형도에서 호남 지역이 갖는 의미부터 살펴야 한다. 기감의 국내 11개 연회 가운데 호남특별연회는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 규모가 가장 작은 ‘특별한 연회’다. 전국 감리교회 6300여곳 중에 호남에 둥지를 튼 교회는 270여곳(4.3%)에 불과하다. 성도는 2만명도 안 된다. 호남의 거점도시인 광주만 하더라도 1600개 교회가 있지만 그 가운데 감리교회는 10곳밖에 없다.

김 목사는 23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감리회 목회자에게 호남은 기피 지역”이라며 “다른 지역 교회에 청빙을 받으려고 50대 중반이 되기 전에 호남을 떠나는 목회자도 많다”고 전했다. 이어 “호남의 감리교회 원로목사님들은 이런 현실을 이겨내며 우직하게 목회자의 길을 걸었던 영웅과도 같은 분들”이라고 설명했다.

인천 강화 출신인 김 목사는 감리교신학대를 졸업했다. 경남 진주에서 목회하다가 2001년 군산으로 거처를 옮겨 비전교회를 개척했고, 지난 기감 감독 선거에 단독 입후보해 당선증을 거머쥐었다. 그가 감독으로 취임한 뒤 보여주는 행보를 보면 눈여겨봄 직한 지점이 적지 않다.

우선 그는 매주 주일이면 비전교회에서 예배를 집전한 뒤 광주에 있는 연회 본부로 이동해 연회 발전을 위한 철야 기도를 드린다. 김 목사는 “혼자서 시작한 기도회인데 요즘엔 2~3명 정도 함께할 때도 있다”고 전했다.

호남특별연회는 규모가 작은 탓에 재정 역시 다른 연회에 비해 열악한 편이다. 김 목사가 섬기는 비전교회도 출석 교인이 200명 수준에 불과한 중형 교회여서 감독 업무를 하며 재정적으로 힘겨울 때가 많다. 하지만 감독으로서 연회 미자립교회 목회자들을 만났을 때 후원금이라도 전달하려면 돈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김 목사가 고민 끝에 찾은 방법은 하나였다. 그것은 교회에서 훗날 김 목사가 은퇴하는 날 지급하려고 모아놓은 퇴직금을 미리 받아 이 돈을 헐어 쓰며 감독 업무를 수행하는 것이었다. 김 목사는 “최선을 다해 연회를 섬기겠다고 했으니 어쩔 수 없다. 연회원들이 나의 진정성을 알아줬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김 목사는 다음 달엔 호남의 낙도들을 돌면서 외롭지만 의연하게 목회의 길을 걸어가는 ‘낙도 교회’ 목회자들을 만날 계획이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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