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 타인의 위험을 알아보는 눈이 없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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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족성범죄 생존자(살아남은 피해자)들의 삶을 다룬 '미완의 해방일지' 보도에 앞서 지난 8월 말 쓴 칼럼 '타인의 위험을 알아보는 일'이 프롤로그 격이었다면 이 글은 에필로그라 할 수 있겠다.
나는 8월 칼럼에서 부친에게 성폭력을 당하던 어린 학생의 위태로움을 눈치채고 손을 내민 교사 사례를 들며 우리가 이렇게 누군가의 위기에 예민해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제 와 제 말에 반문하건대 타인의 위험을 알아보는 눈이 없다면 남몰래 고통받는 이들을 도울 수 없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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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족성범죄 생존자(살아남은 피해자)들의 삶을 다룬 ‘미완의 해방일지’ 보도에 앞서 지난 8월 말 쓴 칼럼 ‘타인의 위험을 알아보는 일’이 프롤로그 격이었다면 이 글은 에필로그라 할 수 있겠다. 나는 8월 칼럼에서 부친에게 성폭력을 당하던 어린 학생의 위태로움을 눈치채고 손을 내민 교사 사례를 들며 우리가 이렇게 누군가의 위기에 예민해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제 와 제 말에 반문하건대 타인의 위험을 알아보는 눈이 없다면 남몰래 고통받는 이들을 도울 수 없단 말인가. 그렇지 않다. 오늘은 이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우리 탐사팀이 만난 생존자는 17명이다. 그들의 이야기를 전부 담지 못한 점이 못내 아쉽다. 하나같이 경청하고 유념할 이야기였다. 올해 4월 생존자를 수소문할 때 다리를 놓아준 활동가는 “취재에 응한 분들의 이야기가 다 기사로 나갈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때 “되도록 모두 실으려 한다”고 했고 그 말은 진심이었는데 결과적으로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그 뒤로 인터뷰이가 배 이상 늘면서 부득이 어느 쪽으든 아쉬운 선택을 해야만 했다. 전하지 못한 이야기 중 일부를 여기에 옮긴다. 그저 미안해서가 아니라 바로 그 이야기가 누군가를 돕기 위해 그들의 위험을 꿰뚫어 보는 능력만큼이나 중요한 게 무엇인지 알려주기 때문이다.
영서씨는 초등학생 때부터 10년 가까이 부친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그 부친의 직업이 목사였는데도 영서씨는 신앙을 잃기는커녕 오히려 끈질기게 붙들었다. 신에게 매달리는 수 말고는 살아갈 방도가 없을 정도로 절박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 땅엔 외할머니라는 ‘정서적 피난처’가 있었다. “진주는 진흙탕에 빠져도 물로 씻으면 다시 깨끗해지지 않으냐. 너는 그런 아이”라고 말해주는 분이었다. 또 어릴 적 바쁜 엄마를 대신해 친딸처럼 살펴주던 ‘동네 엄마’들이 있었고, 부친에게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치느라 힘들어하던 대학생 영서씨를 위해 강의 필기를 대신해주며 지극히 챙겨주던 같은 학번 언니들이 있었다. 그들 모두가 영서씨의 삶을 지탱한 버팀목이었다.
동네 엄마들과 동기 언니들은 영서씨가 무슨 일을 겪는지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내어준 친절은 영서씨를 말 못할 고통 속에서도 살아갈 수 있게 해줬다. 영서씨는 그렇게 살아남아 신고할 용기를 낼 수 있었고 결국 자유로워졌다. 동네 엄마들이나 동기 언니들은 자신의 친절이 대단하다고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을 테지만 지옥 같은 삶을 살던 영서씨에게는 그 평범한 친절이야말로 대단한 지지이자 조력이었다.
또 다른 생존자 하윤씨는 일방적 피해자였던 자신이 주체로서 힘을 회복해나가는 과정에서도 주변인의 지지와 조력이 큰 도움이 됐다고 한다. “너는 소중하고 사랑받는 게 마땅한 사람이야라고 인지시켜주는 거죠. 자존감이 너무 낮아져 있기 때문에 끌어올릴 필요가 있거든요.” 부친에게 성폭력을 당하던 중학생 시절에는 그런 사람이 곁에 없었다. “사실 해방이 거대한 게 아니거든요. 내가 힘들어하는 이유에 대해 같이 이야기 나누면서 조금 또 조금 나아져가는 거라고 생각해요”라고 영서씨는 말했다. ‘미완의 해방일지’라는 타이틀은 영서씨 인터뷰에서 건져진 것이었다.
이들의 생존담에서 공통적으로 발견한 것은 친절의 힘이다. 친절은 누가 고통받아서만 행하는 것이 아니지만 고통받는 이들에게 버틸 수 있는 힘이 되어준다는 사실을 영서씨와 하윤씨를 비롯한 생존자들의 삶이 증명하고 있었다. 애초 친절이 특별한 능력을 필요로 하거나 거창한 일이라면 우리는 타인에 대해 선한 일이라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이다. 친절은 신이 우리에게 준 가장 보편적이면서도 언제나 강력한 선행이다.
강창욱 이슈&탐사팀장 kcw@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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