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전쟁과 평화

박상은 2022. 11. 19. 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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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은 사회부 기자


제27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7)가 끝을 향해 가고 있다. COP는 세계 정상이 모여 온실가스 감축 이행을 점검하고 기후변화 대응을 논의하는 자리다. 이집트 샤름 엘 셰이크에서 6일부터 개최된 이번 총회에는 198개국이 참석했다. 여기에는 전쟁으로 극심한 피해를 본 우크라이나도 포함됐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지난 2월 24일 이후 9개월째 계속되고 있다. 그간 우크라이나에서 전해진 소식은 참담하기 그지없다. 유니세프가 지난 15일 기준으로 파악한 사망자 숫자는 6490명, 부상자는 9972명, 난민은 1510만명이다. 우크라이나의 키이우 경제대학이 9월까지 추산한 주택·교통 등 인프라 피해 규모는 1270억 달러, 우리나라 돈으로 168조원에 이른다. 최근에는 에너지 기반 시설이 집중 폭격을 당해 발전시설의 약 40%가 파괴됐다고 한다. 우크라이나 국민은 미사일 공포에 더해 물도 전기도 난방도 제대로 공급되지 않는 혹독한 겨울을 대비하고 있다.

이토록 어려운 시기에 COP27 참석을 결정한 우크라이나는 총회 내내 일관된 목소리를 냈다. 전쟁을 멈출 수 없다면, 평화가 없다면 기후변화도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가 국제사회에 지원과 지지를 호소하는 광경은 여러 차례 보았지만 COP27에서 나온 메시지는 유독 강렬했다. 전쟁과 기후변화, 인류를 위협하는 두 가지 요소에는 분명 떼려야 뗄 수 없는 연관성이 있었다.

러시아는 세계 1위 천연가스 수출국이자 세계 2위의 원유 수출국이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전쟁 자금이 결국 석유나 가스 같은 화석연료에서 나온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러시아가 가진 에너지는 서방 제재를 무력화시키는 강력한 무기다. 유럽연합 회원국이 수입하는 천연가스 중 러시아산 비중은 2020년 기준 38.2%에 달한다. 러시아는 그동안 유럽 국가들을 상대로 천연가스 공급을 중단하거나 감축하면서 우크라이나 지원이나 안보 협력을 방해해왔다.

무역 제재로 유럽에 수출하지 못한 러시아산 원유는 중국과 인도 같은 아시아 국가로 흘러 들어갔다. 인도에서 정제된 원유가 출처를 알 수 없게 ‘세탁’돼 유럽이나 미국으로 공급된다는 의혹까지 나온다. 지난 2월 말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회의에 참석한 우크라이나 기후학자 스비틀라나 크라코프스카는 “인간이 초래한 기후변화와 우크라이나 전쟁은 화석연료라는 같은 뿌리를 가지고 있다”고 역설했다. 화석연료에 대한 높은 의존도가 기후변화를 만들고, 동시에 전쟁을 가능케 한다는 지적이다.

전쟁은 그 자체가 막대한 온실가스 배출 행위이기도 하다. 우크라이나 환경 당국이 산림과 농경지에서 발생한 화재, 에너지 저장고 공격으로 불타버린 석유량 등을 종합한 결과 러시아 침공으로 발생한 온실가스는 3300만t에 달했다. 도시를 재건하는 과정에서는 4900만t의 온실가스가 추가로 배출될 것으로 추정됐다.

러시아 침공으로 사라진 우크라이나 숲은 약 2만㎢, 우리나라의 5분의 1 수준이다. 국가 보호구역은 20%가 훼손됐다. 러시아 군함이 사용하는 수중 음파 탐지기가 돌고래의 방향 감각을 교란시켜 흑해에 사는 돌고래들이 떼죽음을 당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우크라이나는 COP27에서 러시아의 ‘환경 범죄’ 증거를 수집하고 있으며 이를 토대로 보상을 요구할 거라는 계획도 밝혔다. 스비틀라나 그린추크 우크라이나 환경부 차관은 “이것은 단순한 전쟁이 아니라 국가 테러이며 의도적인 생태계 파괴”라고 말했다.

IPCC가 발표한 ‘제6차 평가보고서’에 따르면 2011년부터 10년간 지구 평균온도는 산업화 이전 대비 1.09도 올랐다. 현재 수준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유지한다면 2040년까지 지구 평균온도가 1.5도 상승할 가능성이 크다는 게 IPCC의 전망이다. 우크라이나는 COP27에서 국제 기후협약을 준수하고, 녹색 에너지를 생산하는 친환경 국가로 거듭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이를 위해 ‘모든 영토 해방’과 ‘오래 지속되는 평화’가 보장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평화 없이는 효과적인 기후 정책도 있을 수 없다.” 우크라이나의 잠재력이 하루빨리 지구의 미래를 위해 쓰일 수 있길, 한 그루의 나무 한 마리의 동물 한 사람의 내일이 더는 폭력에 스러지지 않길 바라고 또 바란다.

박상은 사회부 기자 pse0212@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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