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둘러싼 여야의 ‘동상이몽’
이론적으로 보면 국민의힘 주장이 맞다. 하지만 이런 주장이 공감을 얻기 위해서는 전제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가장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책임져야 할 사람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다.
현재 대통령실과 여당은 진상이 확인된 후 책임을 물어도 늦지 않다는 입장이다. 일면 타당한 주장이다. 하지만 이는 법률가적 마인드에서 비롯된 판단이다. 법적으로는 팩트가 확인되고 진상이 규명된 후 ‘법률적 책임’을 묻는 것이 올바른 순서다. 하지만 정치의 영역에서 통용되는 논리는 다르다. 정치에서는 민심, 즉 여론의 판단이 중요하다. 이번 참사에서 드러난 보고 체계의 문제는 주무부처 장관 책임이라는 여론이 적지 않다. 아무리 행안부 장관이 경찰 업무에 개입할 수 없다 해도, 보고 체계가 이해할 수 없는 수준으로 망가져 있다는 사실은 관리 감독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이뿐 아니라 최소한 언제부터 압사 위험을 알리는 신고가 들어왔는지, 그리고 그 이후로도 수차례 신고가 들어왔음에도 경찰은 왜 사전 예방 조치를 제대로 하지 못했는지에 대한 이유와 사실에 대한 장관의 인지도 중요하다. 이는 경찰 업무가 독립적으로 이뤄진다는 사안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문제다. 인지에 따라 책임을 물을 수도 있다.
아직까지는 정치적이든 도의적 차원에서든 책임을 지겠다는 사람도, 책임을 묻는 사람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경찰의 수사 결과를 보고 국정조사 실시를 검토하자고 한다면, 국민적 공감대를 얻기 힘들어 보인다. 더구나 이상민 장관이 계속 국민 정서와 동떨어진 발언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여론은 더욱 여권 주장에 공감하기 힘들다.
이 장관은 한 언론사 기자에게 이태원 참사와 관련 “누군들 폼 나게 사표 던지고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도무지 공감 능력을 어디서 잃어버렸는지 묻고 싶다. 이 장관은 공식 인터뷰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사과했지만, 대체 몇 번째인지 모를 정도로 실언을 반복하고 있다. 이를 감안하면 장관 사과가 비난 여론을 잠재울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상황을 요약하면, 주무부처 장관은 실언을 계속하고 있고, 총리는 참사 관련 외신기자 회견장에서 농담했다 비난을 받고 있으며, 대통령실 수석들은 국회에서 “웃기고 있네”라는 필담이나 하고 있는 요즘이다. 이러니 국정감사에 대한 여권 주장이 여론 지지를 받을 수 있겠나.
그렇다고 야당이 단독으로 국정감사를 추진하기도 쉽지 않다. 현재 야당은 거리로 나가 국정조사를 위한 서명 운동에 돌입했다. 민주당은 11월 12일 서울시당과 경기도당을 시작으로 각 시도당에서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와 특검 추진을 위한 서명운동본부 발대식을 가졌다. 원내 투쟁과 거리 투쟁을 병행하는 전략에 돌입한 것이다.
그런데 민주당 생각대로 상황이 돌아갈지는 모르겠다. 11월 14일, 진보 매체 2곳이 이태원 참사 희생자 158명 중 155명의 명단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희생자 명단을 발표한 더탐사와 민들레는 “얼굴 사진은 물론 나이를 비롯한 다른 인적 사항에 관한 정보 없이 이름만 기재해 희생자들이 구체적으로 특정되지는 않는다”며 “최소한 이름만이라도 공개하는 것이 진정한 애도와 책임 규명에 기여하는 길이라고 판단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유가족 협의체가 구성되지 않아 이름만 공개하는 것이라도 유족들께 동의를 구하지 못한 점에 대해서는 깊이 양해를 구한다”며 “희생자들의 영정과 사연, 기타 심경을 전하고 싶은 유족께서는 이메일로 연락을 주시면 최대한 반영토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점은, 해당 매체들이 유가족 동의를 받지 않은 상태에서 명단을 발표했다는 사실이다. 해당 매체가 민주당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매체라고 규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재명 대표가 11월 11일 SNS에 “유족이 원하는 방식으로 애도하는 것이 패륜인가. 고인의 영정 앞에 그의 이름을 불러드리는 것이 패륜인가”라고 언급했다는 점에서, 이 대표 발언과 해당 매체의 명단 공개가 오버랩될 가능성은 있다. 이 대표가 ‘유가족이 원하는 방식’이라는 전제를 달았음에도 말이다. 여론이 명단 공개에 부정적으로 흐르면 이런 ‘이미지의 오버랩’은 민주당 장외 투쟁에 상당한 장애 요인이 될 수 있다.
벌써부터 그런 조짐이 보인다. 민주당과 국정조사 추진에 공조하고 있는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참담하다. 누차 밝혔듯이 정의당은 유가족 동의 없는 명단 공개에 강한 유감을 표한다”고 했다. 이뿐 아니라 진보 단체인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역시, 유가족 동의 없는 명단 공개를 공개 비판하고 나섰다. 참사나 민주화 운동 희생자 명단이 모두 공개되는 것은 아니다. 대표적인 사례로 5·18 민주화 유공자 명단은 공개되지 않고 있다. 명단 공개는 신중해야 할 사안이기 때문이다. 유가족 동의 없는 희생자 명단 공개는 ‘희생자·유가족 중심 사고’와 직결되는 문제다. 희생자 유가족 대다수가 명단 공개를 원했다면 문제가 없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명단 공개는 ‘희생자·유가족 중심주의’에서 벗어나는 행위다.
민주당은 “동의 없이 명단이 공개되는 건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면서도, 희생자 6명의 유가족 9명을 만난 결과 “억울하게 희생을 당했는데 희생자들이 국민 속에서 기억됐으면 좋겠다. 여러 가지 것이 대부분 공개 안 돼 답답하다는 취지의 말이 있었다”며 “그런 것으로 봐서는 유가족 중에서도 실제 희생자 명단이 공개되고 사진도 공개되고 제대로 된 추모가 됐으면 좋겠다는 뜻을 가진 유가족도 상당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상당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는 식의 ‘주관적 추정’을 공당이 현재 시점에서 말해도 되는지 의문이다.
여기에 더해 민주당 의원 20여명이 주축이 된 ‘10·29 참사 진상 규명 책임자 처벌 촉구 의원 모임’은 ‘희생자 온라인 기억관’을 개설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결국 이 대표의 과거 언급과 민주당의 이런 모습이 오버랩되면서 명단 공개를 둘러싼 부정적 여론의 화살이 민주당을 향할 수도 있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면 국정조사에 대한 여론도 나빠질 수 있다. 민주당 의도가 참사와 정치를 분리하며 사안에 접근하는 것이라 해도, 여론이 명단 공개 논란에 민주당도 포함된다고 생각하면, ‘망자 정치’ 논란의 중심에 설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슬픔을 순수한 슬픔으로 언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슬픔을 슬픔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사회에서는 망자의 인권도, 유가족의 인권도 제대로 지켜질 수 없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85호 (2022.11.23~2022.11.29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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