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표 교수의 연극이야기]황태선 연출 연극 ‘내 집 마련의 애환’, <두껍아 두껍아>
‘헌집 줄게, 새집 다오’ 두껍이가 집 장만에 마술을 부려 줬으면 좋겠다. 고금리 시대에 헌집주고 새집으로 갈아탈 수 있을까. 문재인 정부 시절 주택 시장 안정화를 위한 6·19 부동산 대책을 출발로 다섯 차례에 부동산 대책을 내놓았지만, 전국 집값 상승은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고 하락세는 둔감하다. 노른자 아파트 한 채는 부(富)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졌다. 안정적인 재테크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20∼30세대 ‘영끌족’들은 대출 한도를 영혼까지 긁어모아 분양시장과 내 집 장만으로 시선을 돌렸고 ‘비트코인’ 현상은 투기판으로 변질되었다. 종합대책의 규제와 투기 과열 지역 대출 억제 효과도 인생에 남는 장사는 아파트, 땅, 꼬마빌딩과 코인을 사서 부의 신분을 풍선의 마법처럼 커지는 부동산 시장에서 갈아타는 것뿐이었다.
자본 비율 80% 이상을 대출로 집, 장만한 ‘영끌족’들과 서민들은 천정부지로 오르고 있는 고금리는 삶에 폭탄이 되어 돌아오면서 벅찬 한숨으로 견디고 있다. 연극 <두껍아 두껍아>(연출, 황태선, 작 정민찬, 창작집단 지오)는 지방대 출신으로 첫 직장 생활을 인턴으로 버티며 살아가는 20대 후반의 청년 동진(엄선일 분)의 이야기다. 서울에서 월세 삼백에 30만원 월세방도 구할 수 없는 현상을 극 중 인물 동진을 통해 대한민국 사회의 일그러진 내 집 마련의 애환과 비좁은 고시텔을 전전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풍자하고 있는 연극이다. 이야기는 이렇다. 동진이는 30만원짜리 월세방 한 칸을 구하기 위해 ‘청년 부동산’을 찾아간다. 월세 30만 원짜리 방을 찾기 위해 중개사와 비좁은 서울 변두리를 다녀도 동진이의 살림살이로는 구할 수 있는 방이 없다. 얻게 된 언덕 비탈의 반지하 방 한 칸도 겨우 몸으로 잠만 잘 수 있는 곳이다. 청년 세대들의 내 집 마련의 정책을 작가는 ‘청년 부동산’을 통해 현실을 에둘러 풍자하고 있다.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동준이의 월세방 탈환기는 중개사도, 집주인한테도 청년의 삶은 용해되지 못하고 개미들이 들끓는 방 한 칸도 10만원을 더 올려 받으려는 냉혹한 자본만이 비추어지는 세상 풍경으로 돌아오고 삶의 조언은 구호로만 들리는 현실을 체감하게 된다.
동진이가 방으로 넘쳐나는 개미들을 연기로 점화된 연막(煙幕) 살충제로 제거해 살아보려고 하는 장면에서는 애잔함이 흐르고 들 끊는 개미들의 생존력은 박멸(撲滅)할 수 없는 사회구조를 은유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비좁고 차디찬 동준이의 방은 보름 전 한 할아버지가 고독사한 비극의 공간이 된다. 작가는 한 노인의 고독사와 동진의 애환, 개미의 상징을 통해 사회적인 시선과 슬픔보다는 죽음과 고단한 삶들에 도배하고 월세만 부추기는 자본의 주인과 중개사만이 개미처럼 넘쳐나는 세상을 그린다. 백수와 노숙자들이 넘쳐나는 놀이터의 한 아이는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집 다오’를 동심으로 부르고 현실 세대의 아픔은 마치 아이의 미래까지 이어지는 우울한 세상 풍경이다. 헌 집을 새집으로 바꿔 줄 수 없는 동진이 살아가는 시대는 절망의 노래로 다가온다. 놀이터에서 살기로 결심한 동진은 벤치에 누워 이불 하나를 덥고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집 다오’를 ‘희망가’처럼 슬픈 멜로디로 부르며 한국 사회에 ‘내 집 마련’의 슬픈 꿈을 노래하며 끝난다. 동진의 우울한 멜로디가 두꺼비의 집으로 완성될 수 있는 희망의 사회는 차디찬 방에서 고독사와 죽음으로 파고드는 개미들이 들끓는 사회로부터 시스템을 정비하고 인턴과 비정규직으로 살아가는 청년의 애환을 국가정책으로 녹여내는 일일 것이다.
이 작품은 한국 사회의 부동산 광풍으로 집값 상승과 고단한 청년들의 애환을 현실풍경으로 그려내면서 2021 ‘밀양공연예술축제’ 윤대성 희곡상에 당선작으로 선정된 작품이다. 낭독공연을 거쳐 올해 제7회 ‘도담도담 페스티벌’과 제5회 ‘종로문화다양성’ 연극제 출품작품으로 황태선 연출의 텍스트 변주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연출은 재현적인 무대구조를 걷어내고 청년들의 삶과 애환을 풀어내기 위해 동준이가 살아가는 무대 전경을 한국적인 연희와 놀이로 풀어내고 그 틈으로 삶과 애환의 시간을 한국사회의 구조화된 문제로 풍자시켰다. 이런 식이다. 연극이 시작되기 전부터 배우들은 개량 한복을 착용하고 객석에서 관객과 농담을 주고 주고받는다. 극이 시작되면 빈 공간의 연희악사(홍예림 분)는 장고, 북, 꽹과리로 리듬을 만들고 리듬은 배우들의 상황으로 인물들의 극 중 극으로 연결되고 장면 분위기를 연결하는 식이다.
큐빅 나무 박스를 연결하면 서울 변두리 골목길이 되고 중개인과 동준이가 동행하며 비좁은 산비탈을 올라가는 장면에서는 객석의 웃음이 터지고 소품과 오브제를 활용해 장면으로 연결하는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놀이터에서 울리는 아이들의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집 다오’ 놀이 장면은 한국 사회의 내 집 마련의 애환을 절망의 은유로 전경화하고 있을 정도로 정적인 이면서도 연극적인 메시지는 투명하다. 텍스트를 이탈하지 않고 작품을 한국적인 리듬으로 경쾌하게 풀어가는 연출의 방식이 희곡 ‘두껍아 두껍아’의 의미를 체감할 수 있도록 한국적인 배경을 살려내는 오브제와 소품들이 장면에서 풍자의 날카로움으로 살아있다.
이 시대 극 중 인물들이 살아가는 풍경을 한국적인 족자(簇子) 그림(불, 태양, 파도, 눈, 개미, 두껍이, 밤하늘 별)을 무대 배경으로 표현하고 민준이의 한 달 지출내용을 한자화 된 글씨체 배경으로 만들어 내는 기발함을 보인다. 의미를 덧붙이자면, 청년들의 취업과 애환은 마치 시간이 흘러도 제 자리이다. 공인중개인(오일룡 분)은 마치 현대판 만담가처럼 극을 이끌고 배우들은 신체로 리듬을 만들고 무대를 형상화하면서 헌 집을 버리고 새집을 갈망하는 희망의 풍경들을 담아내고 있다. 극 중 인물 민준이의 새집 희망을 만들어 줄 ‘두껍이’가 필요한 시대이다. 연극 <두껍아 두껍아>는 연출의 기발함으로 배우들의 한국적인 리듬 무대를 놀이 정신으로 달리며 20∼30세대들의 현실사회를 웃음으로 날카롭게 풍자하고 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놀이는 규칙을 이탈하면 질서가 깨진다. 놀이를 극의 선명함으로 배치하고 한국적인 리듬의 사이로 정적인 장면들을 배치해 보면 어떨까. 풍자의 웃음과 놀이의 서사 사이로 극의 전경들이 아쉬우면서도 우리의 리듬으로 현실을 베어내는 유쾌함이 살아나는 연극이다.■
|창작집단 지오는
황태선 연출을 중심으로 창작자들(연출, 작가, 작곡, 안무, 디자인등)의 창작환경 발전을 위해 ‘창작집단 지오’를 출범해 지속적으로 작품활동을 해오고 있다. <노부인의 방문>(2013)으로 창단공연을 한 뒤 아시아 연출가전 참가작 <마지막 유태인의 아들>(2021), 서울연극제 단막스테이지 출품작 <악셀>(2021), <양팔저울>(2019), <정의하오다>(2017), <불행한 물리학자들>(2017), 신춘문예단막극전 <달팽이의 더듬이>(2017) 등 다양한 작품을 무대화 하고 발표해 오고 있다. 2인극 페스티벌 출품작 <양팔저울>로 희곡상, 작품상을 수상하였으며 <-36.5도>로 연출상을 받았다. 포항바다국제 연극제에서는 <정의하오다>로 은상을 수상했다. 황태선 연출은 대한민국연극제 서울대회(2018·명품인생 백만근), (2020·롤로코스터)으로 은상을 받았다.
대경대학교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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