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음추] ‘에에올’ 양자경은 신지훈의 ‘가득 빈 마음에’ 무어라 말할까

정진영 2022. 11. 22.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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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지훈이 회사 제공

영화를 보면 자연스레 어떤 노래 한 곡이 떠오를 때 있죠. 영화 주인공들의 사랑 이야기가 마치 내 이야기 같아서이기도 하고 영화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메시지가 어떤 곡과 절묘하게 맞아 떨어져서일 때도 있고요. 러닝타임 내내 귓가를 울리던 노래 한곡을 ‘자음추’(자연스럽게 음악 추가)에서 소개합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신지훈의 자작곡 ‘가득 빈 마음에’는 이렇게 시작한다. ‘엄만 언제 공허함을 느끼십니까. 이건 나태함입니까 애초에 헛된 꿈입니까.’

‘가득 빈 마음에’라는 역설적인 제목을 가진 이 노래는 신지훈이 지난 2019년 ‘제30회 유재하 음악경연대회’에 출품하며 세상에 알려졌다. 이 곡에서 신지훈은 손에 거머쥐려 했던 것들의 의미를 잃고, 더는 가득 채우고자 하는 마음마저 없다면 어떠한 힘으로 살아가야 할지 나직하게 묻는다.

사진=워터홀컴퍼니 제공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에블린(양자경 분)은 삶에서 이룬 것이 그다지 없다. 미국에 이민 와 힘겹게 세탁소를 운영하면서 끊임없이 세무당국의 조사에 시달리고, 남편은 이혼을 요구한다. 사춘기에 접어든 딸마저 좀처럼 자신의 마음을 이해하지 않는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 에블린은 멀티버스 안에서 수천, 수만의 자신이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손가락이 핫도그 같은 세상부터 꿈같은 영화배우의 삶을 사는 자신까지. 에블린은 그 수많은 자신들 속에서 자신이 가장 ‘실패한 에블린’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사진=워터홀컴퍼니 제공

가장 실패했다는 역설은 에블린을 멀티버스의 위기를 구할 영웅이 되게 만든다. 어떤 것도 이루지 못 했기에 가장 인생의 본질에 근접할 수 있었던 에블린. 너무도 평범해서 쓸모없고 일견 무의미해 보이기까지 하는 그의 삶에서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다음 발을 디디고 살아나갈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을 포착해낸다.

무엇을 채워도 공허해져 버린 삶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나. 왠지 뜨겁게 달아올라야 할 것 같은 삶이 미지근히 식어 버렸을 때의 그 공허함. ‘가득 빈 마음에’ 속 신지훈의 물음, 혹은 절규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속 조이(스테파니 수 분)의 그것과 닮았다.

이쯤에서 다시 묻는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손에 쥐려 애쓰던 업적, 갈망했던 사랑,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의 성공과 실패를 겪으며 가슴 속에 쌓이는 공허감.

사진=지훈이 회사 제공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으며 찬란한 성공과 처절한 실패 사이의 간극은 생각보다 깊지 않다는 걸, 어쩌면 고작 종이 한장 차이일 뿐일지 모르겠다는 것을 실감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삶에서 무엇을 추구하고, 무엇을 위해 힘을 내며 살아야 하는 것일까. 어차피 얻어도 생각만큼 값지지 않은 거라면 이대로 미지근하게 살아도 되는 것 아닐까. 혹시 이런 마음이 신지훈의 노래 가사처럼 나태함은 아닐까.

한 가지 확실한 건 누군가의 성공이 누군가에겐 일상이고, 누군가의 절벽이 누군가에겐 삶의 터라는 것이다. 타인의 눈으로 크고 작아 보일 순 있어도, 결국 사람은 자신의 앞에 놓인 밥을 한 그릇, 한 그릇 먹으며 살 수밖에 없는 일이다. 너무도 가득 차서 텅 비어버린 절망 속에서 다시 무릎에 힘을 주고 일어나 한 걸음을 내딛는 일. 그 무겁고도 의미 있는 한 발이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가 온갖 기상천외한 장면의 끝에서 보여주고자 한 것 아닐까.

정진영 기자 afreeca@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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