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들 미쳤어요"…요즘 교실 퍼지는 충격의 '이태원 압사 놀이'

채혜선 2022. 11. 16.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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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오전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한 초등학교에서 학생들이 가슴에 검은색 리본을 달고 압사사고 관련 안전교육을 받고 있다. 위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 뉴시스

“반 애들이 미친 것 같아요. 쉬는 시간에 ‘살려달라’며 이태원 놀이 했음요.” “우리 학교에서만 이태원 압사 놀이 하나요?”

10대가 선호한다고 알려진 SNS인 틱톡에는 최근 ‘이태원 놀이’ ‘이태원 참사 놀이’ 등과 같은 해시태그(#)를 달고 이 같은 글이 줄 잇고 있다. 이태원 놀이란 과거 ‘햄버거 게임(놀이)’으로 불리던 것으로, 적게는 수명에서 많게는 수십명이 층층이 몸을 쌓아 밑에 있는 이들을 몸무게로 압박하는 행동을 뜻한다. 158명이 숨진 ‘이태원 참사’ 이후 초·중·고 남학생 사이에서 위험천만한 ‘이태원 놀이’가 확산되고 있다.


참사 뒤…‘이태원 놀이’ 번지는 교실


11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 참사 현장 인근 거리. 뉴스1
서울의 한 중학교 1학년 임모군은 “SNS를 타고 참사 영상이 퍼지면서 이태원 참사를 흉내 내는 듯한 햄버거 놀이가 학년 전체에 퍼진 분위기”라고 전했다. “교실 책상·의자를 치우고 10여 명의 아이가 몸을 포개 누르는 일이 쉬는 시간마다 반복되고 있다”는 게 임군의 설명이다. 서울 A고등학교 2학년 박모(18)양도 “학교에서 아이들이 ‘이태원 압사 놀이’라고 부르며 햄버거 게임을 하는 걸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틱톡 등 SNS에서는 “급식 먹을 때 ‘밀어 밀어’ 하면서 이태원 (참사) 따라 한다” “특정 학생들이 주도해서 친구들을 햄버거 놀이로 괴롭힌다” 등과 같은 목격담도 쏟아지고 있다. 밑으로 갈수록 압박 강도가 큰 햄버거 놀이가 ‘학교 폭력(학폭)’ 수단으로 번질 우려가 있는 셈이다. 실제로 2011년에는 해당 놀이로 학폭을 당해 중학생이 사망했다는 유가족 주장이 나오면서 경찰이 수사한 일도 있었다.

“장난 아니면 죽음”…관련 교육 전무?


10일 서울 마포구 홍익대 정문 인근 골목에서 시민활동가들이 이제석 광고연구소가 제작한 압사 사고 위험구간 표지판을 시범 부착하고 있다. 뉴스1
학부모들의 걱정도 커지고 있다. 초등학교 5학년 아들을 키우는 40대 이모씨는 “아들이 핼러윈 때 외치는 ‘트릭 오어 트릿(trick or treat, 사탕 아니면 골탕)’을 ‘트릭 오어 다이(trick or die, 장난 아니면 죽음)’로 바꿔 말하길래 참사가 희화화된 듯한 느낌을 받아 염려됐다”고 말했다. 고등학교 2학년 아들을 둔 주부 이모(44·여)씨도 “햄버거 놀이를 하지 말라는 담임선생님 주의가 있었지만, 부상자가 없다 보니 학교 차원의 대책은 없는 것 같다”며 근심했다. 지역 맘 카페에서는 “아이들에게 햄버거 놀이가 절대 안 된다는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는 반응도 나오고 있다.

사회적 트라우마에 대한 우려가 쏟아지고 있지만, 학교에선 사회적 참사를 받아들이는 자세와 감수성을 기르는 교육이나 지도가 사실상 전무한 게 현실이다. 서울시교육청은 최근 서울 내 초·중·고에 ‘압사 사고 예방·대처를 위한 행동요령’을 공문처럼 전달했으나 말 그대로 유사 사고 발생 시 행동 요령일 뿐이다. 경기도교육청 관계자는 “교육부에서 따로 내려온 지침이 없어 (햄버거 놀이 등) 학교생활 관련 주의 사항은 배포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교육부 관계자도 “‘학교 안전교육 7대 표준안’(표준안)에 안전 수칙 외에도 SNS·언어 사용 등 학생들이 주의해야 할 여러 내용을 포함할 방침”이라는 정도의 반응이다. 그나마도 교육부가 개정 중인 ‘표준안’은 내년 3월 신학기부터 현장에 적용될 예정이다.

전문가들은 학생들이 참사를 희화화해 소비하지 않도록 견인하는 교육이 시급하다고 설명한다. 유현재 서강대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앞뒤 맥락 없이 편집된 참사 영상 등이 SNS를 타고 퍼지고 있는 만큼 학생들이 왜곡된 인식을 갖게 될 우려가 크다”며 “집단적 트라우마가 이미 확인되고 있는데도 학생들이 참사를 어떻게 수용하고 인식해야 하는지에 대한 교육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건 큰 문제”라고 말했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치료학과 교수는 “한때 유행했던 ‘자살 놀이’처럼 10대들은 모방 심리가 크기 때문에 일단 유행이라고 하면 부작용에 대한 생각 없이 따라 하곤 한다”며 “‘나는 저들과 달리 이런 걸 해도 괜찮다’는 식의 우월 심리까지 겹쳐 놀이가 더욱 확산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이창호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햄버거 놀이와 같은 그릇된 행동은 SNS나 미디어를 통로로 10대 사이에서 퍼져나간다”라며 “학생들이 이 같은 분위기에 비판적인 시각을 가질 수 있도록 책임감을 가지고 지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채혜선 기자 chae.hyes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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