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 슬퍼할 시간 끝나…이젠 분노할 때” BBC 유족인터뷰
“준비했다면 참사 막을 수 있었음 분명해져”
“지금까지 아무도 의미있는 사의표명 안 해”
이태원 참사를 수사 중인 경찰이 윗선을 향한 수사를 본격화한 가운데 영국 공영방송 BBC가 유족 인터뷰 등을 통해 참사 이후 우리 사회에 남겨진 과제를 조명했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BBC는 17일 ‘슬퍼할 시간은 끝났다. 이제는 분노할 때다’라는 제목으로 이태원 참사 피해 유족의 인터뷰, 정부에 비판적인 20대 청년들의 목소리를 보도했다. 해당 보도는 BBC 서울 특파원 진 매켄지 기자가 전했다.
이태원 참사로 딸 은지(24)씨를 잃은 송후봉씨는 BBC에 “슬퍼할 시간은 끝났고 이제는 분노할 때”라고 말했다. 서울의 부촌에 위치한 여행사에서 일했던 은지씨가 세계여행의 꿈을 꾸며 어떻게 일했었는지를 말하던 송씨는 고통스러운 듯 울부짖었다. 은지씨는 아버지 송씨를 닮아 장난기가 많았고, 둘은 아주 사이가 좋은 부녀였다고 BBC는 전했다.
송씨는 “가장 가슴이 아픈 것은 많은 사람들이 이태원에 몰릴 것을 예상하고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것”이라며 “경찰 12명만 배치가 됐었어도 참사를 피할 수 있었을 것이고 내 딸은 죽지 않을 수 있었다”고 애통해했다.
BBC는 “거의 3주가 지난 지금 당국이 더 잘 준비하고 더 빨리 대응했더라면 참사를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게 점점 더 분명해지고 있다”며 “13만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핼러윈을 축하하기 위해 이태원에 모였지만 군중을 관리하기 위해 특별히 파견된 경찰은 없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수사기관은 핼러윈 이태원 인파의 위험성을 보고한 보고서 삭제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며 “그리고 한국 사람들은 억울한 사람들까지 표적이 돼선 안 된다는 두려움 속에서 어디까지 비판을 확대할 수 있는지에 대해 논쟁하고 있다”고 전했다.
BBC는 “지금까지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았다. 또 이목을 끌만한 책임자들의 사의 표명도 없었다”며 “이것은 사람들을 더욱 화나게 만들었다”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이 모든 책임자에게 책임을 묻겠다고 약속했음에도 불구하고, 윤 대통령 퇴진 시위가 일어나고 있는 현상에 대해서도 전했다.
BBC는 “이것(퇴진 시위)은 250명의 학생이 숨진 2014년 세월호 침몰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며 “당시 세월호 참사에 대한 잘못된 대처는 박근혜 당시 대통령을 끌어내린 주요 요인이었다”고 했다.
이어 “윤 대통령의 실수는 더 이상 용납되지 않을 것”이라며 “그는 6개월 전 아주 근소한 차이로 승리해 취임했고, 국내외에서 연이은 실책으로 지지율이 곤두박질 쳐 한때는 25% 아래로 떨어지기도 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윤 대통령은 이태원에서 친구를 잃은 세대인 젊은이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가 없다”고 덧붙였다.
퇴진 시위에 참여한 이지예(27)씨는 BBC에 “윤 대통령이 책임을 지지 않아서 화가 난다”며 “그가 사과를 해야 했었는데 대신에 하급자들에게만 책임을 돌리고 있다”고 윤 대통령을 비판했다.
BBC는 “지금까지 수사는 경찰과 소방서의 대응에 집중됐다”며 “경찰이 참사 몇 시간 전에 걸려온 긴급신고에 대응하지 않았다는 폭로는 사람들을 충격에 빠뜨렸지만, 준비가 현저히 부족한 상황에서 긴급구조대만을 탓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전했다.
또 소방공무원 노조가 이상민 행전안전부 장관을 고소한 사실도 언급했다. BBC는 “경찰과 소방당국은 정치인들을 구하기 위해 희생양이 되고 있다고 말하며 이를 ‘꼬리 자르기’라고 명명했다”고 설명했다.
고진영 소방공무원노조위원장은 “대한민국에서 전체 권력자들에게 책임을 묻는 경우가 드물지만, 이는 다음 재난을 예방하는 중요한 단계”라며 “목숨을 걸고 생명을 구하는 소방관들이 비난받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매우 가슴 아픈 일”이라고 BBC에 밝혔다.
BBC는 “참사로 가족을 잃은 유족들은 애초에 이태원에 간 것에 대해 비난을 받고 있다고 느끼고 있다. 이로 인해 사람들은 공개적으로 말하기를 두려워하고 있다”며 “한 생존자는 ‘술 마시다 다친 사람들인데 왜 세금을 쓰느냐’는 인터넷 댓글이 너무 괴로웠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BBC는 또 이번 참사로 인해 이태원이라는 커뮤니티가 사라질까 우려하는 상인들의 목소리도 전했다. 하지만 “여전히 흉터는 생생하다”며 “이태원 골목에서 한 젊은 여성은 몸을 웅크리고 흐느끼고 있었다”며 아직도 추모가 이어지고 있는 이태원의 풍경을 묘사했다.
마지막으로 송후봉씨는 BBC에 “다른 유족들을 만나 서로 위로를 받고 싶지만, 당국은 우리끼리 연락을 닿게 해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BBC는 “송씨는 유족들이 왜 분리돼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아마도 그들이 행동을 취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일지도 모른다고 송씨는 생각한다”고 전했다.
이가현 기자 hyu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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