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타르에서 국적 숨기고 월드컵 보는 이 나라 팬들

황수미 2022. 11. 23.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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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교 맺지 않은 카타르·이스라엘, 월드컵 기간 영공 개방
180여 이스라엘 팬 도하에 내려 … 중동 국가 관계 개선 발판 될지 관심
20일(현지시간) 이스라엘 텔아비브 벤 구리온 공항에서 한 남성이 이스라엘과 카타르 간 첫 직항편을 기념하며 만든 케이크를 들고 있다. 사진=로이터연합뉴스

[아시아경제 황수미 기자] 카타르와 공식적인 수교를 맺지 않은 이스라엘 국적의 축구 팬들이 2022 국제축구연맹(FIFA) 카타르 월드컵 원정 응원에 나섰다. 이번 월드컵 기간에만 한시적으로 두 나라가 영공을 개방하기로 합의하면서다. 일각에서는 중동 지역에서 처음으로 열리는 이번 대회를 계기로 양국을 넘어 중동 전역의 관계에 변화가 생길 수 있다는 기대감을 보인다.

주요 외신에 따르면 20일(이하 현지시간) 이스라엘 국적의 180여명은 이스라엘 수도 텔아비브 벤 구리온 공항에서 직항 항공기를 타고 카타르 도하의 하마드 공항에 도착했다. 자국은 월드컵 본선행 티켓을 따내는 데 실패했지만, 다른 나라의 축구 경기를 관전하고 응원하기 위해서다.

이스라엘 팬, 본선 진출 실패했지만 다른 나라 경기 관전

특히 이 비행기는 두 나라의 하늘길을 연 첫 직항편이라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이슬람 국가인 카타르는 유대 국가인 이스라엘과 공식 수교를 맺지 않고 있다. 대신 이스라엘과 갈등의 중심에 서 있는 팔레스타인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대표적인 나라다. 이스라엘과의 수교에 부정적인 뜻을 지속해서 전달하며 외교관계 정상화 조건으로 팔레스타인 국가 수립을 요구할 정도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카타르 월드컵에서도 이스라엘인들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려울 듯했다. 카타르가 이스라엘 국적자의 현지 방문을 원칙적으로 허용하지 않고 있어서다.

그러나 이번 월드컵에서만큼은 달랐다. FIFA와 이스라엘 정부 간 협의를 통해 사상 처음으로 이스라엘인의 카타르행이 가능해진 것이다. 지난 6월 이스라엘 일간 예루살렘 포스트에 따르면 당시 이스라엘 외무·국방·스포츠부는 공동 기자회견에서 "FIFA와 협의를 통해 월드컵 경기 티켓 구매자의 카타르 입국을 허용하기로 결정했다"며 "11월에 열리는 월드컵 축구 대회가 우리에게 문을 열었다"고 밝힌 바 있다.

여기에 더해 최근에는 이스라엘에서 카타르로 바로 갈 수 있는 항공기 직항편까지 한시적으로 마련됐다. 지난 11일 FIFA는 홈페이지 공지글을 통해 "이번 월드컵 기간에 이스라엘의 수도 텔아비브의 벤 구리온 공항과 카타르 도하의 하마드 공항 사이를 오가는 직항 전세기가 운영된다"고 밝혔다. 이는 FIFA가 이스라엘 정부 관계자들과 만나 대회 운영 계획에 관한 논의를 마무리한 결과다.

이스라엘 국민을 위한 영사 서비스는 도하에 있는 민간 국제여행사가 이스라엘 외교부와 협력 하에 제공한다. 팔레스타인 주민들도 직항편을 이용할 수 있으며 도하에 있는 팔레스타인 영사관에서 영사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고 FIFA는 덧붙였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변화가 중동 지역의 관계를 개선할 발판이 될 수 있다는 평가도 나왔다. 잔니 인판티노 FIFA 회장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축구 팬들이 월드컵 기간에 경기를 볼 수 있도록 도와준 모든 이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며 "월드컵이 축구의 통합된 힘으로 중동 전역의 관계를 개선할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소식을 전해 들은 미국 국무부도 "양국 간 인적·물적 자본의 교류를 위한 위대한 합의"라고 평가했다.

20일(현지시간) 팔레스타인 국적의 축구 팬들이 가자지구의 한 체육관에 모여 2022 카타르 월드컵 개막전으로 열린 카타르와 에콰도르의 조별리그 A조 첫 경기를 관전하고 있다. 사진=AP연합뉴스

다만 카타르 현지에선 아랍 국가를 중심으로 이스라엘을 향한 반감이 여전히 감지되는 모양새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온 칼레드 알 옴리는 외신에 "이스라엘과의 관계 정상화는 정치권의 뜻이지 국민 대부분이 동의하는 생각은 아니다"라며 "이스라엘과 카타르 간 직항 노선이 영구적으로 자리 잡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사우디도 카타르와 같이 이스라엘과 수교를 맺지 않은 국가 중 하나다.

카타르 현지에선 반이스라엘 감정 여전해

월드컵 현장을 취재하는 이스라엘 언론을 기피하는 아랍인들도 포착된다. 외신에 따르면 이스라엘 공영방송 칸과 채널12 등은 카타르나 사우디 등 아랍 지역 축구 팬들과의 인터뷰를 시도했으나 대부분 거절당했다. 팔레스타인에서 온 축구 팬들은 이들 취재진을 향해 "집으로 돌아가라"고 외치며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이스라엘 정부는 이같은 상황이 외교 갈등으로 번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현지 매체 타임즈오브이스라엘에 따르면 최근 이스라엘 외교부는 광고 캠페인에서 카타르 내 엄격한 법규를 자세히 소개하며 "(카타르) 현지에서 술을 마시거나 현지인들과 시비에 휘말리지 말라"고 촉구했다. 리오르 차이아트 국가공공외교국장도 카타르로 나서는 자국민들에게 "신변 안전을 위해 도하에 머무는 동안 국적을 공개적으로 드러내지 말라"고 당부했다.

황수미 기자 choko21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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