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칼 뽑은 일본 반도체 드림팀, 겨울잠 빠진 K칩스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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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8개 기업 참여 ‘라피더스’ 설립
한국, “대기업 특혜” 야당 반대에 발목
일본이 칼을 뽑았다. 반도체 산업에서의 주도권 회복을 위해서다. 이 싸움에 나선 일본 기업들의 면면은 쟁쟁하다. 일본 반도체 드림팀에는 도요타·키옥시아·소니·NTT·소프트뱅크·NEC·덴소·미쓰비시UFJ 등 8개 기업이 참여한다. 이들 기업은 각 분야에서 세계 1위를 달리거나 해봤던 저력을 갖고 있다.
일본 드림팀 ‘라피더스(Rapidus)’는 ‘빠르다’는 뜻의 라틴어처럼 속도전을 예고했다. 2027년부터 첨단 칩 양산을 목표로 하면서다. 1980년대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을 장악했던 만큼 생산기술은 가지고 있다. 관건은 첨단 인력인데 라피더스는 대만·미국 등에서 일본인 엔지니어를 불러들여 선폭 2nm(나노미터, 10억분의 1m) 공정의 첨단 반도체를 생산하기로 했다. 2nm는 삼성전자·TSMC·인텔 등 세계 정상의 기업들이 이르면 2025년부터 활용할 것으로 예상되는 공정이다.
요컨대 일본이 한국에 빼앗겼던 반도체 제국의 위상을 되찾겠다는 야심 찬 계획이다. 이런 시도가 처음은 아니다. 1992년 세계 10대 반도체 회사 중 6개를 차지했던 일본은 삼성전자와의 치킨게임에서 번번이 쓰러졌다. 이후에도 일본 기업들은 패잔병처럼 힘을 모아 삼성전자에 도전해 보기도 했지만, 삼성전자의 과감하면서도 한발 빠른 투자 공세에 밀려 추풍낙엽처럼 쓰러져 지금은 아예 존재감을 잃었다.
하지만 반도체 시장의 지각변동으로 일본 기업에 다시 기회가 찾아왔다. 그동안 반도체 시장은 메모리 칩이 주도했지만, 지금은 새로운 기술 환경이 펼쳐지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이 도화선이 되면서 다양한 용도의 시스템 반도체를 유연하게 생산하는 위탁생산 방식의 파운드리가 반도체 시장의 핵심으로 떠오르면서다. 자율주행차, 스마트폰용 이미지 센서, 인공지능(AI)과 수퍼컴퓨터 등 다양한 용도의 시스템 반도체가 필요해졌다.
D램과 낸드플래시 등 메모리 칩에 주력해 온 삼성전자가 대응하지 못했던 이 분야는 TSMC가 치고 나왔다. 최근 수년간 대만은 섬나라의 특성 탓에 물 부족을 겪자 논에 물을 끊고 반도체 공장에 용수를 공급하면서 반도체 굴기(崛起, 벌떡 일어섬)에 전력을 쏟았다. 미국이 반도체 생산에 박차를 가하고 이제 일본이 반도체 영토 회복에 팔을 걷어붙였다.
그런데 한국은 어디로 가고 있나. 한국도 반도체 클러스터 인허가 절차 간소화 등을 담은 K칩스법(반도체 산업 경쟁력 강화법)을 입안했지만, 깊은 겨울잠에 빠져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대기업 특혜’라며 반대하고 있어서다. 한국 유일의 경제 버팀목이자 안보 무기가 정쟁에 휩싸여 휘청거리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야당을 설득해 초당적으로 K칩스법을 통과시켜야 한다. 일본이 다시 반도체 제국 건설에 성공하면 한국의 미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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