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 CB ‘빚 폭탄’ 째깍째깍…주가 급락으로 ‘원리금 갚아라’ 봇물

배준희 매경이코노미 기자(bjh0413@mk.co.kr) 2022. 11. 22.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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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 전 바이오 기업을 중심으로 집중 발행됐던 전환사채(CB)에 대한 조기상환청구권 행사가 잇따르면서 유동성 위기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연합뉴스)
글로벌 중앙은행의 강도 높은 긴축으로 증시 변동성이 확대된 가운데, 재무 구조가 취약한 일부 상장 기업에서 메자닌(CB, BW, EB 등)발 유동성 위기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하락장이 길어지면서 투자자들이 메자닌 발행사를 향해 풋옵션(조기상환청구권)을 행사하는 경우가 늘고 있어서다.

금융감독원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7월부터 10월 말까지 전환사채(CB)와 신주인수권부사채(BW), 교환사채(EB) 등의 만기 전 상환 공시는 총 158건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공시된 89건과 비교해 2배 가까이 증가한 수치다. 지난 10월에는 만기 전 CB 취득 관련 공시 건수만 40개로 집계됐다. 이 또한 1년 전보다 2배 늘어난 수준이다.

대부분 메자닌은 상대적으로 재무 구조가 취약한 코스닥 기업에서 발행한다. 시중은행 대출이나 채권 발행 등을 통한 자금 조달이 여의치 않기 때문이다. 메자닌 만기는 대부분 3년 안팎이다. 하지만 3년을 꽉 채워 들고 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 주식과 채권의 속성을 모두 갖고 있어 보통 발행 1년이나 1년 6개월 이후 조기상환이나 주식전환 옵션을 넣는다. 메자닌 투자자 대부분이 CB 등에서 얻는 이자수익보다는 주식전환으로 수익을 극대화하는 데 관심을 둔다.

메자닌은 발행사 입장에서는 ‘양날의 검’이다. 신용등급이 낮은 중소 상장사에는 투자금 확보를 위한 요긴한 수단이다. 다만, 증시 변동성이 확대될 땐 자칫 골칫거리가 될 수 있다. 주가가 너무 올라도 문제, 너무 하락해도 문제다. 가령, 주가가 너무 올라 메자닌을 주식으로 전환할 가능성이 커지면 당장 오버행(잠재 물량) 이슈로 주가가 부진하다. 주가가 오르면 회계상 평가손실이 늘어나는 것도 기업 입장에서는 부담 요인이다. 국제회계기준인 IFRS에서는 전환가액 조정 조건이 부여된 CB나 BW를 ‘금융부채’로 분류한다. 금융부채로 분류된 메자닌은 해당 기업 주가와 행사 가격 차이를 파생상품 손익으로 회계처리해야 한다.

반대로, 지금처럼 주가가 대폭 하락했을 땐 풋옵션 행사가 급증한다는 점이 문제다. 풋옵션은 문자 그대로 ‘옵션’, 즉 선택권이 있는 것이어서 하락장에서 투자자에게 유리하다. CB나 BW를 갖고 있어봐야 기대수익률이 높지 않다면 투자자들은 발행사를 대상으로 조기상환을 요구하며 다른 투자처를 물색할 유인이 강해진다. 투자자가 만기 전 조기상환청구권을 행사할 경우 발행사는 원금에 해당 기간까지의 약정이자를 더해 돌려줘야 한다.

특히 메자닌 중에서도 CB의 비중이 약 60% 정도로 높은 편이다. 최근에는 주가 급락으로 전환가액 한도까지 떨어진 CB가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CB는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전환가액’을 정해서 발행한다. 여기에는 단서가 붙는다. 주가가 하락하면 CB의 전환가액도 일정 수준 하향 조정할 수 있게 한다. 특히 2~3년 전 저금리 환경에서 재무 구조가 열악한 상장사가 CB를 집중적으로 발행했는데, 증시 급락으로 이 가운데 상당수 CB가 전환가액 한도까지 도달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렇게 되면, 투자자 입장에서는 CB를 만기까지 보유할 실익이 전혀 없다. 대부분 CB가 사실상 제로금리로 발행됐던 터라 이자를 받지도 못하고, 주식으로 바꾸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주가 급락으로 전환가 한계 도달

만기 전 조기상환청구 행사 봇물

특히 시장에서는 바이오 상장사를 향한 우려스러운 시선이 확산 중이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2020~2021년 국내 바이오 기업이 발행한 CB는 3조1650억여원어치에 달한다. 2015~2019년 5년간 발행한 CB(2조5900억원)보다도 22%가량 많다. 시장에서는 2020~2021년 발행된 이들 CB의 상당수 상환 기한이 2023년 집중될 것으로 보고 있다. 작금의 증시 상황에 비춰, 투자자들은 만기까지 CB를 보유하기보다는 조기상환청구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높다. 이미 지난 10월에만 프로스테믹스, 셀리버리, 이원다이애그노믹스(EDGC), 유틸렉스 등 바이오 기업 여덟 곳이 CB 조기상환 공시를 냈다. 프로스테믹스는 한 달 새 두 차례 빌린 돈을 갚아야 했다.

단기 유동성을 확보하기 위해 유상증자에 나서는 바이오 기업도 늘고 있다. 프레스티지바이오로직스는 최근 채무상환을 위해 599억원 규모 유상증자를 결정했다고 공시했다. 에스디생명공학도 10월 말부터 가능한 조기상환청구권 행사에 대비해 유상증자로 352억원을 조달했다. 이 자금은 모두 채무 상환에만 쓴다. 유틸렉스, 카이노스메드 등도 유상증자로 유동성 확충에 나섰다. 이마저도 여의치 않은 상장사는 대주주가 급전을 마련하느라 분주하다. EDGC 창업자인 이민섭 부회장은 장외에서 주식을 팔고 그 대금을 회사에 빌려주는 방식으로 급한 불을 껐다. 대표이사가 개인 자금을 동원한 경우도 있다.

그나마 유동성 사정이 괜찮은 상장사는 자체 자금으로 조기상환청구에 응하는 실정이다. 올 상반기 말 기준 2000억원대 예금잔고를 보유한 엔지켐생명과학은 CB 405억원을 조기상환했다. 일부 흑자전환에 성공한 기업도 가까스로 조기상환 절차를 마무리했다.

다만, CB 등의 조기상환 청구가 이제 막 시작됐다는 점을 시장은 우려하고 있다. 단기 자금 시장이 사실상 마비 상태여서 일각에서는 디폴트를 선언하는 상장사가 나올 것이라는 불안감이 팽배하다. 우여곡절 끝에 급한 불을 끄더라도 내년 상반기 본격적인 경기 침체가 도래할 경우 자금 사정이 열악한 중소 바이오 상장사를 중심으로 줄도산이 현실화할 것이라는 우려의 시선이 적지 않다. CB 발행사는 대부분 누적된 영업적자로 결손금이 큰 상황이어서, 조기상환청구가 반복적으로 행사될 경우 재무적으로 한계 상황에 달하는 곳이 속출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실제 원리금을 갚지 못하겠다고 선언한 상장사가 나오기 시작했다. 최근 네오펙트는 33억원 규모의 CB 상환자금이 부족해 사채 원리금 미지급 발생 사실을 공시했다. 투자자와 합의 후 상환하기로 했지만 남은 CB 금액이 100억원에 달한다. 아직 조기상환청구권 행사 기간이 도래하지 않은 기업도 유의할 필요가 있다. 휴온스(386억원), 올릭스(290억원) 등이 조기상환청구권 행사 기한을 앞두고 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바이오 기업의 경우 CB로 조달한 자금을 기반으로 연구개발에 투자해왔는데, 조기상환에 대응하는 데 급급하다 보면 본업이 부진해지고 재무 구조가 더 열악해지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며 “시장금리가 잔뜩 높아진 상황에서 풋옵션 행사가 잇따를 경우 발행 기업에 큰 부담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85호 (2022.11.23~2022.11.29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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