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 ‘색깔’ 12월 FOMC에 달렸다…연준 ‘피벗’ vs ‘파월 쇼크’ 재현

배준희 매경이코노미 기자(bjh0413@mk.co.kr) 2022. 11. 23.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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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 상승 압력이 둔화할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글로벌 증시 변동성이 완화되는 중이다. 미국 소비자물가지수가 예상보다 소폭 낮게 나온 덕분이지만 시장의 시각은 엇갈린다. 증시 변동성을 키웠던 거시경제의 방향성 자체가 전환된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과도한 안도감을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미국 물가의 상승폭이 시장예상치를 밑돌자 글로벌 증시는 일단 안도하는 분위기다. 다만, 일각에서는 지나친 안도감을 경계해야 한다는 신중론도 제기된다. (로이터)
▶美 10월 CPI에 환호

▷빅테크 줄줄이 급등

미 노동부에 따르면, 미국의 10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7% 올랐다. 지난 9월 8.2%에서 7%대로 떨어진 것. 물가 상승률이 7%대를 보인 것은 지난 2월 이후 처음이다. 변동성이 큰 음식과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 CPI도 시장 예상보다 낮았다. 특히 신차 가격의 전월 대비 상승률이 0.4%로, 8~9월 상승률(0.7%)보다 낮아졌다. 중고차 가격 하락률은 2.4%로 8~9월 하락률(1.1%)보다 낙폭이 2배 이상 커졌다. 공급망 병목 현상 심화로 ‘카플레이션’이라는 신조어를 낳았던 자동차 시장에서 가격 낙폭이 커지자 인플레이션 우려가 진정 국면으로 접어들었다는 신호로 해석됐다. 하건형 신한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에너지와 식료품 등의 물가 상승에도 긴축에 따른 수요 둔화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시행에 따른 일회성 물가 안정 효과가 발생하며 10월 인플레이션이 낮아졌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소식에 글로벌 증시는 안도했다. 지난 11월 10일 CPI 발표 이후 5거래일간 나스닥지수는 8% 올랐다. 이 기간 다우지수는 3%,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는 5% 올랐다. 빅테크 투자자들은 모처럼 환호했다. 같은 기간 애플이 10% 올랐고 마이크로소프트도 8% 상승했다. 아마존과 엔비디아, 메타 주가는 각각 12%, 16%, 12% 올랐다.

미 CPI가 여전히 7%대로 높은 수준이지만, 상승폭이 시장 예상치 대비 ‘고작’ 0.2%포인트 낮은 것에 시장이 급등한 것은 전례를 찾기 힘들 만큼 이례적이다. 이를 행태경제학에서는 전망이론(Prospect Theory)으로 설명한다. 전망이론은 1979년 경제학자 다니엘 카너먼(Daniel Kahneman)과 아모스 트벌스키(Amos Tversky)가 쓴 논문 ‘전망이론: 위험하에서의 결정에 관한 분석(Prospect Theory: An Analysis of Decision under Risk)’에서 처음 제시됐다. 전망이론에서는 ‘준거점(Reference Point)’이라는 흥미로운 개념으로 의사 결정을 설명한다.

전망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주변 환경을 살펴본 뒤 준거점을 만든 다음, 이를 기반으로 ‘상대적으로’ 자신의 효용을 평가하려는 경향이 있다. 쉬운 예로, 시골에 살 때는 주변 환경이 검소하므로 자동차나 사치재를 구입하지 않고도 편히 산다. 하지만, 서울 강남 같은 곳으로 이사를 한다면 좋은 차를 타고 사치재를 수시로 사야 할 것 같은 압박감을 느낀다. 이를 해석하자면, 시골에서 강남으로 이사하면서 준거집단이 바뀌었고, 이에 따라 변경된 준거집단의 소비 행위가 의사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새로운 준거점이 된다는 것이다.

이런 논리를 투자 의사 결정에도 적용할 수 있다. 기존 투자자의 준거점은 제로금리였으나 이제는 고금리와 높은 물가로 준거점이 바뀌었다. 즉, 변화한 투자 환경의 핵심 요소인 초인플레이션이 의사 결정의 새 준거점이 됐다. 이전의 저금리·저물가에서 고금리·고물가로 준거점이 변경됨에 따라, 7%대로 절대적으로는 높은 물가 수준에도 불구하고, 이를 새 준거점에 비춰 ‘상대적으로’ 낮은 물가로 인식하게 된다는 설명이 가능하다.

▶지나친 안도감 경계

▷유럽선 인플레이션 심각

다만, 시장의 ‘색깔’이 변했느냐를 두고는 여러 시각이 부딪힌다. 지나친 안도감은 경계할 필요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시선이다.

특히 최근 장세는 시장 추세가 바뀌었다기보다 수급에 기반한 전형적인 ‘숏 커버링’ 장세에 가깝다는 진단이다. 숏 포지션에 기반한 공매도 거래는 주가가 하락해야 돈을 번다. 그런데 시장 상황이 모두 공매도 주체의 예상대로 흘러가는 것은 아니다. 지금처럼 예상치 못한 이유로 공매도한 주식 가격이 올라간다면 공매도 주체의 손해는 커진다. 주가가 당분간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면 상환하기 위한 주식을 미리 사둬야 손해를 줄일 수 있다. 이처럼 공매도 세력이 더 큰 손해를 막으려 시중 주식을 급박하게 매수하는 것을 ‘숏 스퀴즈’라고 부른다. 작금의 장세는 이런 ‘숏 스퀴즈’에 따른 단기 급등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연준 내에서도 글로벌 증시가 급등세를 보이자 시장의 지나친 낙관과 쏠림을 경계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 7월 증시에서 연준의 ‘피벗(정책 전환)’이 임박했다는 관측이 빠른 속도로 확산하던 중 8월 말 잭슨홀 연설에서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의 매파적 발언이 전해지자 상승분을 고스란히 반납했던 사례가 있다.

크리스토퍼 월러 미 연준 이사는 최근 호주 시드니에서 열린 UBS 주최 금융 콘퍼런스에서 인플레이션 정점론이 증시에서 확산하자 “시장이 너무 앞서 나가고 있다”며 “(10월 CPI는) 좋은 소식이지만 한 시점의 데이터일 뿐임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월러 이사는 연준 내 매파로 분류된다. 월러 이사는 “마침내 인플레이션이 내려오고 있다는 증거가 나타난 것은 좋은 소식”이라면서도 “실제로 (금리 인상에) 브레이크를 밟을 것인지 고려하기 전에 계속해서 물가가 내려가고 있다는 지속적인 증거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승훈 메리츠증권 애널리스트는 “연준 피벗의 선결 조건인 소비 위축과 고용 시장 둔화가 현재 두드러지지 않는 상황이라 아직 물가 하락 정황이 명확하지 않다”며 “미국과 중국이 정상회담을 진행한 만큼 단기간에 극적 갈등은 없을 것으로 기대되며 코로나 정책 완화와 적극적인 부동산 지원책이 위안화 강세를 지지해, 강달러 기조가 일부 제어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지적으로는 인플레이션 완화 압력을 대세로 보기 힘든 정황이 목격된다. 미국은 달러 강세로 자국 소비자의 구매력을 일정 부분 보전할 수 있었지만, 유럽을 비롯한 주요 경제권 국가는 여전히 초인플레이션과 긴축의 내상이 심각한 상황이다.

신영증권에 따르면, 최근 독일 10월 CPI는 10.4%로 동서독 통일 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덴마크는 40년래 최고인 10.1%를 보였다. 감세 정책으로 글로벌 금융 시장에 큰 충격을 줬던 영국은 새 총리 선임 이후 고공행진 중인 물가를 잡기 위해 연일 증세론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우리나라도 전기료 인상을 비롯해 물가 압박 요인이 산적해 있다.

박소연 신영증권 애널리스트는 “미국 물가지표 안정 신호로 위험자산 전반에서 숏 커버링이 나타났지만 단기 트레이딩 이상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강조했다.

▶스테이블코인 파급 촉각

▷12월 FOMC 주목

가상화폐 거래소 FTX 파산이 전통 금융 시장에 미칠 파급력도 간단치 않은 이슈다. FTX 파산 사태로 촉발된 가상자산 유동성 위기가 ‘스테이블코인’을 타고 미국 국채와 회사채 등 제도권 금융 시장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스테이블코인은 코인의 가치가 특정 통화나 상품에 고정되도록 설계돼 있다. 미국 달러와 연동된 테더의 USDT, 서클의 USDC 등이 대표적이다. 유진투자증권에 따르면, USDT의 시가총액은 약 680억달러로, 스테이블코인 중 시총 1위면서, 전체 가상화폐 중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에 이은 3위다.

문제는 미국 달러와 1:1로 페그(Peg)하는 테더는 준비금으로 이 같은 페그를 유지하는 구조라는 점이다. FTX 파산으로 가상자산을 모두 잃을지 모른다는 공포감이 투자자들을 덮쳐 ‘코인런’이 연쇄적으로 빚어질 경우, 제도권 금융 시장도 충격이 불가피하다. 가령, 테더에서 자금이 이탈하면 테더 측은 준비금을 매도해 투자자에게 돈을 내줘야 한다. 준비금은 대부분 만기 1년 이하 초단기 채권(Treasury bill), 기업 어음·CD, MMF 형태로 구성돼 있다. 초단기 채권과 CP를 준비금으로 갖고 있다는 것은 만약 ‘코인런’이 빚어진다면 투매를 뜻하는 ‘셀오프(Sell-off)’ 현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의미다. 투자자에게 돈을 돌려주기 위해 준비금으로 보유하고 있는 CP를 내다 팔기 시작하면 단기 채권 물량이 시장에 집중적으로 쏟아지면서 채권 가격이 급락하는 등 시장에 일대 혼란이 초래될 수 있다.

김세희 유진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스테이블코인 움직임을 지속적으로 관찰할 필요가 있다”며 “대출채권과 회사채가 있는 만큼 변동성이 확대될 가능성을 유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책당국이 목표로 하는 것이 단순히 인플레이션을 잡는 것에 있지 않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인플레이션은 구조조정을 촉진하고 자본의 효율적 배분을 유도해 새로운 산업 사이클을 만들어내는 힘이 있는 만큼, 중장기적으로는 오히려 긴축 기조가 이어져 산업의 재구조화(Restructuring)가 촉진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주장이다.

앞으로 시장의 단기 방향을 가를 이벤트는 12월 FOMC다. 다음 FOMC 회의는 12월 13~14일 동안 열린다. 이미 시장에서는 연준이 12월 FOMC에서 ‘자이언트스텝(한 번에 0.75%포인트 인상)’ 대신 ‘빅스텝(한 번에 0.5%포인트 인상)’을 밟을 것으로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의 페드워치 툴(FedWatch tool)에 따르면, 현재 연방기금(FF) 금리선물 시장 참여자들은 12월 기준금리가 50bp 인상될 확률을 80% 이상으로 보고 있다. 연준이 최종금리를 5%보다 더 높은 수준까지 올릴 것이라는 우려도 줄어든 상황이다. 미 10월 CPI 발표 뒤에는 연준이 12월 50bp를 인상한 뒤 내년 2~3월 각 25bp씩 올려 4.75~5%의 최종금리를 목표로 할 것이라는 게 시장의 중론이 됐다. 12월 13일에는 11월 CPI 보고서가 발표된다. 이날에도 인플레이션 둔화 추세가 뚜렷하다면 연준이 목표로 하는 최종금리에도 영향을 줄 것이라는 전망이 확산 중이다.

박소연 애널리스트는 “시장은 CPI 둔화에 환호했지만 인플레이션이 끈적끈적한(Sticky) 것으로 확인되면 기대감은 금세 휘발될 수 있다”며 “긴축과 디레버리징(부채 축소)이 완전히 종료됐다고 보기도 어려운 만큼 아직은 경계감을 늦추기 어렵다는 판단”이라고 밝혔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85호 (2022.11.23~2022.11.29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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