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 대통령실까지의 거리

이영미 2022. 11. 22. 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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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미 영상센터장


이태원 참사 직후 서울과 압사라는 단어의 조합이 생경해서 ‘우리 모두의 잘못’이라는 주장에 고개를 끄덕였더랬다. 대도시에 살며 사람에 밀려다니는데 익숙한 우리는 인파의 위험에 둔감했다. 불꽃축제에 100만명이 몰리고, 월드컵 거리응원에선 수백만명이 몸으로 파도를 만드는 나라 아닌가. 압사 가능성 자체가 머릿속에 없는데 어떻게 예견된 참사냐는 지적에도 공감했다. 20여일이 지난 지금, 더는 그런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공동체 책임과는 별개로 나는 10·29 참사가 매우 정치적인 사건이었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참사 후 쏟아진 분석 가운데 권은희 의원 설명에는 주목할 대목이 있다. 10월 29일 밤 서울에서 관리됐어야 할 치안 상황은 광화문 집회시위와 강남·홍대·이태원의 핼러윈 데이 축제, 두 가지였다. 경찰 수뇌부의 우선순위는 집회시위에 있었다. 증거가 그렇게 말한다. 권 의원이 언급한 서울경찰청 내부 보고서 ‘주말주요집회 안전대책’에 따르면 67개 부대 4000명, 가용 경찰력 대부분이 시위 대응에 투입됐다. 부여된 임무는 ①대통령실 절대 안전 확보 ②인접 진입로의 견고한 차단선 구축이다. 목표가 이보다 더 선명할 순 없다.

핼러윈 대응은 개별 경찰서 몫이 됐다. 용산에는 대통령실과 이태원, 시위와 핼러윈 두 현장이 다 있었다. 병목이다. 게다가 용산서장은 시위 대응에 차출됐다. 이제 용산서의 핼러윈 대응은 한 단계 더 아래로, 112신고에 출동하는 이태원파출소 32명의 책임으로 축소됐다. 그날 밤 경찰 수뇌부는 적극적 의지를 가지고 대통령실 경호와 경비에 총력을 다했다. 뒤집으면 핼러윈 인파에 대한 서울청 차원의 무대응이었다. 이게 현재까지 드러난 그날의 진실이다. 시위는 수뇌부의 우선순위가 아니라 유일한 관심사였다.

보고의 문제가 있을 수는 있다. 수뇌부가 현장을 실시간으로 알 수는 없으니까. 하지만 현장의 지원 요청은 확인된 것만 여러 건이다. 10월 25일 이태원파출소장이 서울청에 한 번, 26일에는 용산서 정보과 담당자가 또 한 번, 사고 당일 오후 7시30분 용산서 현장 경찰관이 다시 한번 인파 관리 인원을 요청했다. 용산서장은 국회에 증인으로 나와 서울청에 두 차례 기동대를 요청했다가 거절당했다고 말했다. 서울청은 반박하면서 굳이 ‘공식’ 요청이 없었다고 했는데 ‘비공식’은 있었다는 뜻인가. 이상한 말이다.

핼러윈에 경찰이 필요하다고 누가 상상했겠나. 이 점에 관해서라면 대통령이 이미 답을 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용산서가 이태원 인파 정보를 몰랐을 리 없다면서 “왜 4시간 동안 물끄러미 쳐다만 보고 있었느냐”고 경찰을 질타했다. 내가 몰랐다고 경찰도 몰랐을까. 인파 관리는 대한민국 경찰이 늘 해오던 일이고, 심지어 잘하는 일이다. 대통령 말처럼 우리 경찰은 허술하지 않고, 용산서는 관내 상황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대통령은 맞는 말을 하고도 엉뚱한 결론에 도달했다. 4시간 동안 물끄러미 쳐다만 본 건 현장 경찰이 아니다. 경찰 수뇌부다. 그리고 현장 대신 그들이 바라본 건 대통령실이었다.

이태원 참사가 제도의 사각지대에서 벌어진 일 같지는 않다. 시민의식 부족이나 안전불감증도 원인은 아니다. 아동학대, 스토킹살인 사건 등에서 반복 확인하는 일이지만 한국인은 위험을 감지하면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움직인다. 권리의식도 높고, 책임감도 강하고, 신고도 잘한다. 이번에도 신고 전화는 쏟아졌다. 하지만 그 모든 노력도 경찰력을 총동원해 대통령실을 지키려던 경찰 수뇌부의 의지를 이기지는 못했다. 그들의 정치적 결정이 모든 걸 헛수고로 만들었다. 그런데도 대통령은 진상 규명의 권한과 책임이 경찰청장에게 있단다. 대통령실을 지킨 결과가 나쁘지 않다. 결국 교훈은 또 그런 건가.

이영미 영상센터장 ym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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