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논단] 이태원 참사와 대통령 부부의 3법칙
동남아 순방 중인 윤석열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 여사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팔짱을 꼭 끼고 찍은 사진이 국내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이 한 장의 사진은 한 달 전 미국을 방문한 윤 대통령의 이른바 ‘바이든 날리면’ 소동을 일거에 만회한 듯하다. 김 여사는 또 캄보디아의 세계적 유적지인 앙코르와트 관광을 포기하고 현지 병원에서 심장병 어린이들을 돌보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지면을 장식했고, 윤 대통령은 미국 일본 정상들과 잇따라 만나 우의를 과시했다. 우리나라 대통령은 해외만 나가면 펄펄 난다는 ‘해외 순방의 법칙’이 이번에도 어김없이 재연되고 있다.
하지만 국내의 이태원 참사 정국을 보면 먹구름에 비바람이 몰아치고 있다. 세계 10위권 국가의 수도 한복판에서, 그것도 불과 40m 남짓한 좁은 골목에서 157명이 죽었다면 세계적 참사임에 틀림없다. 해외 대형 재난이나 국내 삼풍백화점 붕괴나 KAL기 폭파 같은 대형 사건사고를 보면 3단계 법칙이 도출된다.
제1단계는 사고 자체보다 사고 수습에 따라 여론이 결정되는 ‘민심의 법칙’이다. 즉 윤 대통령이 이태원 참사를 잘만 수습하면 오히려 지지율 반등을 가져올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하면 회복 불능의 레임덕에 직면할 수 있다. 3000여명이 희생된 2001년 9·11테러 참사 당시 루돌프 줄리아니 미국 뉴욕시장, 무려 10만여명이 사망한 2008년 쓰촨성 대지진 때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당시 부주석)은 오히려 위기 속에 떠올랐다. 두 사람은 현장에서 희생자 유가족들과 동고동락하며 진두지휘형 리더십을 유감없이 발휘해 국민의 마음을 얻었다. 특히 시 주석은 아내 펑리위안과 함께 대지진 참사 현장을 누비며 국가 지도자로서의 위치를 굳혔다. 좀 다른 경우지만 김대중 대통령은 1997년 발생한 전대미문의 외환위기 사태를 단기간에 극복해 오늘날 진영을 떠나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2단계는 ‘사과의 법칙’이다. 윤 대통령은 이태원 참사 정국을 어떤 방식으로 수습할 것인가? 이 과정에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 대통령의 사과와 국민의 반응이다. 대통령의 사과는 단순히 고개 숙여 ‘유감’ ‘사과’를 표명하는 차원을 넘어 국민 지지 획득의 중요한 수단이다. 윤 대통령은 국정의 최고 책임자로서 도의적·정치적 책임을 지고 진실로, 진심으로 고개 숙여 사과해야 한다. 사과 내용을 명확히 밝혀야 국민은 대통령의 진정성을 알아준다. 두루뭉술한 사과는 오히려 반감만 산다. 대통령의 사과에는 반드시 피드백이 있어야 한다. 말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확실한 대안 제시, 후속 조치가 뒤따라야 한다. 무려 157명이 희생됐다면 도의적·정치적·행정적·법률적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사람은 없다. 국민 눈높이에서 본다면 행정안전부 장관이나 경찰청장 경질 정도는 너무나 당연하게 여길 것이라고 본다. 대통령이 사과에 인색하거나 두려워하면 안 된다. 필요하면 2번, 3번 할 수도 있다. 국정 최고 책임자의 사과는 굴종이 아니라 겸손함의 표현임을 인식해야 한다.
사태 수습의 최종 3단계는 역시 ‘민생제일주의’다. 윤 대통령은 MBC 취재 제한 논란이나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 질책 논란과 같은 정치적 구설에 오르내리지 않고 오직 국민의 민생을 챙긴다는 ‘민생 대통령’의 면모를 보여줘야 한다. 용산 대통령 집무실에 주택·부동산정책 현황표, 일자리 현황표, 중소기업 현황표, 청년 취업 현황표를 두고 해당 장관들을 독려하는 모습을 왜 국민에게 보여주지 못하는가? 이른바 민생 4인방이라고 할 수 있는 국토교통부·산업통상자원부·중소벤처기업부·보건복지부 장관의 존재감이 부족하다. 민생은 잘 보이지 않는데 문재인 전 대통령과의 ‘풍산개 진실 게임’ 같은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반복되면 국민 분노는 더욱 커질 것이다.
동남아 순방에 동행한 김 여사를 두고 ‘재클린 케네디 코스프레’니 ‘오드리 헵번 코스프레’ 이야기가 국내 언론에 나오고 있지만, 국내에서도 서민 행보를 계속한다면 논란은 잦아들 것이다. 윤 대통령과 김 여사가 이태원 희생자 157명이라는 숫자가 얼마나 어마어마한지를 깊이 깨닫는다면 국내외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는 명확해진다. 이태원 민심 한파가 매섭게 몰아치고 있는 가운데 윤 대통령 부부는 국내외를 불문하고 민심·사과·민생의 3단계 법칙을 깊이 염두에 두고 속도감 있게 진행하기를 바란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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