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명단’ 무단 공개해놓고 삭제는 ‘회원가입하라’

구자창 2022. 11. 17.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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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 “‘유족 사칭’ 잇따라… 실명 확인 방침”
이태원 참사 희생자 명단을 공개한 온라인 매체 '민들레' 홈페이지 캡처


‘악의적인 메일발송을 방지하기 위해 회원제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의 명단을 공개한 인터넷 매체 ‘시민언론 민들레’ 홈페이지에서 이메일을 보내려고 시도하면 뜨는 문구다. 앞서 민들레 측은 “이름 공개를 원치 않는 유족은 이메일로 연락하면 반영하겠다”고 했는데, 회원가입을 하지 않으면 이메일 발송이 어렵도록 만들어져 있는 셈이다. 실제로 일부 유가족은 홈페이지에 삭제 요청에 대한 별도 안내가 없어 불편을 겪었다고 언론 인터뷰에서 밝혔다.

민들레 측은 유족을 사칭해 ‘명단을 내려 달라’는 요구가 잇따르고 있다며 “명단 공개의 취지를 훼손하고 정당성에 흠집을 내려는 의도적이고 조직적인 행위로 보인다”고 했다. 이 매체는 ‘유족 사칭 발생에 따른 처리 기준’을 올리고 “희생자 이름 삭제 때 신청자 실명을 확인하겠다”고 밝혔다.

유가족 “철저히 짓이겨지고 있다” 분통
민들레 홈페이지 캡처

이태원 참사로 친척을 잃은 A씨는 공개된 이름을 지우려고 해당 매체 홈페이지에 접속했지만 구체적인 삭제 방법에 대한 안내가 없어 불편을 겪었다고 16일 TV조선 인터뷰에서 말했다.

A씨는 “홈페이지에 (삭제 요청) 안내나 이런 게 전혀 안돼 있었기 때문에 이메일(버튼)을 열었는데, 회원가입해서 로그인해서 이용을 해 달라(는 안내가 떴다)”고 말했다.

A씨 말대로 실제로 삭제 요청을 위해 메일 버튼을 누르면 ‘악의적 메일발송을 방지하기 위해 회원제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로그인 후 이용해주세요’라는 문구가 뜬다. 이어 회원 로그인 창으로 넘어간다.

이 매체 홈페이지 첫 화면에는 대표전화와 팩스 번호는 있지만 이메일 주소는 나와 있지 않다. 명단을 공개한 기사에도 “희생자들의 영정과 사연, 기타 심경을 전하고 싶거나, 이름도 공개를 원치 않는 유족께서는 이메일로 연락을 주시면 반영토록 하겠다”는 문구가 있지만, 이메일 주소는 따로 안내돼 있지 않다.

A씨는 대표전화로도 전화했지만 불통이었다고 했다. 그가 전화하자 “가입자의 전화가 꺼져있거나 네트워크 접속이 끊어져 연결할 수 없습니다”라는 음성이 돌아왔다.

민들레 홈페이지 캡처


A씨는 동의를 얻지 않은 명단 공개부터 시작해 삭제 요청 과정에 이르기까지 유가족은 전혀 배려받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인터넷에 (조카의) 이름이 떠도는 거 자체를 엄마, 아빠가 전혀 원하지 않고 있다”며 “조용히 마무리 짓고 싶고 (그런 것이) 철저하게 짓이겨지니까”라고 토로했다.

‘사칭해도 지워주네’ 조롱… “실명 확인하겠다”
민들레 홈페이지 캡처

민들레는 “어느 시점부터 유족을 사칭해 명단을 내려줄 것을 요구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며 홈페이지 불편신고 코너에 조롱하는 내용의 글이 올라왔다고 밝혔다.

이 매체의 보도에 따르면, 유가족을 사칭했다는 한 누리꾼은 지난 15일 해당 코너에 ‘유가족이라고 사칭해도 다 지워주네?’라는 제목의 글을 올리고 “얼마나 체계적으로 관리하는지 시험해보려고 아까 유가족 지인이라고 사칭해서 이름 지워 달라고 했는데 진짜 지웠네?”라고 적었다.

민들레 홈페이지 캡처


민들레는 이날 ‘유족 사칭 발생에 따른 처리 기준’을 올려 “신청자 실명을 확인하겠다”고 했다. 이 매체는 “민간 언론사인 민들레로서는 희생자 정보를 독점하고 있는 정부 당국의 협조가 없는 한 유족 사칭여부를 판단할 권한과 방법이 없다”며 “이름 삭제를 요청하는 분의 실명 확인이 되는 경우 이를 수용할 수밖에 없다. 양해해 달라”고 했다.

아울러 “유가족을 사칭해 희생자의 이름이 삭제된 사실을 발견하신 경우 바로 시민언론 민들레로 알려주시기 바란다”며 “(이 경우) 명단에 다시 게재하고, 사칭범에 대해서는 법적 조치를 하겠다”고 밝혔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유가족에게 삭제를 요청하는 일 자체가 2차 가해라는 지적이 나왔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16일 KBS 라디오 인터뷰에서 “자식 잃고 지금 슬픔에 빠져 있는 유족들이 내 자식 이름 있는지 확인하고 그다음에 그 유족 중의 한 명이라는 것을 증빙하고 그렇게 하라는 소리냐”라며 “2차 가해, 3차 가해”라고 비판했다.

민들레가 공개한 155명의 희생자 명단 가운데 유족 요청으로 익명 처리된 숫자는 17일 오전 7시 기준 29명으로 늘었다. 민들레는 당초 성은 남기고 이름만 익명 처리했으나, 현재는 성을 포함한 이름 전체를 ‘OOO’로 표기하는 방식으로 바꿨다.

구자창 기자 critic@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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