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산층도 ‘상·하’ 양극화… 문제는 불평등!

김남중 2022. 11. 17. 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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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길] 특권 중산층
구해근 지음
창비, 276쪽, 2만원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 이후 가속화된 양극화는 대다수 중·하위 중산층을 패자로 몰고 갔지만 소수의 상위 중산층에게는 괄목할 만한 소득 증가를 안겨주었다. 상류 중산층의 형성은 강남의 등장으로 나타났고, 상류 중산층과 강남은 한국 중산층의 새로운 준거집단이 된다. 사진은 서울 강남의 모습. 게티이미지 제공


중산층 담론은 주로 중산층의 축소나 몰락이라는 차원에서 전개됐다. 구해근 미국 하와이대 사회학과 명예교수의 책 ‘특권 중산층’은 중산층의 분열에 주목한다. 구해근은 “경제적 양극화가 중산층 내에서 발생했다”면서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 이후 가속화된 임금·자산 양극화의 수혜를 입은 ‘신 상류 중산층’을 탐구한다.

상류 중산층의 형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지난 20여년의 경제 변화가 중간계층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확인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중간계층은 흔히 중위소득의 50∼150%를 버는 소득집단으로 정의하는데, 국가 전체 소득에서 이들 중간집단의 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은 1996년 43.9%에서 2010년 30.2%로 줄었다. “신자유주의 시대 경제 변화 속에서 가장 손해를 본 집단이 (저소득 집단이 아니라) 바로 중간소득 집단이었다.”

하지만 모든 중산층의 수입이 감소한 건 아니었다. 상위 중산층의 자산은 늘었다. 양극화는 1%의 부자들만이 아니라 상위 10% 정도의 인구에게도 괄목할 만한 소득의 증가를 안겨주었다. 예컨대, 상위 10%의 소득 비중은 1995년 29.2%에서 2012년 44.9%로 급증했다. 상위 10%는 서울지역 부동산 가격 상승의 혜택을 가장 많이 받은 층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경제 양극화는 최상위 1%와 하위 99%의 격차만 키운 게 아니라 상위 10%와 하위 90%의 차이도 벌렸다. 그동안의 불평등 논의는 주로 전자에 집중돼 있었다. 구해근은 후자에 주목한다. 그는 중산층 내에서 분화해 2000년대 이후 새롭게 형성된 ‘상위 10%’를 ‘상류 중산층’ 또는 ‘특권 중산층’이라고 명명하고, 이들의 등장이 한국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분석한다.

이 계층은 직업적으로는 대기업 사원, 전문직 종사자, 고위 공무원 등이다. 지역적으로 이들을 대표하는 곳은 서울 강남이다. 저자는 “한국에서 부유 중산층의 등장과 병행하여 나타난 가장 중요한 현상은 아마도 강남의 등장일 것”이라며 상류 중산층을 ‘강남 스타일 계급’으로 규정하기도 한다.

강남에 모여 사는 상류 중산층의 등장은 한국 중간계층의 성격을 질적으로 변화시켰다. 소비와 교육을 통한 지위경쟁을 강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한국의 도시 중산층을 부동산 가치 상승에 의존하는 투기적 주체로 구성했다. 또 한국의 중산층 계층문화를 극히 물질주의적이고 가족이기주의적이며 경쟁적인 것으로 만드는 요인이 되었다.


강남이 한국 중산층의 준거집단으로 변하면서 중간소득 수준에 있는 많은 사람이 자신은 더이상 중산층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됐다. 2000년대 들어와 한국 국민의 체감 중산층 비율이 20∼40%까지 떨어진 이유는 바로 이와 관련된 것일 수 있다.

상류 중산층은 지난 20여년 사이에 일반 중산층과의 차이를 크게 벌렸고 일반 중산층은 이제 그 격차를 따라잡을 수 없다고 느낀다. 저자는 상류 중산층이 자기 지위를 일반 중산층과 구별하거나 계급적 이익을 지키기 위해 어떻게 행동해왔는지 상세하게 들여다본다. 소비를 통한 신분 경쟁, 주거지의 계층적 분리, 격심한 교육 경쟁이 대표적이다.

특히 교육은 상류 중산층의 계급 투쟁이 가장 치열하게 전개되는 영역이다. 전문직·관리직 중상층 가정에서는 교육이 거의 유일한 계급세습 방법이기 때문이다. “사교육시장 발달의 근본적인 요인은 한국의 학벌 구조이고, 이것을 쟁취하기 위한 경쟁에서 남보다 더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고자 노력하는 부유층의 욕구, 그리고 계급적 전략이라고 하겠다.”

저자는 중산층이 다수의 중·하위 중산층과 소수의 상위 중산층으로 분열되면서 이 둘 사이의 경쟁과 갈등, 투쟁이 한국 사회의 계급동학을 주도하고 있다고 본다. 공정 담론, 조국 사태, 학종·수능 논란 등 근래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군 갈등들은 모두 중산층 이슈라고 볼 수도 있다. 상류 중산층은 더 많은 특권적 기회를 확보해서 자식들에게까지 물려주려고 노력하는 반면 일반 중산층은 그런 기회에서 배제되어 불리하고 불공정한 상황에 놓이지 않으려고 애쓰며 충돌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래서 “현대사회의 중요한 계급·계층 분계선은 더이상 중간계층과 노동자 계층 사이가 아닌 신 상류 중산층과 일반 중산층 사이에 놓이게 되었다.”

저자는 안정과 통합을 상징하던 중산층이 사회 갈등의 중심 세력으로 변해갈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한다. “중산층은 예전에 기대된 사회의 안정적 통합적 세력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해가고 있다. 중산층은 경제적 불안과 상대적 박탈감이 팽배한 계층집단의 성격을 띠게 되면서 오히려 정치적 불안정과 가변성을 고조시키는 역할을 하게 될 수도 있다.”

구해근은 2002년 ‘한국 노동계급의 형성’을 출간했다. 동아시아 노동연구의 선구자로 꼽히는 그는 연구 주제를 중산층으로 전환해 새 책을 내놓았다. 책은 오늘날 한국의 불평등 논의가 간과해온 중산층 내에서 벌어지는 불평등과 불안을 보고한다. 저자는 “경제적 불평등이 확대되는 한 중산층의 불안정성은 해소될 수 없다”면서 “문제는 불평등”이라고 강조한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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