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금 까먹는 상장사 잇따라…‘돈 가뭄’에 한계기업 더 는다

김도년, 김경진 2022. 11. 21.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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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리 인상으로 부채 부담이 커지면 한계 선상에 놓이는 기업도 늘어나게 된다. pixabay.

한국거래소는 지난 15일 차량용 블랙박스 ‘위니캠’ 제조사 컨버즈에 대해 상장폐지 기준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15일 이내 이의 신청이 없으면 상폐 절차가 진행된다. 이 회사가 상폐 위기에 몰린 이유는 적자가 누적되면서 자본금을 몽땅 까먹은 완전 자본잠식 상태에 빠졌기 때문이다. 지난 2020년 10월 이 회사가 자본잠식 사실을 공시하자 거래소는 경영 개선 기회를 줬지만 결국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 주주 게시판에는 “2년여에 걸쳐 희망고문을 당했다”는 성토가 이어지고 있다.

컨버즈처럼 자본잠식으로 상장폐지 기로에 서는 기업은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한계 기업들이 치러야할 금융 비용은 가파르게 늘어나는데, 이익은 쪼그라들고 있기 때문이다. 금리 인상과 경기 침체, 자금시장의 경색이 한꺼번에 겹친 여파다.


3분기 코스피 상장사 9곳 자본잠식


21일 한국거래소가 코스피 상장사들의 3분기 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9개 상장사가 이미 자본 잠식에 빠진 것으로 나타났다. 연말도 오기 전에 적자 누적으로 자본금을 까먹기 시작한 상장사가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유가증권시장 상장 규정상 자본금 절반 이상이 잠식되면 관리종목으로 지정되고, 이런 상황이 2년 이상 이어질 경우 상폐 대상이 된다. 자본금이 전액 잠식된 회사는 곧바로 상폐 심사를 받는다.

3분기 기준 자본잠식률이 가장 높은 코스피 상장사는 한화손해보험이다. 사옥 매각, 증자에 나서고 있지만, 3분기 자본잠식률이 93.4%에 달했다. 다만 한화손보 관계자는 “내년부터 국제회계기준(IFRS17)을 적용하면 부채가 줄고 자본잠식 상태를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항공업계의 위기도 심화하고 있다. 티웨이항공은 자본금이 66.9% 잠식됐고, 아시아나항공도 계열사 에어부산·에어서울을 포함한 연결 기준으로 자본금을 57.3% 까먹었다. 이 회사의 부채비율은 지난해 말 2410.6%였지만, 올해 3분기에는 1만298%까지 상승했다. 3분기 보고서를 검토한 삼일회계법인은 ‘계속기업 관련 중요한 불확실성’이 있다고 적시했다. 부실한 재무 상태로 인해 회사가 계속해서 사업을 할 수 있을지 불확실하다는 판단이다.

이만우 고려대 경영대학 명예교수는 “항공사들은 영업으로 벌어들이는 현금(영업활동 현금흐름)이 마이너스 상태로 기초체력 자체가 크게 나빠진 상황”이라며 “원화가치 하락으로 외화 부채가 늘어 자금 조달마저 어렵다 보니 이중고를 겪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부동산 시장 위축과 자금시장 경색의 여파도 커지고 있다. 건설사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상환 부담이 커지고, 상장 계열사에까지 불똥이 튀면서다. 롯데케미칼은 지난 18일 1조1000억원 규모의 주주 배정 방식 유상증자를 결정했다고 공시했다. 일진머티리얼즈 인수 자금을 마련해야 하는 상황에서 롯데건설에 대규모 지원에 나서면서 자금 부담이 늘어난 영향이다. 재무 부담이 그룹 전반으로 확대되는 상황에서 하석주 롯데건설 대표이사는 정기 임원 인사를 앞두고 사의를 표명하기도 했다.

관리종목 지정 기준에 해당하진 않지만, KR모터스(38.5%)·티비에이치글로벌(30.9%)·금호타이어(13.4%)·HJ중공업(7%)·평화산업(5.4%)·아센디오(3.5%) 등의 코스피 상장사도 부분 자본 잠식 상태를 드러냈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내년 한계기업 더 는다…사업 구조조정 유도해야”


전문가들은 내년에는 영업으로 번 돈(영업이익)으로 이자도 못 갚는 한계기업도 빠르게 늘어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물가가 계속 오르면 금리 인상이 불가피해 금융 부담은 지금보다 더 늘어날 것”이라며 “부채가 많은 기업의 상황은 더욱 나빠지고, 이런 기업에 투자한 금융시장 전반으로도 위험이 확산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계기업의 연쇄 부도를 막으려면 수익 구조 자체를 바꾸는 근본적 처방이 이뤄져야 한다는 점도 강조한다. 이만우 교수는 “한계기업이 금융 지원에 의존해 수명만 연장하게 하면, 결국 부실 규모만 키우게 된다”며 “정부는 이들 기업이 근본적인 사업 구조조정으로 이익률 자체를 높일 수 있도록 업종 전환을 유도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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