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에 감원 한파 IB 출신 ‘벌벌’…증권가 1년 새 천당에서 지옥으로

배준희 2022. 11. 17. 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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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금 시장 경색과 증시 부진으로 증권가에 구조조정 한파가 몰아칠 전망이다. 사진은 여의도 증권가 일대 모습. (매경DB)
연말을 앞둔 여의도 증권가 분위기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연초 역대급 성과급으로 잔뜩 들떴던 분위기는 싹 사라졌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우려로 자금 시장이 잔뜩 경색되자 인력 구조조정이 본격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확산 중이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주요 증권사는 지난 3분기 대부분 ‘어닝 쇼크’를 기록했다. 초대형 IB도 예외는 아니다. NH투자증권은 연결 기준 3분기 순이익이 1년 전보다 90% 이상 줄었다. 이 기간 하이투자증권과 BNK투자증권의 순이익은 각각 80%, 60%가량 줄었다. 대부분 부동산 PF 관련 충당금 손실이 ‘어닝 쇼크’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사정이 이렇자, 중소형 증권사를 중심으로 단기차입금 한도를 늘리거나 유휴 자산 매각 등으로 유동성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이 가시화했다. BNK투자증권은 단기자금 유동성 확보를 위해 한국증권금융 담보금융지원대출 프로그램을 통해 받을 수 있는 액수 한도를 기존 900억원에서 1700억원으로 두 배가량 늘렸다. IBK투자증권은 전자단기사채와 기업어음(CP) 발행 한도를 5000억원 더 늘렸다. 이외 후순위 부동산 PF를 깔고 앉은 일부 증권사는 단기 유동성 확보를 위해 상장지수펀드(ETF)나 기업어음(CP) 등 보유 자산 매각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시장에서는 자연스레 인력 구조조정에 관한 우려가 파다하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일자리 우려에 민감한 대정부 관계를 고려해 공식적으로 희망퇴직에 나서는 증권사는 거의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50대 이상 고연차 부서장급을 중심으로 사업부·직무 재배치 등의 간접적인 수단으로 자연스러운 인력 구조조정을 유도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대형 증권사 관계자는 “회사 차원에서 인위적인 구조조정을 하지 않겠다고 공언하더라도 고정비를 줄이려는 움직임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인력 감축에 적극적인 곳은 중소형 증권사다. 계약직 비중이 높은 중소형 증권사에서는 벌써부터 이직을 타진하는 직원이 적지 않은 분위기다. 올 상반기 기준 다올투자증권의 계약직 비중이 64%로 가장 높았다. 메리츠증권(63%), 하나증권과 한양증권(각각 52%), 하이투자증권(40%), 대신증권(35%) 등도 계약직 비중이 높은 편이다. 계약직 구조조정은 사측이 계약 갱신을 거절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이때 사측은 갱신 거절의 정당한 사유를 제시해야 한다. 인력 효율화를 저울질하던 회사 입장에서는 자금 경색으로 줄줄이 어닝 쇼크를 기록한 것이 명분 삼기 딱 좋다는 평가다.

일부 증권사에서는 이번 경기 침체 우려를 그동안 미뤘던 비용 부서의 구조조정 명분으로 삼으려는 분위기도 읽힌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재무 부서에서는 서둘러 인식하지 않아도 될 손실을 굳이 앞당겨 인식하려는 움직임이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 ‘미니 빅배스’로 털고 갈 수 있는 손실은 미리 정리하면서 인력 구조조정을 위한 분위기를 잡으려는 것 같다”고 털어놨다.

▶중소형사 계약 갱신 거절 속출

▷사업부·직무 재배치 활발

구조조정 우선순위로 거론되는 사업부는 리서치센터와 법인영업, 부동산 PF 본부 등이다. 증권사는 타 업종 대비 연봉계약직 비중이 높은 편이지만 이들 부서는 고액 연봉자가 많아 업황이 부진할 때마다 구조조정 1순위로 거론됐다. 실제 케이프투자증권은 법인영업, 리서치본부를 폐쇄하기로 결정했다. 이 증권사는 업황 부진 우려가 불거질 때마다 구조조정에 나설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리서치센터나 법인영업 조직을 형식적으로 운영해온다는 평가가 많았기 때문이다.

케이프투자증권은 법인영업과 리서치본부 각 본부장에게 조직 폐쇄 결정을 알렸다. 다만, 부서원 전원에게 재계약 불가 통보를 한 것은 아니라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수십 명의 인력을 대상으로 부서 재배치와 향후 처우 문제 등을 협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케이프투자증권 관계자는 “전원 재계약 불가 통보를 한 것은 아니지만 자의 반 타의 반 상당수 인력은 이직할 증권사를 찾는 중인 상황”이라며 “일선 영업, 투자 관련 부서에서도 성과급을 대폭 삭감할 경우 추가적인 인력 구조조정 효과가 있을 것”이라 말했다.

이외에도 이미 계약 갱신 거절을 통보받은 사례가 속속 나오는 분위기다. 대부분 증권사 계약직은 12월 중순을 즈음해 계약 갱신이 이뤄진다. 11월인 현재는 계약 갱신까지 한 달가량 남은 시점이므로 재계약 여부를 곧 결정해야 한다. 최근 다올투자증권은 채권구조화팀 6명에 대해 계약 만료 후 재계약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베스트투자증권은 IB 사업부 인력 감축을 검토 중이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운용 실적이 안 좋았던 자기자본 운영부서나 IB부서의 고참 직원들을 대상으로 부서 자체를 없앨 것이라는 식의 대규모 해고설이 심심찮게 들려온다”고 귀띔했다.

본부를 부서 단위로 축소하거나 공백이 있는 직무를 충원하지 않는 식의 움직임도 목격된다. 앞서 하나증권은 부동산 PF 관련 사업을 담당했던 구조화금융본부 직원들을 IB부서 내 다른 본부로 배치하며 해당 본부를 아예 없앴다. 내부 감사에서 본부장 배임 혐의가 드러났기 때문이지만, 본부장을 교체하지 않고 본부 자체를 없앤 것은 이례적이라는 게 대체적인 시선이다. 대형 증권사 리서치센터에서는 공석으로 있는 일부 섹터를 경력 애널리스트로 충원하지 않고 RA를 재배치하는 식으로 비용 감축에 나선 상황이다. 국내 대형사 애널리스트는 “경제, 채권, 크레디트 등의 매크로 섹터는 불황기에 꼭 필요하지만, 이를 제외한 나머지 섹터에서는 후배 RA를 키워준다는 명분 아래 연봉이 높은 고참 애널리스트의 재계약을 하지 않는 식으로, 비용 감축에 나서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불황이 장기화할 경우, IB 출신 CEO 입지에도 악영향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최근 수년간 시장에 풀린 막대한 유동성을 타고 IB 출신 CEO 전성시대가 열렸던 것이 사실이다. 초대형 IB를 중심으로 이들 CEO는 레버리지를 적극 활용하며 공격적으로 자기자본 운용에 나섰다. 다만, IB 출신 CEO들이 조직을 장악하면서 이익변동성이 확대되는 부작용에 노출됐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대형증권사 관계자는 “모 초대형 IB의 경우 멀쩡하던 ELS사업부 담당 임원이 돌연 잘려 뒷말이 돌았는데, 알고 봤더니 사장은 PF를 더 늘리려고 ELS 북(운용 규모)을 줄이고 싶어 했는데 담당 임원이 뻣뻣하게 굴었나 보더라”라며 “결국 그 임원은 옷을 벗고 회사를 떠났고 해당 증권사는 PF 대출을 더욱 늘렸는데, 최근 이 증권사가 어닝 쇼크를 기록했다”고 돌아봤다.

[배준희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84호 (2022.11.16~2022.11.22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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