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르보이스] 나의 친애하는 정신과 선생님에게

이마루 2022. 11. 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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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은 현대인의 가장 믿음직한 친구일지도 모른다. 정지음 작가의 정신과 진료기

나의 친애하는 정신과 선생님에게

처음 정신과 진료를 받던 날, 나는 곰팡이 핀 팥죽 같은 얼굴로 대기실 구석에 웅크리고 있었다. 오랫동안 나를 괴롭힌 우울이나 불면보다 결국 이 지경까지 오고 말았다는 패배감이 더 짙었다. 문득 의심이 솟기도 했다. 나란 애는 뭘까? 난 아픈 것일까, 나약한 것일까? 나약한 거라면 해결책은 어차피 노력과 능력의 영역 밖이 아닐까.

그때는 내게 죄책감으로 도피하는 습관이 있다는 걸 미처 몰랐다. 사람은 너무나 복잡해서 죄책감에 짓눌리면서도 그 익숙한 고통에서 안도를 느낄 수 있는 존재다. 당시 가장 두려웠던 건 내 미래와 내일, 비전 같은 거였다. 젊은이의 상징임에도 젊은 내가 가질 수 없는 신기루 같은 것들.

그래서 만나본 적 없는 의사가 거북했다. 새로운 타인이 초라한 나를 단번에 간파하거나 아예 알아보지도 못할 것 같아서였다. 긴 대기 끝에 마침내 내 이름이 불렸을 때 무거운 몸을 일으키며 한 가지 다짐했다. ‘감정적으로 굴 바엔 차라리 로봇처럼 행동하겠어. 바보 같은 나를 철저히 감출 테야!’ 그러나 1분 후, 무슨 일로 찾아왔냐는 질문을 듣자마자 ‘뿌엥!’ 하고 눈물이 터져나오고 말았다. “하이쒸, 선생니임. 이인새애앵이 너어무 힘들고, 넘넘 짜아증 나아요. 흑흑흑.” 턱에 호두 주름이 생기도록 얼굴을 구기고 두서없이 이야기를 쏟아내는 나는 환자라기보다 주말 밤의 취객 같았다. 선생님은 내게 위로의 티슈 뭉치를 건네고 알 수 없는 약들을 바리바리 처방했다. 나는 약봉지를 쥐고 집으로 달려가며 또 잉잉 울었다. 이전까지 난 연장자나 권위자의 능력을 통해 득을 본 적이 거의 없었다.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은 나이가 많고 학벌이 좋을수록 이상하게 ‘재수 없고’ ‘착취적’이었다. 하지만 선생님은 그렇지 않았다. 치료를 지속할수록 우리 사이에 호불호를 넘어서는 어떤 신뢰가 형성되고 있음을 느꼈다. 나는 천천히 솔직해졌다. 선생님이 나를 바보 취급할까 봐 전전긍긍하는 대신 혹시 제가 지금 띨띨해 보이냐고 여쭤보는 식이었다. 선생님은 무작정 칭찬과 격려를 퍼붓는 타입이 아니어서 뭘 묻든 그의 대답은 재미있었다. 선생님이 “내 말이 잔소리처럼 들리겠지만, 잔소리도 애정이라니까요”라는 말을 해준 순간이 기억에 남는다. 살면서 1000번쯤 들어본 말이지만 납득이 된 것은 처음이었다.

언젠가부턴 더 이상 정신과가 무섭거나 무겁지 않았다. 나 역시 선생님을 만나 그간 어렴풋이 가지고 있던 편견을 많이 내려놓을 수 있었던 셈이다. 혼자 끙끙대던 고민 중 하나는 선생님이 내게 너무 많은 약을 먹이면 어쩌나 하는 것이었다. 인터넷을 보면 끼니당 5~10개쯤 정신과 약을 처방받는 사람도 드물지 않은 까닭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난 후 약 때문에 주의를 받는 사람은 나였다. 정신과 약물의 신속 정확한 효과를 체감한 내가 오히려 약에 눈을 빛내기 시작했다.

“선생님, 선생님 혹시 부지런해지는 약은 없나요?”

“없습니다.”

“좋은 꿈꾸는 약은요?”

“없죠.”

“그러면 운동하고 싶은 기분이 드는 약은요?”

“제발 모든 걸 약으로 해결하려는 마음부터 버리세요. 제가 저번에 뭐라고 했었죠?”

“글쎄요. 아무 생각도 안 나는데요.”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철딱서니 없는 요구를 거절당할 때마다 조금 더 선생님을 믿게 됐다.

물론 선생님이 나를 믿느냐는 조금 다른 문제다. 나는 나아지다가도 금방 제자리로 돌아오는 환자였고, 치료 7년 차인데도 여전히 불안정한 사고뭉치이기 때문이다. 정신 산만하고, 늦잠 자고, 툭하면 우는 버릇조차 고치지 못했다. 솔직히 말해 가끔 선생님 얼굴에서 나에 대한 회한과 허탈감이 스쳐가는 걸 목격할 때도 있다. 그렇지만 그런 선생님의 눈으로 보는 내 모습이 이제는 밉지 않다. 내 삶엔 여전히 두세 가지의 정신과적 질환 명이 따르지만, 이런 멋진 멘토와 함께라면 괜찮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정지음

싫은 것들을 사랑하려고 글을 쓰는 1992년생. 25세에 ADHD 진단을 받은 이후 첫 에세이 〈젊은 ADHD의 슬픔〉을 펴냈다. 얼마전 첫 소설〈언러키스타트업〉으로 소설가 데뷔를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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