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 그 입 다물라

김나래 2022. 11. 23. 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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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친구가 서울대 교정에 붙은 대자보를 직접 찍었다며 사진 한 장을 보내왔다.

'그 입 다물라'는 마지막 문장에 시선이 오래 머물렀다.

국회 예결특위에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국무위원이 하는 말을 왜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으시고 자꾸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며 "행안부에서는 (유족) 명단조차도 가지고 있지 않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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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래 온라인뉴스부장


“비극의 현장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용산구 이태원로 22의 시대 인식과// 예의를 잊은 수많은 말들-웃기지도 않고, 폼나지도 않은// 상처받은 이들의 마음 한편 얻지 못한/ 참칭 시민의 공연한 폭력// 종전의 국민도, 앞으로의 국민도 지키지 못할/ 당신들에게 고함// 그 입 다물라.”(익명/ 이름 탐사하지 마세요)

얼마 전 친구가 서울대 교정에 붙은 대자보를 직접 찍었다며 사진 한 장을 보내왔다. 짧은 시 같은 문장을 읽는 동안 10월 29일 이태원 참사 이후 대통령과 정부의 행태, 일부 시민세력의 섣부른 행동을 보며 느꼈던 분노와 절망감이 다시금 떠올랐다. ‘그 입 다물라’는 마지막 문장에 시선이 오래 머물렀다. 지난 3주 동안 책임져야 할 자리의 사람들이 매번 무책임한 말을 쏟아낼 때마다 내 속에서도 치밀어 오르던 말이었다.

지난 16일에도 그랬다. 국회 예결특위에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국무위원이 하는 말을 왜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으시고 자꾸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며 “행안부에서는 (유족) 명단조차도 가지고 있지 않다”고 했다. 유가족 명단이나 연락처의 존재를 묻는 야당 의원의 질문에 성내며 내놓은 답이다. 그가 지휘해온 ‘이태원 사고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참사 직후부터 유가족과 부상자들을 위해 심리 상담, 구호금과 치료비 지급, 세금 감면 등 다양한 지원을 해왔다. 유족 정보 없이 할 수 없는 일이다. 이 정도 업무 파악도 안 돼 있다는 무능의 고백일까, ‘명단 공개’는 절대 안 된다는 생각에 존재 자체가 없다고 일단 선긋기부터 한 것일까. 행안부는 실무진이 공문 결재 없이 유족 관련 자료를 입수해 관리자급에선 알기 어려웠다는 해명을 내놨다. 거짓말은 아니란 취지 같은데, 과연 그에게 책임 규명과 재발 방지 대책 수립을 기대해도 되는 건지 모르겠다.

공직자뿐만 아니다. 성직자들의 입에서 위로의 말 대신 저주와 혐오의 말이 쏟아질 땐 귀를 막고 싶었다. 유족의 아픔보다 자기들만의 정의가 더 소중했던 이들의 궤변 역시, 참고 듣기 어렵긴 마찬가지였다. 자식을, 아내를, 남편을, 친구를 잃은 사람들을 향해 익명성 뒤에 숨어 뱉어낸 네티즌들의 조롱과 멸시의 댓글은 또 어떤가. 하나같이 무용하고 유해한 말들이 도처에서 쏟아져 내린다. 사회학자 엄기호는 “곁을 만드는 언어는 소멸해버리고 편만 강요하는 사회, 책임은 오롯이 개인이 감당해야 하고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는 사회를 과연 ‘사회’라고 부를 수 있느냐”고 물었다. 2014년 ‘단속사회’ 책을 펴내며 던졌던 질문인데 안타깝게도 여전히 우리에게 유효한 물음 같다.

그렇게 참사 이후 24일이 흐른 22일, 유족들은 처음으로 목소리를 냈다. 사랑하던 가족을 잃고, 평범한 일상을 송두리째 뺏긴 채 ‘유족’이라는 이름으로 기자회견장에 서게 된 사람들이다. 이들은 진정한 사과, 철저한 책임 규명, 온전한 추모, 2차 가해 방지를 위한 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우리 사회가 이들의 곁에 서서 하나하나 제대로 응답해나가야 할 것들이다.

차마 고통의 크기를 가늠할 수 없는 말을 들으면서 ‘슬픔의 연대’라는 말을 떠올렸다. 목회자이자 문학평론가인 김기석 청파교회 목사가 ‘세상에 희망이 있느냐고 묻는 이들에게’라는 책에서 자녀를 잃은 이에 대해 말하며 “섣부른 희망이나 위로가 아닌 슬픔의 연대야말로 우리가 인간임을 재확인하는 길이 아닌가 싶다”고 썼던 문장이다. 다시 펼친 책에서 무해하고 위로가 되는 문장들을 많이 만났다. 그중 고정희 시인의 ‘상한 영혼을 위하여’의 마지막 구절을 다시 읽어본다. “캄캄한 밤이라도 하늘 아래선/ 마주 잡을 손 하나 오고 있거니.”

김나래 온라인뉴스부장 nar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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