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도매가상한제’ 도입 논란…민간 발전사 파이 줄여 한전 적자 메우나

김경민 매경이코노미 기자(kmkim@mk.co.kr) 2022. 11. 23. 16:5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한국전력 적자가 급증하면서 정부가 결국 대책 마련에 나섰다. 발전사 전력 판매비를 일정 금액 이하로 제한하는 ‘전력도매가(SMP·System Marginal Price)상한제’를 도입해 한전 부담을 줄여주기로 했다. 하지만 민간 발전사들이 ‘한전 적자를 왜 우리가 메워줘야 하느냐’며 반발해 논란이 거세질 전망이다.

한국전력 적자가 불어나면서 정부가 ‘전력도매가상한제’를 도입하기로 해 논란이 뜨겁다. 사진은 전남 나주 한전 사옥. (한전 제공)
▶올해 한전 적자 30조 전망

▷전력도매가 상한선 둬 수익 보전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정부는 11월 중 국무조정실 규제개혁위원회 안건으로 전력도매가상한제를 상정하고, 전기위원회 심사를 거쳐 연내 제도를 시행하기로 했다.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지난 10월 21일 국정감사에서 “전력도매가는 발전단가가 높은 액화천연가스(LNG)에 따라 결정되는데 나머지 발전단가가 싼 발전사업자는 상당히 이익을 보는 구조다. 한전 적자에 큰 원인이 되기 때문에 적정 수준으로 상한을 잡겠다”고 밝혔다.

전력도매가상한제는 말 그대로 발전사의 전력 판매비를 일정 금액 이하로 제한하는 제도다. 직전 3개월간 전력도매가 평균이 과거 10년간 월별 전력도매가 평균값의 상위 10%에 해당할 때 발동된다. 상한제가 시행되면 민간 발전사들은 시장 가격이 아니라 상한 가격 즉 시장 가격 10년 평균치의 1.5배를 받고 전력을 팔아야 한다.

정부가 전력도매가상한제를 들고나온 것은 한전 적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났기 때문이다.

한전에 따르면 올 3분기 연결 기준 영업손실은 7조5309억원으로 집계됐다. 올 들어 누적 적자만 21조8342억원으로 지난해 연간 적자(5조8542억원)의 4배에 육박한다. 한전은 지난해 2분기부터 6분기 연속 적자 행진을 이어가는 중이다.

한전이 천문학적인 적자를 낸 것은 발전 자회사로부터 전기를 비싸게 사서 소비자에게는 싸게 파는 ‘역마진’ 상황이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올 1~9월 한전이 발전사로부터 전기를 살 때 기준이 되는 전력도매가격은 ㎾h당 177.4원으로 전년 동기(83.3원) 대비 두 배 이상 뛰었다. 전력도매가격이 급등한 것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글로벌 공급망 불안으로 LNG, 석탄 등 발전 연료 가격이 치솟은 영향이 크다.

이에 비해 한전의 전력 판매단가는 ㎾h당 116.4원에 그쳤다. 산술적으로 보면 한전은 전력 1㎾h를 팔 때마다 61원씩 손해를 보고 있다는 의미다. 비록 올 들어 전기 요금이 주택용 기준으로 ㎾h당 19.3원 올랐지만 손해액을 메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전기를 팔면 팔수록 손실이 늘어나는 구조다.

4분기 전망도 밝지 않다. 겨울이 다가오면서 난방 수요가 급증하는 데다 에너지 가격이 고공행진을 이어가면서 한전은 4분기에도 수조원 적자를 낼 것으로 우려된다. 증권가에서는 한전이 4분기 8조4486억원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내다본다. 이를 감안하면 올해 한전 적자는 30조원을 넘어설 전망이다.

한전은 적자로 부족해진 자금을 채권 발행으로 겨우 충당해왔다. 하지만 채권 발행 한도마저 빠르게 소진되고 있다는 점이 문제다. 한전법 제16조에는 ‘한전의 사채 발행액은 자본금과 적립금을 합한 금액의 2배를 넘지 못한다’고 규정돼 있다. 이에 따라 한전의 사채 발행 한도는 지난해 말 기준 91조8000억원에서 올해 말 29조4000억원, 내년 말 6조4000억원으로 급감할 전망이다.

한전은 부족 자금의 90% 이상을 사채로 조달하는데 현재 위기를 해결하지 못하면 사채 발행 한도 초과로 유동성 위기에 내몰릴 우려가 크다. 상장 공기업 최초로 채무불이행, 완전자본잠식에 빠질 것이라는 비관적 시나리오까지 나온다. 김정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최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내년 한전의 사채 발행 누적액이 110조원까지 늘어날 전망인데 사채 발행 한도는 6조4000억원에 불과해 외부 차입에 90% 이상 의존해야 한다. 사채 발행에 실패하면 채무불이행이 불가피해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전이 유동성 위기를 겪으면 노후 송배전 선로 교체 등 전력 설비 투자가 위축되면서 전력 산업 생태계가 무너질 수 있다.

이를 우려한 정부는 오는 12월부터 내년 2월까지 전력도매가상한제를 한시적으로 도입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정부 방침이 나오자 민간 발전사들은 일제히 반발하는 분위기다. SK E&S, GS파워 등으로 구성된 한국집단에너지협회는 “전력도매가상한제는 민간 발전사업자 수익을 뺏어 한전 적자를 메우려는 방편일 뿐이다. 자유 시장 경제 질서를 훼손하는 잘못된 정책인 만큼 반드시 철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A발전사 관계자는 “한전 적자가 커진 것은 정부가 여론 눈치를 보고 오랜 기간 전기 요금을 올리지 못한 탓이 큰데 민간 발전사에 책임을 돌리고 있다. 재무 여건이 악화된 발전사들이 생존 위기에 처해도 한전과 달리 아무런 보호 장치가 없다는 것이 문제”라고 꼬집었다.

▶해법은 없나

▷전기 요금 현실화·고강도 자구안 필요

전문가들은 정부가 민간 발전사에만 부담을 떠넘길 것이 아니라 전기 요금 연료비 연동제를 제대로 시행하는 등 전기 요금 현실화에 속도를 내야 한다고 주문한다.

전력도매가상한제를 도입하더라도 한전 적자 보전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준수 키움증권 애널리스트는 “전력도매가상한제 도입으로 한전은 월 1422억원 이익을 볼 수 있지만, 1분기 한전의 월평균 전력 구매 비용인 7조3000억원에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다. 전력도매가상한제 도입 효과는 미미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국민을 상대로 에너지 가격 급등에 따른 전기 요금 현실화 필요성을 설득해 위기를 헤쳐 나가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 주문이다.

한편에서는 한전 스스로 고강도 자구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도 적잖다. ‘눈덩이 적자 기업’으로 전락했지만 한전에서는 고액 연봉을 받는 직원이 수두룩하다. 양금희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한전 직원 중 1억원 이상 연봉자는 3288명으로 전체 임직원(2만2388명)의 14.1%에 달한다. 2017년(1567명)과 비교해 두 배 이상 늘었다. 강인수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는 “한전 경영 정상화를 위해서는 방만 경영부터 바로잡아야 한다”는 의견을 낸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85호 (2022.11.23~2022.11.29일자) 기사입니다]

Copyright © 매경이코노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