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농구 신생팀과 꼴찌팀의 유쾌한 반란

이준목 2022. 11. 18.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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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생팀 고양 캐롯·꼴찌팀 서울 삼성, 나란히 승전고

[이준목 기자]

프로농구 신생팀 고양 캐롯과, 꼴찌팀이었던 서울 삼성이 같은 날 나란히 승전고를 올리며 기분좋은 상승세를 이어갔다. 캐롯은 17일 대구실내체육관에서 열린 2022~2023 SKT 에이닷 프로농구 정규리그에서 대구 한국가스공사를 90-66, 무려 24점차로 대파하며 시즌 첫 4연승을 달렸다. 삼성은 같은날 수원 KT와 접전끝에 66-62로 역전승을 거뒀다.

캐롯은 이로서 8승 3패를 기록하며 이날 경기가 없던 안양 KGC인삼공사와 함께 공동 1위로 올라섰다. 삼성은 KT전 7연패의 악몽을 끊어내며 7승 5패로 단독 5위를 지켰다. 약체로 지목되었던 두 팀의 반란은 올시즌 프로농구의 이변을 주도하고 있다는 평가다.

캐롯은 전신인 고양 오리온을 데이원스포츠가 인수하여 창단했지만 사령탑에서 주축 선수들이 대폭 물갈이되며 사실상 전혀 다른 팀이나 마찬가지였다. 국가대표 슈터 전성현을 제외하면 정상급 국내 선수가 없었고 높이와 조직력이 불안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김승기 감독도 '3년내 우승 프로젝트'를 제시하며 "올해는 성적보다는 팀을 만들어가는 단계"라고 전망했을 정도다.

하지만 캐롯은 막상 뚜껑을 열자 화끈한 공격력과 끈적한 수비가 조화를 이루며 단숨에 강팀으로 부상했다. 리바운드 최하위(35.9개)인 캐롯은 높이의 열세를 한발 더 뛰는 왕성한 활동량과 빠른 공수전환으로 만회하고 있다. 공격적인 수비를 강조하는 김승기 감독의 팀답게 캐롯은 경기당 7.7개의 스틸로 창원 LG(7.9개)에 이어 '전체 2위'에 올라있다. 도전적으로 공을 빼앗는 수비를 통하여 상대의 실책을 유발하면서도 정작 캐롯의 턴오버는 9.2개로 리그 최저 1위다.

공격에서는 속공과 함께 폭발적인 양궁농구가 돋보인다. 캐롯은 경기당 11.5개의 3점슛과 37.7%의 성공률도 모두 1위에 올라있다. 캐롯은 대승을 거둔 가스공사전에서도 무려 37개의 3점슛을 적극적으로 시도하여 13개를 꽃아넣으며 전반에 일찌감치 상대를 압도했다.

주포 전성현은 경기당 17.8점(전체 3위/국내 1위)에 매경기 3.4개의 3점슛(1위)을 터뜨리고 있다. 무려 52경기 연속 3점슛 성공 기록을 이어가며 1위 조성원(전 LG)의 54경기 역대 기록에 단 2경기 차이로 근접했다.

또한 전성현 외에도 디드릭 로슨-데이비드 사이먼-한호빈-최현민 등 국내 선수와 외인을 가리지 않고 고르게 득점에 가담하고 있으며 김진유-조한민 등 식스맨들은 짧은 출전시간에도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는 허슬플레이로 팀의 사기를 높이고 있다.

김승기 감독도 선수들의 활약에 큰 자부심을 드러내고 있다. 시즌 전만 해도 목표를 20승으로 잡았다고 밝힌 김 감독은 "내가 봐도 대단하다. 팬들이 보시기에도 감동일 것 같다, 다들 안 될 것이라고 했는데 우리 선수들 덕분에 1등까지 올라갔다. 선수들이 이렇게만 해준다면 감독이 할말이 없을 정도"라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지난 시즌 구단 역사상 최악의 성적을 기록했던 삼성의 반전도 돋보인다. 삼성은 지난 시즌 9승 45패(승률 0.167)로 두 자릿수 승리조차 실패하며 무기력한 모습을 보였지만, 은희석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올시즌에는 벌써 2라운드만에 지난 시즌에 거둔 승수와 2승 차이로 근접했다.

올시즌 삼성의 경기력에서 가장 돋보이는 부분은 역시 끈끈해진 뒷심이다. 삼성은 이날 KT에게 전반을 23-33으로 크게 뒤지는 등 시종일관 끌려갔다. 하지만 후반들어 마커스 데릭슨을 앞세워 대반격에 나선 삼성은, 데릭슨이 3쿼터에만 14점을 몰아넣었고 쿼터 종료 직전에는 3점슛까지 성공시켜 동점을 이뤘다.

삼성은 4쿼터에도 한때 다시 7점차까지 밀렸으나 이정현의 노련한 경기운영과 데릭슨의 결정력을 앞세워 경기 종료 2분을 남겨놓고 기어코 역전에 성공했다. 한번 흐름을 내주면 속수무책으로 무너지던 지난 시즌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장면들이다. 데릭슨은 27점 11리바운드로 더블-더블을 기록했고, 이정현은 14점 3어시스트 7리바운드로 뒤를 받쳤다. 팀득점의 62%를 오직 두 선수가 책임졌다.

특히 은희석 감독이 지휘봉을 잡으며 삼성이 가장 환골탈태한 부분은 역시 수비다. 꼴찌를 기록한 지난 시즌 85.5실점으로 압도적인 최다 실점팀의 불명예를 안았던 삼성은, 올시즌에는 75실점만을 내주며 단숨에 최소실점팀으로 변신했다.

캐롯이 적극적으로 공을 빼앗아 빠르게 역습하는 스타일이라면, 삼성은 아예 경기 템포 자체를 수비에 맞추고 상대가 잘하는 것을 최대한 못하게 만드는 스타일이다. 특히 현대농구에서 비중이 크게 높아진 3점슛에 있어서 삼성은 유일하게 상대팀 3점슛 허용률을 20%대(28.8%)로 억제하고 있다.

또한 삼성은 올 시즌 현재까지 치른 12경기 중 절반인 6경기가 5점 차 이내의 접전이었다. 삼성은 여기에서만 팀승수의 절반이 넘는 4승을 챙겼다. 수비가 버텨주니 설사 패배한 경기라도 한번에 무너지지 않고 끝까지 버티면서 싸울 수 있었다. 삼성은 11월 들어 공동 선두인 KGC와 캐롯도 각각 한 차례씩 잡아낸 바 있으며 상대 팀 득점을 70점대 이하로 묶어낸 경기는 모두 승리했다. 이날 kt와의 경기에서 보여준 4쿼터 대역전극도 승부처에서 보여준 끈끈한 수비가 원동력이었다.

올해 4월 부임한 은희석 감독은 그동안 삼성 농구의 체질을 바꾸겠다고 공언해왔다. 그동안 많은 역대 감독과 스타들이 거쳐갔지만 이루지 못했던 목표였다. 삼성은 선수구성상 수비력이 뛰어난 선수는 그리 많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과 반년만에 전혀 다른 수준의 수비 조직력을 선보이고 있다. 이는 감독의 역량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약체로 거론되었던 캐롯과 삼성의 반전은 올시즌 프로농구를 더욱 흥미롭게 만들며 경쟁팀들에게도 신선한 자극을 주고 있다. SK, KCC, 가스공사 등 당초 두 팀보다 더 높은 평가를 받았던 우승후보들이 초반 극심한 부진을 보인 것도 혼전에 한 몫을 담당했다. 캐롯과 삼성은 과연 지금의 상승세를 계속 이어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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