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최약자라 했나…키움 구단의 생존 비법

반진욱 2022. 11. 17. 2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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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독에서 영웅으로 B·U·R·G·U·N·D·Y

227억원 대 56억원.

올해 한국시리즈에서 맞붙은 SSG 랜더스와 키움 히어로즈의 연봉 차이다. 히어로즈 야구 선수들의 연봉 총액 합은 SSG 랜더스 투수 김광현(81억원) 한 명보다도 낮다. 그야말로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었다. 누가 봐도 열세였던 상황이었음에도 키움은 한국시리즈 내내 SSG 랜더스를 몰아붙였다. 처음에는 여유롭던 SSG도 키움의 악착같은 공격에 진땀을 빼야 했다. 이번 한국시리즈를 제외하더라도 그동안 키움 히어로즈가 보여주는 행보는 야구계에 많은 충격을 줬다. 히어로즈는 모기업이 없는 구단 특성상 타 구단보다 투자할 수 있는 금액이 현저히 적다. 스타 선수 영입은 아예 불가능하다. 기껏 키워놓은 선수도 FA 자격을 얻으면 모두 팀을 떠난다. 돈이 부족한 탓에 팀 내 핵심 선수를 내주고 돈을 받는 현금 트레이드도 일상이다. 우승 경쟁은커녕, 5강 진출도 힘들다는 지적이 매해 쏟아지는 이유다. 그러나 키움은 평가를 비웃듯 매번 해법을 찾아냈다. 독특한 방식으로 팀을 단련하며 매번 가을 야구에 진출하는 강팀으로 거듭났다. 키움의 독특한 경영 비법은 키움 구단을 상징하는 색깔 ‘버건디’에서 따온 ‘버건디 블러드’로 불리며 화제를 모았다.

재계와 경영학계는 최소한의 투자로 최대의 결과를 뽑아내는 키움만의 경영 방식에 관심을 기울인다. 매경이코노미가 키움 히어로즈 야구단의 성공 방식을 ‘B·U·R·G·U·N·D·Y’라는 타이틀 아래 정리했다.

키움 히어로즈는 올해 ‘5강은 힘들 것’이라는 예측을 깨고 한국시리즈까지 진출하는 저력을 보여줬다. 최소한의 투자로 극강의 효율을 내는 키움 히어로즈 구단의 경영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연합뉴스)
▶Buy Experience

▷실력이 아닌 ‘경험’을 산다

키움 히어로즈는 팀 특성상 ‘고참 선수’ 비중이 적다. 신인을 적극 등용하는 특유의 시스템 때문이다. 문제는 선수들이 어리다 보니 정신적으로 흔들리는 사례가 많다는 것. 키움은 이런 문제를 실력이 저하돼 방출된 노장들을 사들이며 해결해왔다. 대표적인 예가 2020년에 영입한 이용규다. 국가대표 외야수로 산전수전을 다 겪은 베테랑 외야수였던 그는 한화가 리빌딩을 하면서 방출한 상태였다. 키움은 방출 소식을 듣자마자 재빠르게 움직여 이용규를 영입했다. 이용규는 베테랑으로서 자신의 경험을 전수하며 젊은 선수단을 이끌었다. 가을 야구에서도 강적으로 평가받던 KT 위즈와 LG 트윈스를 상대로 선수들을 다독이며 팀을 진두지휘했다. 2018년부터 정년이 끝난 직원을 채용하는 ‘시니어트랙’ 제도를 적용하는 기업이 늘어나고 있다. 전문성을 가진 우수 직원이 정년 이후에도 회사에서 일을 할 수 있도록 만든 제도다. 뛰어난 성과를 자랑하는 직원의 경험을 회사 성장에 활용하겠다는 취지다.

박병호는 LG 트윈스에서 ‘잉여 자원’으로 분류되던 만년 유망주였다. 히어로즈 이적 후 장점을 극대화시키면서 한국을 대표하는 거포 타자로 성장했다.
▶Utility Player

▷한 포지션만 고집하지 않는다

유틸리티 플레이어. 다양한 수비 위치를 소화할 수 있는 선수를 뜻하는 야구 용어다. 유틸리티 플레이어가 많은 팀은 선수 구성이 수월해진다. 한 명의 선수가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하기 때문에 선수단을 유연하게 구성할 수 있다.

팀 선수단 층이 얇은 키움은 유틸리티 플레이어를 적극 육성하는 구단 중 하나다. 올해도 김혜성, 김태진, 김휘집 등이 쏠쏠하게 활약하며 키움의 가을 야구 진출에 기여했다.

최근 다방면에 뛰어난 능력을 자랑하는 ‘T자형 인재’가 각광받는다. 한 분야에서 깊은 지식을 쌓은 동시에 다른 분야에서도 기본 지식을 쌓아 누구와도 소통·협업이 가능한 인재를 뜻한다.

이정후는 6년 차 KBO 야구 선수 중에서 연봉이 가장 높다. 같은 나이 때 류현진이 받았던(4억원) 연봉보다도 돈을 더 많이 받는다. 실력 우선주의의 키움 구단의 특색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연합뉴스)
▶Reasonable Payroll

▷합리적인 연봉 정책

키움 히어로즈는 ‘선수들에게 연봉이 박하다’는 게 야구계 인식이다. 이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이야기다. 키움 구단은 철저한 ‘성과 지상주의’를 지향한다. 성적이 좋으면 동년배 야구 선수보다 월등히 높은 연봉을 지급한다. 실제로 팀 내 최고 스타 플레이어인 6년 차 선수 이정후의 연봉은 7억5000만원이다. KBO 전체 6년 차 야구 선수 중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누구나 실력만 있다면 동년배 선수들보다 많은 돈을 쥘 수 있다. 이는 곧 선수들이 스스로 야구에 매진하는 ‘동기 부여’로 작용한다.

삼성전자는 올해 하반기부터 성과주의와 공정한 평가를 골자로 한 ‘미래 지향 인사제도 혁신안’을 적용 중이다. 직급별 표준 체류 기간을 폐지해 실력 있는 젊은 인재가 승진을 쉽게 하도록 만들었다. 실력만 있다면 제약 없이 승진할 수 있다. 애플과 구글 등 ‘시장 선도 기업’과 경쟁을 펼치려면 직원이 스스로 사명감을 갖도록 해야 한다는 삼성 안팎의 요구에 따라 제도를 만들었다.

안우진은 올해 리그 판도를 뒤흔드는 투수로 성장했다. 키움이 한국시리즈를 도전할 때마다 팀의 ‘핵심’이 될 만한 선수는 항상 보유하고 있었다. (연합뉴스)
▶Game Changer

▷‘판’을 바꾸는 선수들은 무조건 지킨다

투자하지 않는다고 해서 ‘스타’ 플레이어가 없는 것은 아니다. 키움은 꾸준히 KBO리그 최상위 플레이어들을 보유해왔다. 선수 유출이 많은 키움 히어로즈지만, 팀을 지탱해줄 핵심 선수는 절대 팔지 않는다. 히어로즈가 한국시리즈 우승을 도전할 때는 항상 그해 최고의 퍼포먼스를 보여준 선수가 있었다. 2014년에는 200안타를 기록한 서건창과 50홈런을 넘긴 박병호가 팀을 이끌었다. 2022년에는 타격 5관왕을 차지한 이정후와 국내 최고 우완 투수로 거듭난 안우진이 리그 판도를 흔들었다.

두산그룹이 오랫동안 유동성 위기를 겪을 무렵, 두산그룹은 핵심 계열사인 두산밥캣의 매각도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그룹의 현금 창출원이 모두 사라질 수 있다는 지적에 두산밥캣을 끝내 판매하지 않았다. 이후 두산밥캣은 미국 중장비 시장을 휩쓸며 부활에 성공했고 두산그룹이 위기를 탈출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Unique Standard

▷단점보다는 장점을 보고 스카우트

히어로즈는 선수를 평가할 때 단점보다는 선수의 장점을 보는 데 집중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장점을 극대화시켜 단점을 메우는 방식이다. 여러 차례 홈런왕을 거머쥐며 메이저리그까지 진출한 박병호가 대표적인 사례다. 박병호의 장타력에 주목한 히어로즈 구단은 2011년 팀의 중견급 불펜 투수 송신영과 김성현을 내주고, 박병호와 심수창을 LG에서 데리고 왔다. 2005년 데뷔 후 만년 2군 신세를 면치 못하던 박병호는 히어로즈에서 집중 훈련을 받고 ‘거포’로 환골탈태, KBO리그를 대표하는 강타자로 거듭났다.

경영학의 대가 피터 드러커는 경영자의 주요 과제로 조직원의 장점을 ‘극대화’하는 것을 꼽았다. 그는 “경영자는 조직원이 자신의 장점을 살려 타인에게 도움이 되도록 만들어야 한다. 조직원 개개인의 강점이 조직과 다른 구성원에게 도움이 되도록 설계한 조직이 곧 좋은 조직이다”라고 강조했다.

▶Navigate by System

▷팀 운영은 철저히 일관적으로

키움의 감독은 개성이 없다.

야구계에 흔히 알려진 말이다. 어떤 감독이 오든, 키움 히어로즈를 상징하는 ‘팀 스타일’은 바뀌지 않는다는 뜻이다. 일반적으로 야구단은 감독이 바뀌면 팀 운영 스타일도 자연스레 바뀐다. 키움은 다르다. 프런트를 중심으로 시스템 아래 선수단을 운영한다. 덕분에 감독 한 명이 바뀌어도 키움이 오랫동안 쌓아온 시스템은 바뀌지 않는다. 일관성을 갖춘 팀 기조는 키움이 꾸준히 성적을 내는 강팀으로 발돋움하는 계기로 작용했다.

일본 재계에서 ‘경영의 신’으로 불리는 이나모리 가즈오 전 교세라 회장은 기업가가 가져야 할 덕목으로 ‘일관성’을 강조해왔다. 그는 “사업을 올바르게 진행하려면 일관성을 가질 용기가 필요하다”고 늘 말했다. 회사 시스템이 일관성을 갖추고 나아가야 내부 구성원 그리고 고객들에게 신뢰를 줄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Drastic Decision

▷필요할 때는 모험을 걸고 ‘과감한 결단’

과감한 결단력도 키움을 상징하는 단어다. 모험이 필요할 때는 과감하게 승부수를 던진다. 팀의 전력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되는 선수라 판단되면 기꺼이 거액을 지출한다. 올해 100만달러를 지불하고 데리고 온 ‘야시엘 푸이그’가 대표적인 예다. 반면, 팀을 상징하는 ‘프랜차이즈 스타’라도 팀 운영에 도움이 되지 않으면 과감하게 내다 판다. 2021년 투수진을 보강하기 위해 프랜차이즈 스타 2루수 서건창을 LG에 내줬다. 이어 팀의 상징과도 같던 거포 박병호 역시 기량이 하락하자 FA로 떠나보냈다.

2015년 한화그룹은 삼성그룹의 방산·화학 부문 계열사 4개사를 2조원에 사들이는 ‘빅딜’을 단행했다. 무모한 인수합병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지만, 그룹의 미래를 생각한 한화는 과감하게 거래를 진행했다. 당시 사들인 삼성테크윈(현 한화테크윈)과 삼성탈레스(현 한화시스템 방산 부문)는 한화가 2022년 글로벌 우주·방산 기업으로 발돋움하는 초석이 됐다.

▶Youth System

▷키워내야 산다, 신인 적극 등용

키움은 신인을 등용시키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실력이 1군에 통한다 싶으면 바로 1군 경기에 내보낸다. 덕분에 비교적 어린 나이에 큰 무대를 경험하게 되고 다른 팀의 유망주보다 더 빠른 속도로 성장한다. 덕분에 선수 유출이 많아도 새로운 스타 선수가 나타나 자리를 바로 메꾼다. 2014년 대활약을 기록한 유격수 강정호가 메이저리그로 진출한 뒤, 바로 김하성이 등장하며 강정호의 빈자리를 채웠다. 이후 2021년 김하성이 메이저리그로 간 뒤에는 김혜성과 김휘집 등 신인이 연달아 등장하며 공백을 메웠다.

글로벌 빅테크 기업 구글은 신입 직원에게 ‘현업에서의 성장’을 강조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신입 직원을 현장에 빨리 투입시키는 배경이다. 현장에서 경험을 통해 얻는 배움이 곧 직원 능력 향상으로 이어진다고 보는 것이다.

[반진욱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84호 (2022.11.16~2022.11.22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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