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오쩌둥 유령이 베이징을 떠돌고 있다…50년대 공영슈퍼 등장 [신경진의 차이나는 차이나]

신경진 2022. 11. 14.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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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진 베이징 총국장

중국에서 당 대회가 끝나자 과거 마오쩌둥(毛澤東) 시대의 사회·경제 정책이 속속 되살아나고 있다. 과거 1950년대 식량과 생필품의 수요·공급을 해결하기 위해 만든 ‘공소합작사(供銷合作社·공급판매협동조합)’가 되살아나 민영 업체를 압박하고, 식당을 포함한 ‘원스톱 시범마을’ 사업도 시작되면서 과거 회귀 여부가 논란이다.

베이징 도심 퇀제후(團結湖) 공영 슈퍼마켓 외벽에 “발전경제 보장공급” 구호가 적혀있다. 신경진 특파원
베이징 도심 퇀제후(團結湖) 공영 슈퍼마켓 외벽에 문화대혁명 시절 분위기의 그림과 ‘공소사(供銷社·공급 판매 조합)’ 이름이 걸려있다. 신경진 특파원


“경제발전 공급보장.” 베이징 쇼핑가인 싼리툰(三里屯)에서 멀지 않은 퇀제후(團結湖) 주택단지(社區·사구)에 최근 개업한 공영 슈퍼마켓 외벽에 붙은 구호다. 공급망 위기를 대비한 시설임을 암시한다. 지난 5일 찾아간 매장에 문화대혁명 분위기의 그림 위로 ‘공소사(供銷社)’라는 이름이 눈길을 끌었다. ‘공급 및 판매 조합’(영문 Supply and Marketing Cooperatives)이란 뜻이다. “마천루가 도시의 미래라면, 공소사라는 과거 기억에서 변변치 않던 음식을 맛보고, 인간의 백 가지 맛을 음미한다”는 알쏭달쏭한 문구가 보였다. 마오 시대의 유산을 재평가하려는 선전 문구다.


문혁풍 그림에 “공급 보장” 내걸어


입구에 ‘편민복무중심’, 주민 편의를 위한 서비스 센터라는 간판을 달았다. 와이파이, 우산대여, 선물 포장, 응급 구호품, 잔돈교환, 생선 손질 등 다양한 서비스 안내문도 걸었다. 지난달 31일 주택건설부가 2년 후 전국 확대 시행을 예고한 ‘원스톱 생활편의센터’의 모델인 듯 확충 공사도 한창이었다.
13일 오전 베이징 도심 퇀제후(團結湖) 공영 슈퍼마켓에 인근 주민들이 식재료를 구매하고 있다. 신경진 특파원

중간 규모 슈퍼마켓 형태의 매장 안에는 신선 야채·과일·육류·생선을 비롯해 즉석 식품과 생필품을 두루 팔고 있었다. 가격은 저렴했다. 인근 로컬 슈퍼 체인인 징커룽(京客隆)에서 6위안(1100원)에 파는 버섯이 4위안(740원), 20개 포장의 야채 만두는 15위안(한화 2800원)을 받았다. 20위안 정도인 시장가보다 쌌다. 가격차는 20~30% 정도였다. 자매 농촌에서 직구매한 농산품을 진열한 ‘향촌진흥 전용 매대’도 보였다. 한 점원은 “비싸면 공소사가 아니다”라며 직구를 통한 가격 경쟁력을 자랑했다. 손님은 대부분 인근 주민으로 보였다. 공소사의 연원을 묻자 개의치 않는다는 반응이 많았다.

중국에서 공소사가 굴기(崛起·우뚝섬)하고 있다. 관영 매체가 베이징·상하이·광저우·선전 등 대도시의 공소사 부활 소식을 보도한다. 공소사 관련 주식이 최근 주식 시장의 상승세를 주도하고, SNS에는 과거 배급 경제 시절의 공소사와 양표(糧票) 사진이 범람한다. 중국 포털 바이두(百度)의 지도 애플리케이션에서 공소사를 검색하면 베이징에서만 100여 곳이 검색될 정도다.


지난해 매출 1165조원으로 증가


전국 조직인 중화전국공소합작총사(中華全國供銷合作總社)는 지난해 매출 총액을 6조2600억 위안(1165조원)으로 공개했다. 전년 대비 18.9% 증가한 수치다. 글로벌 온·오프 유통기업인 알리바바의 지난 2022년 회계연도 총거래액(GMV) 8조3170억 위안의 75% 수준까지 성장했다.
1950년대 말 중국 대약진 운동 시기 인민공사의 공동식당. 벽에 “밥을 먹어도 돈을 내지 않는다”는 구호가 보인다. 바이두 캡처

공소사는 농촌이 도시를 포위하는 모습이다. 후베이(湖北)는 지난달 17일 이미 1373개의 기층 공소사를 재건했다고 호북일보가 보도했다. 소속 직원 규모는 지난 2016년 5만1500명에서 현재 45만2000명, 2025년 150만명으로 확대할 방침을 밝혔다. 20차 당 대회에선 량후이링(梁惠玲·60) 공소합작총사 이사회 주임이 중앙위원 205명 중 한 자리를 얻었다. 공소사 창설 73년만에 처음이다. 공소사의 정치적 위상과 확대 발전을 예고한다고 전문가들은 해석한다.


마오쩌둥 시절 보급된 뒤 쇠퇴


공소사는 1953년 토지 몰수와 분배를 마친 뒤 마오쩌둥이 농촌의 생산·유통·신용 3대 합작화 지침을 제시하면서 전국에 보급됐다. 그해 설립된 공소합작사는 총 3만2000개, 조합원은 1억5000만명으로 농민 90%가 참여했다. 개혁개방이 시작되자 공소사는 농촌에서 농자재 구매 채널로 명맥을 유지했다. 그러다 시진핑(習近平) 시대 들어 부활이 본격화됐다.

량후이링 주임은 올 초 업무보고에서 시 주석이 모두 10차례 공소사 관련 지시를 내렸다고 공개했다. 시 주석은 지난 2020년 9월 24일 열린 공소사 7차 당 대회에 “공소합작사는 농업과 농촌 발전을 이끈 중요한 역량이었다”며 “당과 농민을 잇는 교량이자 허브로 향촌진흥에 공헌하라”는 지시를 전달했다.

공소사 재건은 더욱 빨라질 전망이다. 지난달 31일 주택건설부와 민정부가 통지한 ‘완전 주택단지’ 시범사업이 공소사와 맞물리면서다. 문건에 따르면 각 시와 구 정부는 이달 말까지 3~5개 거주지구를 시범 단지로 선정해 계획서를 제출해야 한다. 2년간 시범 운용을 거쳐 2025년부터 전중국에서 시행할 예정이다.


시장 통제, 계획경제 회귀 우려


통지문은 ‘완전 단지’ 건설 취지로 기층 거버넌스의 현대화를 제시했다. 단지마다 유치원·어린이집·노인지원센터·편의점·식료품점·이발소·세탁소·약국 등 생활 편의 시설을 모두 갖추도록 요구하며 식당까지 포함했다. 중화권 언론은 공동식당을 계획경제 시절 한솥밥[大鍋飯]과 공동취사를 강요했던 국영식당을 연상시킨다며 과거 회귀를 우려했다.

베이징의 독립기자 가오위(高瑜)는 트위터에 “80년대 사라졌던 합작사가 부활했다”고 지적했다. 차이샤(蔡霞) 전 중앙당교 교수는 “공소사가 독점했던 계획경제 시기에는 물자가 부족해 선택의 여지조차 없었다”며 평양의 텅 빈 상점에서 공소사의 그림자를 봤다고 트위터에 올렸다.

류루이사오(劉銳紹) 홍콩 시사 평론가는 “중국 경제가 수축하면 일부 지역에서 민생 물자의 공급 부족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며 “당국은 위기와 사회 안정에 끼칠 영향을 막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베이징 공소사 벽면의 ‘공급보장’이 구호만이 아니라는 분석이다.

이원준 인천대 중어중국학과 교수는 “공소사의 부활과 거주단지 개편안을 보면 과거 계획경제 시절의 중국 지역 조직인 ‘단웨이’(單位·단위)의 그림자가 보인다”고 말했다.

베이징=신경진 특파원 shin.kyung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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