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한국 민주주의 모르고, 한국은 일본 평화주의 모른다
오구라 기조 지음, 이재우 옮김
마르코폴로, 164쪽, 2만2000원
오구라 기조(63) 일본 교토대 교수는 한국 전문가이다. 서울대에서 동양철학 전공으로 석·박사를 마쳤으며, 한국에서도 큰 주목을 받은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를 비롯해 ‘한국사상사’ 등 여러 저서를 발표했다. 참신한 관점과 눈치 보지 않는 태도로 한·일 양국을 향해 불편한 이야기들을 던져왔다.
오구라의 새 책 ‘한국의 행동원리’에는 “역사문제에 관해서도 일본은 똑같은 식민지 지배 경험을 가진 서구의 어떠한 국가보다도 진지하게 문제를 직시하고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는 주장이 나온다. 한국인으로서는 깜짝 놀랄 얘기다. 저자는 “전시 여성 성폭력 문제를 다른 나라보다 먼저 공론화하고 정면에서 상대한 것은 1990년대 초의 일본 정부였다” “‘식민지 지배는 부조리했다’는 일본의 인식은 한국인이 생각하는 만큼 가볍지 않다” 같은 주장을 이어간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일본이 보여준 반성하는 자세를 ‘전혀 의미가 없다’고 딱 잘라버린다면 미래를 향한 길은 완전히 막히고 만다”고 주장한다. 이 문장들 앞에는 “물론 한국인은 만족할 수 없을 것이고 납득조차 못할지도 모르지만” 같은 전제가 달려 있다.
이것은 일본 극우파의 주장이 아니다. 일본 내 대표적인 지한파로 꼽히는 오구라가 지난 2014년 한국에 와서 연설한 내용이다. 일본의 과거사 인식과 대응을 보는 한·일 간 시각차가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오구라는 책에서 “좋건 싫건 현재 일본이 아시아에서 손을 잡을 수 있는 상대는 한국뿐”이고 “안전보장이나 경제 측면에서 한국과 결렬할 수 없으며” “일본은 21세기에 한국이라는 이해자를 잃고 한반도 전체를 적으로 만들면 철저하게 몰락하리라 예측된다”고 강조한다. 그는 한국의 획일적 반일의식과 일본의 점증하는 혐한의식을 동시에 겨누면서 “자기 진영을 존속시키기 위해 ‘사악한 타자’가 반드시 필요한 세력이 한국과 일본에서 상호의존하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일본인 독자를 향해 쓰여진 이 책은 한국과 한국인을 사상적으로 설명하는데 초점을 맞추면서 한국 인식의 오류를 바로잡고자 한다. 또 서양의 눈으로 자국을 보는데 익숙한 일본인들에게 한국이라는 새로운 렌즈로 자신을 바라보게 하자는 목적도 있다. 한국인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일본의 눈으로, 한일 비교의 방법으로, 한일 동아시아 공동체의 관점으로 조명한 낯선 한국을 만나게 된다.
저자는 “한국은 도덕을 중시하고, 일본은 법을 중시한다”고 분석한다. 또 한국은 너무 움직여서 문제인 나라로, 일본은 너무 움직이지 않아서 문제인 나라로 묘사한다. 한국과 일본을 “국가가 아니라 단체로 보자”는 재미있는 주장도 전개한다. 서로를 정상국가로 보고 비난하기 보다 제대로 된 국가를 만들고 있는 운동단체 정도로 보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이다. 일본인은 한국인이 가장 자랑스럽게 여기는 ‘한국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가 없고, 한국인은 일본인이 가장 자랑스럽게 여기는 ‘일본의 평화주의’에 대한 이해가 없다는 지적도 주목할 만하다.
한·중·일 3국에서 분출되는 청년들의 내셔널리즘을 니힐리즘(허무주의)이라고 분석한 글은 특히 흥미롭다. 확신에 찬 자신감이 아니라 무의미를 알고 의심을 품은 채 시늉하는 자신감이라는 것이다. 중국의 민족주의에 대해서는 “확실히 경제발전을 했으나 인간의 기본인권이나 존엄을 무시함으로써 이룩한 발전이 아니냐는 근본 의문”에서 비롯되는 니힐리즘이 배어있다고 본다.
한국의 민족주의도 그리 건강한 게 못 된다. 그가 관찰하기에 한국의 청년들은 동아시아 안에서 가장 강한 ‘국가와의 어긋남’의 감각을 갖고 있다. ‘헬조선’이라는 유행어가 이런 감각을 대표하고, 저출산이 ‘어긋남’의 부인할 수 없는 증거이다. 이유는 삶의 소외 때문이다.
“한국 국민은 삶 자체를 살기보다 반대로 정의니 경제니 하는 개념이나 이념에 따라 사는 역전현상이 일상화되고 있다. 이 나라의 생명은 정의와 경제이며 국민은 그 생명을 위한 수단이라는 역전현상이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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