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신 부러질 만큼 애용"…막강 자주포의 폴란드, 왜 K9 사나 [Focus 인사이드]
어쩔 수 없는 불만
올해 체결된 우리나라와 폴란드의 방산 계약은 전 세계에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한국산 무기에 대한 동유럽 국가들의 관심이 급격히 고조된 반면 그동안 유럽을 텃밭으로 여겨오던 독일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미국은 M142 하이마스의 생산 확대에 미온적이었으나, K239 천무로 인해 방침을 바꿨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공급하면 양국 관계가 파탄 날 것이라고 협박할 정도로 러시아도 과민한 반응을 보였다.
우리 주변국들도 마찬가지다. 무기 수출에 미온적이었던 일본은 한국의 약진에 놀라 총리실 주도로 방위산업 활성화 정책을 마련 중이고, 그동안 염가를 앞세워 아시아ㆍ아프리카의 여러 나라에 무기 공급자 노릇을 하는 중국은 한국의 부상을 매체에서 중요하게 보도할 만큼 못마땅한 시선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북한은 한때 우방이었던 폴란드에 대한 언급은 자제하는 대신 우리 정부를 극렬히 비난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말이 가장 많이 나오는 나라는 바로 폴란드다. 아무리 러시아의 위협이 있더라도 최대 40조 원 정도의 거대한 계약이 속전속결로 이뤄졌다면, 당연히 갑론을박이 나올 수밖에 없다. 선호도가 높은 미국ㆍ유럽산 무기의 즉각 도입이 현실적으로 어려워 한국산 무기를 선택한 점에서는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됐지만, 폴란드 국내 업체에 불이익을 이유로 반대 의견도 많은 편이다.
이는 한편으로는 자존심 문제이기도 하다. 냉전 시기에 폴란드는 소련ㆍ체코슬로바키아와 더불어 동구권 무기의 주요 공급처 노릇을 담당했을 만큼 나름대로 상당한 방산 기반을 갖추고 있는 나라다. 우리나라가 소총도 만들지 못하던 1950년대부터 소련제 전차ㆍ장갑차ㆍ자주포ㆍ헬리콥터 등을 면허 생산해 수출까지 했고, 이렇게 축적한 기술력을 발판으로 자국산 변형 장비를 개발하기도 했을 정도다.
그래서 국내 기업들은 폴란드 기업과 제휴를 맺어 현지에서 상당량을 생산하고 사후 서비스도 맡길 예정이나 기득권 세력의 불만을 완전히 잠재우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폴란드 야당은 총선에서 승리하면 계약을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벼를 정도다. 특히 K2 전차, FA-50 경공격기, K239 다연장로켓과 달리 AHS 크라프(Krab) 자주포 때문에 K9 자주포에 대한 찬반 의견이 분분하다.
자주국방 의지와 다른 현실
크라프는 2024년까지 총 122대 획득을 목표로 2015년부터 배치한 폴란드군의 주력 자주포다. 우크라이나에 18문이 공여돼 활약 중인데, 성능에 만족한 우크라이나군이 과하게 사용해서 포신이 부러지는 사례까지 나올 정도로 호평을 받고 있다. 이처럼 크라프는 서방을 대표할만한 성능을 지닌 자주포 중 하나 임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런데 급변한 작금의 상황을 대비하기에는 태생적으로도 여러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폴란드에서는 국산이라고 주장하나 엄밀히 말해 크라프는 면허 생산한 여러 구성품의 결합물이어서 신속한 생산과 배치가 구조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다. 크라프의 개발 과정을 살펴보면 폴란드가 K9을 도입하게 된 이유를 알 수 있다. 크라프는 1997년 폴란드가 나토(NATOㆍ북대서양조약기구)에 가입 신청을 하면서 개발이 시작되었다. 나토 회원국이 되면 강력한 동맹체의 보호를 받지만, NATO 규격에 따라 무기를 갖춰야 한다.
이때 폴란드는 국산 자주포를 개발해 기존 소련제 2S1 자주포를 순차적으로 대체하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그때까지 나토 표준인 155㎜ 포를 제작은커녕 사용해 본 적도 없었다. 그래서 기술을 습득려고 검증된 포탑을 면허 생산해서 국산 UPG-NG 차체와 결합하는 차선책을 택했다. 이때 폴란드는 평지가 많은 자연환경을 고려해 사거리가 길고 화력도 강한 52구경장을 포신으로 정했다.
이러한 조건에 따라 포탑 납품을 놓고 독일의 PzH 2000과 영국의 브레이브하트가 경쟁을 벌였다. 당시에 K9은 국내에 배치되기 전이어서 명함을 내밀지도 못했고, 치열한 경합 끝에 브레이브하트가 승자가 되었다. 폴란드는 브레이브하트 포탑을 면허 생산해 국산 사격통제장치ㆍ탄도레이더ㆍ통신장비 등을 탑재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정작 영국은 계약 직후에 브레이브하트의 양산을 포기했다.
브레이브하트는 39구경장 주포를 장착한 AS-90 자주포를 52구경장 주포로 환장한 성능 개량형인데, 냉전 종식으로 대대적인 군비 감축이 단행되자 영국 정부가 AS-90의 개량을 포기한 것이었다. 포탑은 AS-90과 브레이브하트가 동일했어도 포신을 별도로 구해야 하는 문제가 벌어졌다. 이에 AS-90 제작사인 BAE 시스템스가 추천한 프랑스 넥스터의 포신이 선정되었다. 하지만 더 큰 난관이 남아있었다.
경쟁자면서도 각별한 인연
UPG-NG 차체가 사격 시 발생하는 반동을 견디지 못한 것이었다. 연사가 어려운 것은 물론 차체에 균열까지 발생하는 치명적인 문제점까지 드러났다. 제작사인 OBRUM은 2008년까지도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고 크라프의 배치는 하염없이 지연됐다. BAE 시스템스가 AS-90 차체 사용을 권고했으나, 폴란드는 K9 차체를 선택했다. 가격과 품질도 좋았지만, 현지 생산과 기술 이전에 적극적이었던 점이 고려된 결과였다.
2014년 24대를 한국에서 직도입하고 96대는 폴란드 현지에서 제작하기로 계약이 이루어졌는데,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그렇게 완성한 크라프는 앞서 언급처럼 2015년부터 배치가 이뤄졌고, 폴란드가 자부심을 가져도 될 만큼 우크라이나에서도 종횡무진 활약 중이다. 그럼에도 포신ㆍ포탑ㆍ차체ㆍ구동 계통의 기술 제휴선과 공급처가 상이해서 구조적으로 양산에 애로가 많을 수밖에 없다.
연간 생산량이 20문에 불과한 데다 이마저도 기복이 심해 2024년까지 예정한 122문의 조달이 불가능할 것으로 예상할 정도다. 더해서 조달 가격도 K9보다 비싼 것으로 알려진다. 일단 영국ㆍ프랑스ㆍ독일제 부품은 동급의 한국산 부품보다 고가다. 결과적으로 특정 자주포를 선정해 면허 생산하고 일부 부품을 국산화하는 방식이었으면 조금이나마 가격을 절감하고 생산성을 높였을 것이다.
결국 크라프가 겪은 우여곡절과 이후 드러난 여러 문제점은 평시라면 기술 습득과 국내 산업의 보호를 위해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전쟁이나 그에 맞먹는 위기 상황이라면 좋은 무기를 신속히 도입하는 것보다 우선시할 가치가 없다. 더구나 가격까지 저렴하다면 마다치 않을 이유가 없다. 그 때문에 폴란드 정부는 국내외의 여러 반발을 무릅쓰고 K9의 도입을 결정한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크라프 개발이 결코 잘못됐다는 것은 아니다. 당시 폴란드의 상황을 고려하면 그것이 정답이었을지 모른다. 반면 K9이 약진하게 된 이유는 우리의 안보 환경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크라프와 K9은 비슷한 시기에 개발을 시작했지만, 냉전 종식과 신냉전의 시작이라는 격변의 시기를 거치며 오늘날 다른 위치를 점하게 된 것뿐이다. 경쟁자이면서도 여러모로 인연이 많은 자주포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남도현 군사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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