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연의 퍼스펙티브] 수평사회 만드는 2030처럼 모두가 작은 실천 나서야
정당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헌법은 1조1항에서 ‘민주공화국’임을 천명하고 있다. 해방 후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제도는 이식받았으나, 수천 년의 농경 문화, 수백 년의 유교 전통, 수십 년의 식민 지배와 권위주의 시절의 영향으로 최근까지도 우리의 의식과 행동은 가부장적 질서와 연공서열 제도, 동원형 조직문화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지역마다 관변단체라 불리는 다양한 사회단체 활동에 참여하는 분들이 정당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사례가 많다. 필자도 2008년 정치에 입문한 이후 지역에서 도움을 주신 분 중 사회단체 활동을 활발히 하던 분들이 많았다. 국회의원은 지역에서 단체들과 교류할 기회가 많아 활동상을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있었다. 20대, 30대는 잘 보이지 않았지만, 적어도 40대 이상은 세대 구성도 다양했고 각자의 방식으로 열정적으로 봉사활동에 임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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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당의 수직 통제 문화는 다양한 의견과 합리적 사고 짓밟아
바른말 하면 ‘내부 총질’이라 비판, 출세 위한 맹종분자만 키워
참여하지 않고 불평만 하면 정치는 ‘그들만의 리그’로 저질화
함께 만드는 대화 공동체의 에너지로 사회 토양 바꿔야
」
수직적 조직은 젊은 세대 충원 어려워
그런데 2020년에 의정활동을 마무리할 때 보니 2008년에 각 단체의 막내 세대였던 분들 대부분이 여전히 막내로 남아있는 것이었다. 청년연합회·청년회의소 같은 청년 단체들도 신입 회원 충원에 애를 먹고 있었다. 회원들의 주된 생업 기반인 자영업 경기의 장기 침체로 봉사의 여력이 바닥났기 때문이라고 의견이 모였으나, 돌아보면 우리 사회가 깊게 팬 세대 경계선을 통과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혈연·지연·학연을 대표하며 조직된 종친회·향우회·동창회를 봐도 신입 회원 충원이 안 되는 경우가 많다. 종교단체도 사정이 비슷하다. 고령화 영향도 있겠지만 일부를 제외하곤 대부분의 교회·사찰·성당에 젊은이들이 많지 않다. 유연한 적응력을 보유한 기업에서는 40대를 넘어 30대 임원·대표가 속출하고 있다. 장유유서·연공서열 문화가 호봉제 등의 제도로 박제된 조직들은 이 거대한 변화를 견뎌내지 못하고 소멸의 길을 걸을 가능성이 높다.
젊은 세대 입장에선 숨 막히는 수직적 위계질서 속으로 굳이 제 발로 걸어 들어갈 이유를 찾지 못했을 것이다. ‘새마을’도 ‘참여연대’도 회원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와중에 20·30세대는 어디에서 어떻게 만나고 교류하고 있을까? 지금의 30대, 20대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하고 있는지 늘 궁금했는데, 최근 이들 중 일부를 만날 기회가 있었다.
시민이 새로운 사회운영체계 만들어
개인주의 심화, 온라인 문화 확산으로 지금 세대는 예전처럼 오프라인 단체 활동을 하진 않지만 달리기를 위해 모인 ‘러닝크루’, 환경 봉사까지 결합한 ‘플로깅’ 등 다양한 형태의 모임이 새로 생겨나고 있다.
2015년 창업한 ‘트레바리’는 매월 한 권의 책을 읽고 모여 토론하는 독서클럽이다. 4개월이 한 시즌이고 모임 이틀 전까지 독후감을 내지 않으면 참석할 수 없는 엄격한 규칙에도 불구하고 5000명이 넘는 회원이 모여 있고 지금까지의 누적 등록 인원은 8만 명을 넘는다고 한다. 필자도 클럽장으로 참여해봤는데 모든 참여자가 ‘이름+님’ 호칭으로만 부를 수 있게 하니 장벽이 낮아지고 소통의 차원이 달라지는 것을 현장에서 확인했다. 정부 예산 지원이 아니라 소프트뱅크 투자를 받은 스타트업이지만 사회적 임팩트를 추구하며 우리 사회를 학습·토론 공동체로 탈바꿈시키는 데 기여하고 있다.
‘경제살롱’이란 곳도 있다. 2020년 9월에 경제 기사 공부를 위해 모인 15명이 부동산 시세 급등과 주식 암호화폐 불법 투자자문에 대처하기 위해 재테크 강좌를 겸하는 공부 모임으로 발전했다.이후 창업·브랜딩·미술·어학 등으로 영역이 빠르게 확장되고 있다. 모여서 대화하다 보니 각자가 가진 경험과 재능을 나눌 수 있음을 확인했고 지금은 약 20개의 강좌를 약 50명의 운영진이 돌아가며 강의한다. 매달 1500명 정도가 세미나에 참석한다고 한다. 고정 사무실 없이 서울 강남역의 공유 회의실을 빌려 주말에만 운영된다. 과거엔 부동산 경매학원에 가야 들을 수 있던 콘텐트를 시민이 스스로 수평적으로 연결해가며 동료 시민을 위해 자신의 시간과 재능을 나누며 훌륭한 평생교육기관 겸 시민클럽이 만들어지고 있다.
각각 150만명 전후의 구독자를 보유한 세바시, 김미경의 MKTV, 스터디언 등 수많은 유튜브 채널을 통해 과거엔 선배나 선생님을 만나서 듣던 멘토링을 누구나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이 중 일부는 전국적인 오프라인 교육 공동체로까지 진화하고 있는 모습도 목격했다. 이제 민간에서 시민들이 자율적으로 새로운 사회운영체계를 만들어내기 시작하고 있다. 초기 단계지만 이런 시도들이 누적되고 연결되면 공동체의 전혀 다른 거버넌스를 만들어낼 것이다.
독일, 당내 ‘청년당’에 완전 자치 보장
정당과 정치의 모습에 구토가 난다는 의견을 계속 듣는다. 수직 통제 문화에서 길러지면 권력을 쥘 때 조직을 사유화해야 한다는 권력 독점 강박이 있는 것 같다. 다양한 의견과 합리적 사고는 패거리 문화에 짓밟히고 바른말 할라치면 ‘내부 총질’ 소리를 듣는다. 출세를 위한 맹종분자가 되거나 목숨을 부지하려면 구석에 가 있어야 한다.
군대나 경찰 등 본질상 위계구조가 필수적이어야 하는 경우도 있고, 위기 극복 시 역량을 결집하는 데에는 수직조직이 강점을 가진다. 농업사회에서 자란 산업화 세대, 산업사회에서 자란 민주화 세대, 민주화 이후 사회에서 자란 MZ세대가 뒤섞여 살아가는 오늘의 대한민국에서 수직조직의 원리만으로는 젊은 세대는 숨막히게 된다. 서로 다른 언어를 쓴다는 것을 알지도 못한 채 공동체는 분리·해체 중이다. 달라진 세상을 인정하고 수평조직 원리를 수용하며 다음 세대와 함께 하지 않으면 기존의 수직조직이 지속 가능하지 않게 된다.
세대 간 다양성을 정당 내에서는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 1945년 창당한 독일의 기민당과 기사당 공동의 연합청년당인 영유니온은 1947년 창당 이후 완전한 자치권을 보장받으며 모(母)정당들을 위한 정치인 성장 플랫폼 역할을 해왔다. ‘당내 당’이었지만 이들의 관계는 지배·종속관계가 아니라 철저한 보완·협력관계로 운영되어 왔다.
국민의힘 김종인 비대위원장 시절 김재섭 당시 비대위원에게 사명을 부여해 추진했던 ‘청년의힘’이 영유니온을 모델로 했는데 2020년 12월 출범한 이후 활동이 멈췄다. 새로운 형태의 청년당에 대한 갈등 원인이 실은 수직문화와 수평문화의 충돌이었는데, 당시엔 신·구세력의 권력투쟁으로 곡해되어 감정의 앙금만 남기고 말았다. 새누리당·바른정당 분화 때도 그랬듯 문화와 언어의 차이를 극복하기가 쉽지 않다.
더불어민주당의 전국청년당은 2020년 1월 당 안의 당으로 창당되어 2기 전국청년위원장 선출을 앞두고 있다. 원내 인사 등 인지도 높은 인물이 유리하고 기존 정치권이 청년을 대하는 태도와 크게 다르지 않은 한계는 있지만 자율권·자치권이 확실히 보장된다고 한다. 청년당을 비교해보면 앞서 진일보 중이다.
민주공화국에 무임승차 말아야
법은 권리 위에 잠자는 자를 보호하지 않는다. 시민은 정치적 권리 위에 잠들어서도 안 된다. 그리고 정치적 권리 뒷면에는 ‘정치 참여의 의무’가 씌어 있다. 참여는 하지 않고 불평만 하면 정치가 ‘그들만의 리그’가 되고 저질화된다. 분노와 공포를 자극하는 극단적 주장에 현혹되어 경제적 기부를 하거나 광장 집회에 참석하는 것이 제대로 된 정치 참여는 아니다. 오히려 확증편향으로 세뇌당한 채 내가 경제적 노예나 정치 홍위병으로 전락한 건 아닌지 의심해볼 일이다. 정치공동체라는 차량에 아무도 요금을 지불하지 않으려 하면 정상 운행이 어렵다.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무임승차자가 될 것인가, 유료 탑승객이 될 것인가? 탑승 요금은 나의 시간과 노력과 재능을 나누는 것이다.
자신에게 물어보자. 정당과 정치에 대한 탄식과 불평과 비난 외에 실천한 것이 있는가?
조금이라도 여력이 있다면 강남역의 젊은이들처럼 작은 실천을 시작해보자. 개인의 실천은 결심에서 시작되고 사회의 실천은 대화에서 시작된다. 우리는 이미 유교적 전통, 권위주의 통치, 운동권 문화에서 만들어진 국가주의·집단주의를 뒤로하고 개인과 사회의 균형 위에 교육공동체, 문화공동체, 자원봉사공동체, 정치공동체로 재구성되는 초입에 들어섰다. 모여서 공적인 대화를 나누다 보면 자연스럽게 다음 과제가 보일 것이다. 대화의 공동체, 문제 해결의 공동체를 만들어가면 그 에너지가 우리 사회의 토양을 바꿀 것이다. 여기에 새로운 정신이 뿌리내리면 비로소 우리가 원하는 그런 정당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김세연 전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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