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의학 생활]어느 고등학생의 어이없는 죽음

2022. 11. 17.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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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고등학교 운동장은 수업이 끝난 후 늘 학생으로 꽉 찬다.

그날도 오후 3시 수업이 끝난 후 운동장 구석의 농구 코트 하나에 30여명이 넘는 남자 학생들이 몰려들었다.

싸움을 잘하기로 소문난 학생이었다.

그는 자기 발을 밟고 미안한 표정을 짓는 학생에게 다가가 다짜고짜 얼굴을 주먹으로 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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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 A 고등학교 운동장은 수업이 끝난 후 늘 학생으로 꽉 찬다. 그날도 오후 3시 수업이 끝난 후 운동장 구석의 농구 코트 하나에 30여명이 넘는 남자 학생들이 몰려들었다. 누군가가 ‘악’하며 소리를 질렀다. 싸움을 잘하기로 소문난 학생이었다. 그는 자기 발을 밟고 미안한 표정을 짓는 학생에게 다가가 다짜고짜 얼굴을 주먹으로 때렸다. 얼굴을 맞은 학생 옆에 있던 통통하게 생긴 친구가 갑자기 끼어들었다. ‘야. 그래도 왜 때리니. 농구 하다 보면 부딪칠 수도 있지.’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발길질이 날아왔다. 발에 배를 맞고 쓰러진 통통한 학생은 갑자기 벌떡 일어서더니 사나운 학생에게 돌진하여 넘어뜨렸다. 전혀 예상치 못한 반격에 뒤로 벌러덩 넘어지며 머리를 바닥에 부딪친 학생은 곧바로 머리를 감싸 안고 일어났다. 그다음부터 일방적인 폭행이 시작되었다. 주변 아이들이 간신히 말릴 때는 이미 통통한 아이의 얼굴은 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다음날 때린 학생은 등교하지 않았다. 학생은 의식이 없는 상태로 일어나지 못하였다. 부모에 의해 응급실에 이송되었고 영상 검사를 통해 외상성 뇌출혈인 양쪽 뇌 이마엽과 관자엽 부위의 경막하출혈이 확인되었다. 긴급히 머릿속 혈종제거술을 시행하여 치료하였으나 며칠 후 사망하였다. 부검 결과 외상성 경막하출혈이었다. 형사들은 외상의 원인으로 사망 전날 친구들과의 다툼(사실은 일방적인 폭행이었으나)에서 넘어진 사실을 조사하고 통통한 아이를 상해치사 혐의로 입건하였다.

이 사건은 어찌 보면 가해자 입장에서 억울하고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일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머리의 뇌를 싸고 있는 막은 바깥쪽 머리카락의 근원지인 두피(피부로서 마치 페이스트리 빵과 같이 5겹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아래 뼈의 막(骨膜), 머리뼈, 머리뼈 아래에는 경막(硬膜, dura mater), 거미막(蜘蛛膜, arachnoid membrane), 연막(軟膜, pia mater)으로 뇌를 보호하기 위해 복잡하게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이중 경막과 거미막 사이에는 연결정맥(bridging vein)이 존재하는데 이런 연결정맥에 갑자기 잡아당김 또는 째짐의 힘이 작용하면 찢어지는 손상을 입게 된다. 주로 가속-감속의 기전에 의해 발생하고, 대부분 넘어지는 상황에서 관찰된다. 사망한 아이도 갑자기 뒤로 넘어지며 연결 정맥이 찢어졌으며 정맥은 동맥보다 압력이 낮아 얇게 퍼지면서 서서히 뇌를 압박한 것으로 보인다. 경막하출혈은 다친 후에 의식 명료 기간(lucid interval)이 보이며 크게 다친 줄 모를 수 있다. 경막하출혈의 진단은 늦는 것이 보통이어서 50%는 24시간 이내에 진단되지만 20%는 다음 48시간에 발견된다. 결국 최초 머리를 부딪치면서 연결 정맥이 찢어졌을 순간 병원에 갔다면 사망에 이르지는 않았을 안타까운 경우였다.

빙판에서 넘어진다거나, 술에 취해 넘어진다거나, 타인에 의해 넘어질 때 연결정맥이 찢어질 수도 있다. 만약 머리를 부딪쳤다면 바로 병원 응급실로 가서 의사의 진단을 받아야 한다. 사람은 뇌를 보호하기 위해 몇 겹의 보호장치가 있지만 의외로 가속-감속이 되면서 머리뼈 골절이 없이도 머릿속 출혈이 발생할 수 있고 사망할 수도 있다. 어떤 사람은 총을 맞고도 살아나지만 어떤 사람은 돌부리에 넘어져서도 사망할 수 있다.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가 죽는다는 말은 비단 사람 사이의 감정적 문제뿐만 아니라 신체에도 해당할 수 있다는 말을 반드시 하고 싶다.

유성호 법의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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