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윰노트] 영혼이라도 공기처럼 날아가기를

2022. 11. 18. 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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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체력(‘걷기의 말들’ 작가·생활체육인)


1994년 여름 이야기를 먼저 해야겠다. 그 끔찍했던 더위를 기억하는가. 서울 최고기온이 38.4도까지 오르면서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그뿐만 아니라 낮 최고기온 33도 이상이었던 날이 34일간이나 지속됐다. 끝없이 이어지는 열대야에 사람들은 찜통 같은 집으로 들어가질 못했다. 밤새 야외에 앉아 있어도 바람 한 점 불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런 탓에 3000명이 넘는 온열 질환 사망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그 여름을 나는 잊으려야 잊을 수가 없다. 임신 막바지 상태였기 때문이다. 배가 바가지를 엎어 놓은 것처럼 부풀어 올랐다. 게다가 아이를 가지면 호르몬 영향으로 보통 때보다 체온이 높아진다. 가만히 앉아만 있는데도 손등에까지 땀이 몽글몽글 솟아났다. 무더위 때문에 죽을 맛이었지만 체한 것처럼 불편한 위장 또한 만만치 않은 고통이었다. 삶은 고구마 하나가 식도를 지나다 턱 하니 걸려 있는 것 같았다.

실은 폭염이나 소화불량보다 임신부였던 나를 더 위협했던 공포는 따로 있었다. 출근할 때마다 지하철 속으로 파도처럼 밀려드는 사람들이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면 앞뒤 안 보고 뛰어드는 인간들이었다. 잘못 눌려 배 속의 아기가 다칠까 봐 아침마다 엉엉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왜 출산 휴가를 내지 않았냐고? 휴가는커녕 결혼한 여성 직원에게 눈칫밥을 주던 시절이었다. 아침에 30분만 늦게 출근해도 훨씬 편했을 텐데 아무도 그런 배려를 해주지 않았다.

그런데도 꾸역꾸역 회사에 나간 이유는 뭘까. 단칸방에 살림을 차린 가난한 신혼부부가 별수 있을까. 그때만 해도 고가였던 에어컨을 들여놓을 형편이 되지 않았다. 집에서는 선풍기를 틀어 놓고 화장실에 들어가 앉아 온몸에 물을 뿌리면서 더위를 견뎠다. 출근하는 건 힘들었지만 그래도 회사에는 냉방 장치가 있었다. 넓은 사무실에서 원고를 읽다 보면 더위도, 가난도, 임신한 것도 잠시나마 잊었다. 결국은 출산 직전에 두 손 들고 사표를 내야 했지만.

9월이 다 갔는데도 더위는 사라질 기미가 없었다. 태열을 품고 태어난 아기는 온몸에 덕지덕지 딱지가 엉겼다. 아프고 가려운지 밤새 울어댔다. 몇 개월간 아기를 안고 종종댔다. 내 인생에서 최고로 고달팠던 기간이다. 다시 새로운 직장에 나가기 시작했다. 배 속이 텅 비었으니 이제 사람들 무서울 일이 사라졌을까? 웬걸, 당시엔 ‘푸시맨’이라는 아르바이트가 있었다. 출퇴근 시간에 몰리는 인파 중 한 사람이라도 더 지하철 차량 안으로 꾹꾹 밀어 넣었다.

신발이 벗겨지거나 옷이 후줄근하게 구겨지는 건 다반사였다. 문에 가방이 물린 채 옴짝달싹 못하는 일도 벌어졌다. 어쩔 수 없이 빨려 들어가 온몸이 짜부라진 채 서 있노라면 고문이 따로 없었다. 지하철이 곡선 구간을 통과할 때마다 한쪽으로 몸이 쏠리면서 비명소리가 터져 나왔다.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도 몸속에 각인돼 있던 두려움이 구토처럼 솟구친다. 이태원, 핼러윈, 158명, 압사. 2022년 서울 한복판 길거리에서 일어난 일이라고는 도무지 믿기지 않는 참사 때문이다.

사람에게 눌려 사람이 죽다니! 지옥의 아수라장 같은 고통 속에 갇혔던 희생자들이 가엾기 그지없다. 세상을 뜨는 마지막 순간까지 얼마나 괴롭고 끔찍했을까. “왜 늦은 시간에 이태원 같은 데 놀러갔냐”고 농담으로라도 탓하지 마라.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은 사람들에겐 애도가 먼저다. 아무도 그런 죽음을 상상하지 못했다. ‘까딱 잘못하면 죽는 게 아닐까?’ 위험을 감지하고 도움을 요청했는데도 발 빠른 조치를 취하지 않은 책임자를 탓하는 게 우선이다. 충분히 막을 수 있었던 어이없는 인재다.

여름의 폭염을 견디고 낳아 애지중지 키웠을, 아들 또래 생때같은 젊은이들이 대다수 희생돼 더 애달프다. 부디 마지막에 겪은 육체의 고통을 다 벗어버리고 영혼이라도 공기처럼 훨훨 날아가기를. 10·29 참사 고인들의 명복을 빈다.

마녀체력(‘걷기의 말들’ 작가·생활체육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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