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에 한 번, 무 뽑는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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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일 년에 한 번 있는 '무 뽑는 날'이다.
늦여름 혹은 초가을에 파종한 무는 위로는 따스한 햇빛과 서늘한 바람을 머금고, 아래로는 촉촉한 비와 땅의 양분을 쪽쪽 빨아먹으며 쑤욱 쑥 자란다.
무의 성장 상태와 그 해의 날씨를 유심히 바라본 시어머니는 형제자매들에게 무 뽑을 날을 공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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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애 기자]
일 년에 한 번 있는 '무 뽑는 날'이다. 언젠가부터 가족의 연례행사가 되었다. 시어머니의 친정은 '청령'이라는 명칭의 시골 마을이다. 시어머니의 부모님이 돌아가시면서 친정집은 폐가가 되었고 폐가를 철거한 후에는 오래된 감나무와 집 터만 남았다. 앞쪽 산비탈에 위치한 밭도 묵혀두면 언젠가는 쓸모없는 땅이 되고 말 것이다.
시어머니는 가장자리의 세 고랑 정도만 남겨두고 남은 면적을 동네 지인에게 빌려주기 시작했다. 동네 지인은 땅을 빌리는 대신 시어머니가 쓸 고랑까지 거름을 뿌리고 밭을 갈았다. 상부상조란 말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광경이다.
시어머니는 포슬하고 비옥해진 밭의 가장자리에 고랑 세 줄을 만들었다. 봄에는 열무를, 가을에는 무를 심기 위해서다. 늦여름 혹은 초가을에 파종한 무는 위로는 따스한 햇빛과 서늘한 바람을 머금고, 아래로는 촉촉한 비와 땅의 양분을 쪽쪽 빨아먹으며 쑤욱 쑥 자란다.
시어머니는 가끔 고향 마을의 밭을 방문하여 소복하게 자라는 무를 솎아낸다. 뿌리(무)와 잎(무청)이 크게 자라날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솎아낸 무는 신선하고 건강한 나물 반찬이 되어 시부모님의 식탁에, 때로는 우리 집 식탁에도 오른다.
▲ 무 뽑는 날 무 뽑는 딸들 |
ⓒ 최윤애 |
약속한 날, 청령 산비탈의 밭에 중년기에서 노년기에 접어든 5남매가 출동했다. 배우자와 몇몇 자녀들도 함께 모였다. 일꾼들(?)은 일사불란하게 무를 뽑고 다듬고 자루에 넣고 옮긴다. 간간히 허리를 세워 마을을 내려다보기도 한다.
▲ 무 뽑는 날 무 뽑는 다은 |
ⓒ 최윤애 |
▲ 무 뽑는 날 무 뽑는 다연 |
ⓒ 최윤애 |
겨우 세 고랑뿐인데도 무와 무청, 달랑무가 수북하다. 각각의 종류들로 불룩하게 채워진 자루들을 가운데 놓고 '형님이 더 가져가라, 아우가 더 가져가라' 아우성이다. 이것이 이 축제의 하이라이트!
몸도 쓰고 마음까지 후하게 쓰는 이 광경은 보면 볼수록 신이 난다. 형제자매들이 오랜만에 다 같이 고향에 모여 고향에서 난 것들을 인심 좋게 나누는 모습이 흥겹다. 그득해진 자동차의 트렁크 못지않게 각자의 마음도 풍요로워진다.
마지막은 노동으로 출출해진 뱃속을 달랠 차례다. 어쩌면 이것이 이 축제의 진짜 하이라이트일지도 모른다. 시어머니가 예약한 식당으로 대가족이 대이동을 한다. 한적한 시골 마을 사이를 낯선 자동차들이 쪼르르 줄지어 달린다. 일 년 뒤를 기약하면서, 시골 마을이 키워낸 자손들이 고향마을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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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주간지 [서산시대] 동시기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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