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고통 속에 내버려 두셨나요” 하나님께 묻는다면

임보혁 2022. 11. 22. 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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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묵상] 오두막
영화 ‘오두막’에서 어린 막내딸을 안타까운 사건으로 잃은 맥 필립스(왼쪽 두 번째·샘 워싱턴 분)가 삼위일체를 상징하는 예수(왼쪽 첫 번째·아브라함 아비브 알루쉬 분), 파파(왼쪽 세 번째·옥타비아 스펜서 분), 사라유(오른쪽·스미레 분)와 함께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영화 ‘오두막’ 스틸컷


일상에 지쳐있거나, 이루 말할 수 없는 상실감에 빠져 고통의 나날을 보내고 있는 당신에게 만약 하나님과 주말을 한 오두막에서 보낼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떨까. 왜 날 이런 고통 속에 내버려 두셨냐며 원망을 토해낼 기회, 그동안 묻고 싶었던 숱한 고민과 의구심을 쏟아낼 기회가 될 터.

영화 ‘오두막’(2017)은 그런 기회를 얻은 맥 필립스(샘 워싱턴 분)의 이야기를 그린다. 영화는 맥이 어느 날 집 앞으로 전달된 정체불명의 편지를 받으면서 시작한다. 얼마 전 가족여행 중 끔찍한 사건으로 사랑하는 어린 막내딸 미시를 잃고 깊은 슬픔과 고통에 잠긴 채 살아가는 그였다.

편지에는 “맥, 오랜만이군요. 보고 싶어요. 다음 주말에 오두막에 있을 테니 만나고 싶으면 와요. 파파”라고 쓰여있다.

오두막은 미시가 낯선 남자의 손에 의해 허망하게 목숨을 잃은, 맥에게는 다시는 찾고 싶지 않은 장소였다. 하지만 맥은 그곳을 다시 찾는다. 악몽이 재현되는 듯 고통에 몸부림치는 그에게 낯선 한 남자가 다가온다. 그를 따라 눈 덮인 산길을 지나 마주한 곳은 따뜻한 봄기운이 완연한 신비스러운 오두막 앞이다.

맥이 파파와 함께 오두막에서 대화를 나누는 모습. 영화 ‘오두막’ 스틸컷


맥을 따뜻하게 맞이하는 편지의 주인공 파파. 예상했듯이 파파는 성경 속 ‘스스로 있는 자’, 곧 하나님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흥미로운 것은 흔히들 남성적인 이미지로 그려진 ‘하나님’을 상징하는 첫 인물이 바로 흑인 여배우 옥타비아 스펜서라는 점이다. 이단들이 주장하는 ‘여자 메시아’란 의미가 아닐뿐더러 주류 서양인을 상징하는 백인, 코카서스 인종에 국한된 일종의 편견까지도 과감히 깨는 의도적인 설정이다. 마치 저자는 우리에게 사람들이 흔히 떠올리는 ‘하나님’에 관한 편견과 고정관념이 때론 우리 스스로 하나님을 한정지었던 것은 아닌지 묻는 듯하다.

맥은 이 오두막에서 파파 그리고 자신을 이곳으로 이끈 한 남자 곧 ‘예수’(아브라함 아비브 알루쉬 분)와 ‘성령’을 상징하는 ‘사라유’(스미레 분)까지 이른바 ‘삼위일체’ 하나님과 각각 대화하며 절대자의 본심에 한 걸음씩 다가간다.

맥이 절대자에게 따지듯 묻는 말은 우리가 종종 신에게 외치는 질문과 다르지 않다.

얼마 전 서울에서 일어난 ‘이태원 참사’처럼 인간은 때로 재난과 같은 고통의 현실과 마주한다. 그럴 때마다 인간은 신에게 묻는다.

“나 홀로 고통의 시간을 외로이 지날 때 당신은 어디 있었느냐?” “무한한 힘의 소유자라는 절대자라면서 왜 소중한 사람들을 불의의 사고로 잃게 될 때까지 아무런 개입도 하지 않았는가?” “왜 악한 자들이 마음대로 악행을 저질러도 보고만 있었느냐”며 원망 섞인 말을 내뱉기도 하고, 때론 분노에 휩싸여 그를 등지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영화는 이런 맥의 질문 나아가 우리가 늘 신에게 묻고 싶었던 질문에 대한 답을 성부(聖父), 성자(聖子), 성령(聖靈)이라는 세 위격의 모습을 통해 하나씩 풀어낸다. 그 속에서 심판과 비극에 담긴 하나님의 뜻을 조금이나마 유추해볼 법하다.

맥이 가족과 함께 주일예배를 드리는 모습. 영화 ‘오두막’ 스틸컷


파파는 마치 다섯 생명을 살리기 위해선 한 생명쯤은 희생해도 되는지 물었던 마이클 샌델 미 하버드대학교 교수처럼, 맥에게 첫째와 둘째 자녀 중 누가 더 악한지 명확히 경중을 매길 수 있는지 묻는다. 나아가 일부러 비극을 만들지 않았으며, 믿을 수 없는 그 비극에서조차도 인간은 놀라운 일을 끌어낼 수 있다고 말하는 파파의 말에서 영화를 관통하는 메시지를 엿본다.

비극은 누구에게나 언제든 찾아온다. 하지만 비극이 일어난 원인을 찾아 원망하기보다는 그 비극을 어떻게 받아들이며 어떻게 극복해 나갈지는 비극을 마주한 우리 그리고 남겨진 이들의 몫이 아닐런지.

영화의 원작 소설을 쓴 월리엄 폴 영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오두막은 맥의 내면이 파괴된 장소이자 비밀을 감추는 곳이다. 우리는 다른 누군가에게 상처를 들키기를 원하지 않지만, 치유 받기 위해서는 상처받은 그 곳으로 돌아가야 한다”라고.

영화는 또 하나님은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을 심판하시려고 일부러 비극을 주는 분은 아니시다는 점을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하나님조차도 십자가에 못 박힌 자식, 예수가 겪은 고난의 모든 순간을 낱낱이 지켜보면서 함께 눈물 흘리셨듯이 인간이 겪는 모든 고통의 순간을 단 한 번도 외면하지 않으셨다는 것도 말이다.

남 탓하며, 세상의 악행을 비난하며 불만과 증오로 자신을 깎아내며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겨우겨우, 정말 꺼내기 힘들더라도 마음속의 선(善)과 사랑을 꺼내려 애쓰는, 조금이라도 세상을 이롭게 변화시키는 삶을 살 것인가. 하나님은 자신에게 선한 세상을 만들어달라고 요구하며 외치기보다 우리가 능동적으로 선한 영향력을 발휘해 세상을 변화시켜 나가길 원하시지 않을까.

그래서 영화 말미 파파가 맥에게 해준 말은 소위 ‘영적 전쟁’의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묵직한 책임으로, 나아가 창조주가 인간을 만들며 보고 싶어하셨던 꿈으로 다가온다.

“너의 모든 선한 행동 하나하나가 세상을 변화시킨다.”

임보혁 기자 bosse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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