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책 만들다, 첫 소설집 낸 김화진 작가 "입장 바꿔보기는 나의 힘"

김정연 2022. 11. 18.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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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만드는 사람에서 책 쓰는 사람 됐다
첫 소설집 『나주에 대하여』 낸 김화진
첫 소설집 『나주에 대하여』(문학동네)를 펴낸 김화진 작가는 "평소 마음을 적어둔 메모를 재료로 퇴근 후 소설을 쓴다"며 "신화, 설화, 우화를 좋아하는데 나중엔 더 상상력이 더해진 글도 쓰고 싶다"고 말했다. 김경록 기자


‘쟤는 왜 저럴까, 나는 왜 이럴까, 나라고 안 저럴까?’

지난달 첫 소설집 『나주에 대하여』(문학동네)를 펴낸 작가 김화진(30)이 평소 가장 많이 하는 생각이다. 하루 종일 가장 많이 하는 일이 “입장을 바꿔보기”라는 그의 책에는 그래서 단단한 인물과 유약한 인물, 흔들리지 않는 인물과 흔들리는 인물, 차가운 인물과 따뜻한 인물, 자신 있는 인물과 움츠리는 인물 등 상반된 입장의 양쪽이 모두 그려진다.

『나주에 대하여』는 2021년 문화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김화진의 첫 책이다. 신춘문예 당선작 ‘나주에 대하여’를 비롯해 여러 곳에 기고한 짧은 소설 6편과 미발표작 2편을 담았다. 지난 4일 만난 김화진 작가는 "너무 좋은 일이 생기면 ‘아닐 거야’ 생각하는 편이라, 책을 받아들어도 실감이 잘 안 났다. 등단으로 꿈을 이뤘지만, 책도 이렇게 빨리 나올 줄 몰랐다"며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현직 편집자이자 신인 작가 "남이 책을 내주다니, 너무 편하더라"


신인 작가인 김화진은 민음사에서 한국문학을 담당하는 7년차 현직 편집자이기도 하다. 남의 책을 만들던 편집자가 아닌, 작가로서 자신이 낸 첫 책에 대해 그는 "편집자로 일할 땐 꼼꼼히 본 것도 '혹시 어딘가 잘못된 게 있지 않을까'하고 불안해 하는 타입"이라며 "편집자로서 겪는 불안을 남이 해주니까, 책을 만든 느낌이 안 든다"고 말했다.

대학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한 김씨는 마지막 학기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소설 강의를 듣고, 2016년 입사 이후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꾸준히 쓰고, 결과물이 쌓일 때마다 여러 공모전에 내기 시작했다. 3~4년 간 온갖 신춘문예에 이름 가운뎃 글자만 바꿔 소설을 냈고, 최근 2년은 모든 신문사 신춘문예에 빠짐없이 응모한 결과 2021년 신춘문예에선 ‘김세진’ 이름으로 낸 작품이 당선됐다. 그는 "'김화진'이라고 적혀있지 않으니까, 나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못 믿겠더라"고 당시의 기분을 전했다.

제목 '나주에 대하여'는 지역 '나주'가 아니라 작품 속 주인공 이름 '나주'를 가리킨다. 책 표지에 사람 뒷모습을 넣은 건 "공간이나 사물의 사진을 쓰면 '나주'가 지역으로 인식될 것 같으니, 사람 사진을 넣어 '인물'을 부각시키자"는 편집자의 아이디어였다고 한다. 문학동네

파가 말을 걸고, 구름이 사자로 변신하는 도시의 환상


김화진은 약 3년간 민음사의 유튜브 채널 '민음사TV'에서 '말줄임표' 코너를 맡아 이름과 얼굴이 알려진 편집자이기도 했다. 사진은 민음사의 에세이 시리즈 '메일과 영원'을 만드는 과정에 대해 소개하는 모습. 왼쪽은 동료인 정기현 편집자, 오른쪽이 김화진 작가다. 민음사가 아닌 문학동네에서 책을 낸 데 대해 김화진은 “문학동네가 가장 빠르게 결정하고 연락해왔다”며 “그리고 오히려 민음사에서 책이 나가면 ‘직원이라서 그런 것 아니야?’ 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아서, 회사에서는 오히려 암묵적으로 제 소설 이야기를 안했다”고 덧붙였다. 유튜브 '민음사TV' 캡쳐

작품의 처음과 끝을 ‘환상’으로 배치한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김씨는 유튜브 '민음사TV'에서 '말줄임표'(2019~21) 코너를 운영해 얼굴과 이름이 이미 알려져 있었다. 그는 “일부 독자들이 저를 아니까, 현실적인 작품을 보면 픽션으로 읽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며 “처음부터 '이건 픽션이에요!'라고 확실하게 말하고 싶어서 첫 작품과 마지막 작품을 우선 환상으로 정해두고 책 구성을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메모해둔 마음이 재료… 등단 후 흔들린 마음도 소설로


김화진 작가는 "퇴근후 마음을 글로 정리해낸 걸 다듬어 소설을 만들면, 마음도 해소되고 소설도 하나 생기니 이득"이라고 웃으며 말했다. 김경록 기자

환상 소설이 아닌 나머지 6편은 나와 다른 성향의 사람을 관찰하고, 두 사람의 관계를 분석하고, 그사이 찢기고 베이고 들러붙었다 떼이는 마음에 대한 세밀한 묘사가 주축이다.
작가의 직장 선배이자 문학평론가 박혜진이 쓴 해설의 제목도 ‘마음 이론’이다. 누군가는 무심히 지나칠 것들이, 그에겐 상처이자 문학의 재료가 되기도 한다. 그 섬세함은 '천희의 이별은 내 것보다는 덜 맵고 덜 찐득거렸을 것이다' '지겹다 지겨워 누수처럼 우는 일...' ('새 이야기'), '마음을 너무 붙이네요, 은영씨는'(근육의 모양) '서로 아픈 부분을 보여줘야만 친구가 된다는 것?'('척출기') 등 직관적이고 솔직한 표현으로 드러난다.

이름과 얼굴이 조금 알려진 ‘편집자’에서 갑자기 ‘작가’가 된 뒤, 일각의 편견 어린 시선이 힘들었던 경험은 등단 후 가장 먼저 쓴 작품 ‘침묵의 사자’(미발표작)에 담았다. 김씨는 "많은 사람들이 저를 편집자로 아는데, 갑자기 등단을 해버렸다"며 "등단 후 들리는 여러 이야기에 흔들리지 않으려고 노력했는데도, 마음에 앙금이 남는 것 같아서 ‘좋은 일이 생겼는데 굳이 안 좋은 마음으로 살진 말아야지’라는 생각에서 썼다"고 설명했다.

딱히 취미도 없고 퇴근 후 글을 쓰는 게 주된 일과라는 그는 "축축한 마음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해도, 쓰다 보면 마음이 조금 마를 것 같은 가능성이 보이는 게 좋다. 평소 메모해둔 마음을 소설로 옮기면 해소도 되고, 소설도 한 편 생기니 이득"이라며 해맑게 웃었다. 이어 "현실을 그린 소설 말고 불교 설화, 신화, 우화, 동화도 좋아한다"며 "지금까지는 '내 마음이 딱 달라붙어 있는' 소설을 썼지만, 나중에는 거리를 더 두고 자유로워진 문장으로 다양한 시점과 상상력을 더한 소설도 쓰고 싶다"고 덧붙였다.

김정연 기자 kim.jeong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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