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로 판명난 탈원전...韓환경론자 '툰베리 전향' 안보이나 [노정태가 고발한다]

노정태 2022. 11. 14.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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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신재민 기자

“이미 가동 중인 원전이 있다면 석탄에 집중하기 위해 원전을 폐쇄하는 것은 실수라고 생각한다.” 누가 한 말일까? 혹시 원자력 로비스트가 한 발언일까? 그렇지 않다. 10대 환경운동가로 국제적 명성을 얻은 스웨덴의 그레타 툰베리가 지난 10월 11일 독일 공영방송 다스 에르스테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툰베리의 태도 변화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때문이다. 러시아 국영 에너지 기업 가즈프롬은 유럽 전역에 천연가스를 공급하는데, 전쟁 후 러시아에 대한 경제 제재 강화로 공급에 차질이 생겼다. 독일은 당장 올 겨울을 어떻게 나야 할지 근심에 빠졌다. 국민은 '난방용 땔감'을 검색하고, 정부는 폐쇄를 앞둔 화력발전소를 되살려 가동하기 시작했다. 탈원전과 탈 석탄을 태양광과 풍력으로 충당한다는 소위 '에너지 전환'의 실상이 차가운 현실 앞에 허무하게 드러난 것이다. 툰베리의 발언은 그 연장 선상에 놓여 있다.

지난달 독일 언론과 인터뷰하는 그레타 툰베리. 그는 독일에서 "가동 중인 원전을 폐쇄하는 것은 실수"라고 말했다. 중앙포토

이건 결코 남의 나라 일이 아니다. 비현실적인 환경주의, 그를 기반으로 한 잘못된 에너지 정책 탓에 에너지 대란의 위기에 몰린 건 지금 대한민국도 마찬가지라서다.


한전이 쏘아 올린 회사채 대란


2022년 11월 현재 대한민국 기업들은 심각한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다. 회사채가 팔리지 않아 자금 마련이 어려워진 탓이다. 에너지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회사채를 화제에 올리는 건 이 회사채 대란의 배경에 한국전력공사(한전)가 있어서다. 한전이 올해 1~10월 발행한 채권은 총 24조4900억원이다. 지난해보다 무려 2배 늘어난 규모다. 독점 공기업이라 최고 신용등급(AAA)인 한전채가 은행채와 함께 이렇게 채권시장의 자금을 다 빨아들이다 보니 시장 돈이 말라붙은 것이다.
한전은 대체 왜 이렇게 비정상적으로 많은 자금을 조달하는 걸까? 이유는 간단하다. 적자가 엄청나게 쌓이고 있기 때문이다. 적자 전환 이후 지난해 5조8601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는데, 올해 상황은 더욱 나쁘다. 3분기에만 7조5000억원, 올 한해로 보면 40조원의 영업손실을 낼 것으로 보인다. 지난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기조를 거치며 한전은 전기를 팔수록 손해 보는 구조가 돼버린 탓에 매달 빚(회사채)을 내서 운영을 하는 셈이다.

한전의 엄청난 적자는 크게 두 가지 요소에서 기인할 것으로 볼 수 있다. 우선 대외적 요인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촉발한 국제적인 에너지 대란 탓에 천연가스를 비롯해 모든 에너지원의 가격이 폭등했다. '전기는 국산이지만 원료는 수입입니다'라던 2010년대 공익광고의 문구처럼, 우리가 쓰는 전기 원료의 96%를 수입에 의존한다. 전기 가격의 80%가 원료 가격인 현실을 놓고 볼 때 한전의 적자는 불가항력인 측면이 있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문재인 정권의 탈원전 정책, 그리고 이를 대체하겠다며 내놓은 태양광과 풍력 등 소위 신재생에너지 드라이브, 여기에 한전공대라는 최악의 조합을 윤석열 정권으로 떠넘긴 결과가 작금의 회사채 대란으로 돌아왔다.

태양광과 풍력 모두 전기 생산을 인위적으로 결정할 수 없다는 공통점이 있다. 구름이 끼거나 해가 지면 태양광 발전기는 작동하지 않는다. 바람이 불지 않으면 풍력 터빈은 돌지 않는다. 전문적인 용어로 '간헐적 에너지'로 분류되는 이 특성 때문에 태양광과 풍력은 거대한 배터리가 있는 에너지 저장 장치(ESS)가 필요하다. 아무리 크게 만들어도 ESS 용량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기에 LNG 발전을 백업 설비로 둔다.

문재인 정권이 탈원전과 함께 신재생에너지를 확대한 결과 LNG 발전 비중이 엄청나게 늘 수밖에 없었다. 전력거래소에 따르면 LNG 발전 비중은 문 정부 첫해인 2017년 22.6%였으나 2021년에는 30.4%로 증가했다. LNG는 원전보다 발전 단가가 5배 넘게 비싸기도 하지만 더 중요한 특징이 있다. 가격의 등락 폭이 크고 어느 방향으로 튈지 알기 어렵다는 것이다. 딱 지금 상황이 그렇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한 천연가스 가격 폭등의 영향권에서 사나운 소나기를 맞고 있다.

물론 문재인 정권의 탈원전 정책이 없었더라도 가스 가격은 올랐을 것이다. 하지만 에너지 믹스를 원래 수준으로 유지하고 있었더라면, 다시 말해 값싼 원자력 비중을 줄이지 않았더라면 한전의 적자가 지금처럼 심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전기요금 인상 국민 설득했어야


여기서 꼭 짚어야 할 문제가 있다. 전기요금이다. 비싼 데다 가격이 자주 바뀌는 원료를 더 많이 쓰도록 에너지 믹스를 바꾸려면 그에 맞춰 차근차근 전기요금을 인상했어야 한다. 국민적 반발에도 불구하고 상황을 설명하고 설득을 해야 했다는 얘기다. 하지만 우리 모두 아는 바와 같이 문재인 정권은 이같은 '표 떨어질 짓'은 전혀 하지 않는 원칙을 에너지 정책에도 그대로 고수했다. 오히려 앞으로 10년간 1조6000억원 이상이 들어가는 한전공대를 전남 나주에 만들었다. 그 결과 우리는 엄청난 적자에 시달리는 한전이 회사채 시장의 돈줄을 말리는 현실을 직면하게 된 것이다.

문재인 정부만 비판하고 말 일이 아니다. 탈원전에 신재생에너지를 키운다며 결국 LNG 발전의 비중을 키우는 일에 앞장서서 치어리더 노릇이나 한 자칭 환경주의자들도 책임이 적지 않다. 초우량 공기업 한전이 적자투성이가 되고 시중 자금을 모두 빨아들이며 다른 기업마저 연쇄 부도의 벼랑 끝으로 내몰리게 된 데에 그들의 책임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탈원전은 한국, 아니 전 세계의 그 어떤 나라의 현실에도 부합하지 않는 낭만적 판타지일 뿐이다. 탈원전의 원조 격이라 할 수 있는 독일마저 원전을 폐쇄하지 못한다. 심지어 글로벌한 상징적 인물 그레타 툰베리마저 안면 몰수하고 원자력 발전을 옹호하는 쪽으로 입장을 바꿨다. 하지만 한국의 자칭 환경주의자들은 요지부동이다. 국민 앞에 무릎 꿇고 사죄하기는커녕 환경주의를 앞세운 반정부시위에나 골몰하는 듯하다. 이제는 그럴 때가 아니다. 드라마 '왕좌의 게임'에 나온 명대사를 빌어보자면 “겨울이 오고 있다.”

노정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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