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해밀톤호텔 비상구 열렸다면…‘생명문’될 수 있었다

함종선 2022. 11. 14.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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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9일 밤 이태원 참사가 벌어지던 골목길에서 해밀톤호텔 ‘직통계단’. 함종선 기자

지난달 29일 밤 이태원 참사가 벌어지던 그 골목길에서 해밀톤호텔 옆 계단과 계단 위 공간은 작은 피난처였다. BJ(인터넷방송인) 배지터가 생방송 했던 당시 현장 영상을 보면 배지터는 사람들이 꼼짝달싹 못 하던 그 골목에서 누군가의 어깨를 딛고 계단 위 공간으로 올라갔고, 그곳에서 5~6명의 사람을 끌어올렸다. 그 공간도 좁아지자 배지터를 향해 “야 그만 올려”라고 소리치는 남성의 목소리도 들린다.

지난달 29일 밤 이태원 참사가 벌어지던 골목길에서 해밀톤호텔 ‘직통계단’(위 사진)과 통하는 공간. 함종선 기자

지난 11일 오후, 경찰이 참사가 일어났던 곳에 설치했던 폴리스라인을 치운 직후 그 골목길로 가 호텔 옆 계단 주변을 살폈다. 골목길과 연결되는 계단 시작 지점엔 철제 여닫이문이 있고, 그 문에는 ‘직원 외 출입금지’라는 문구가 붙어있다. 계단 위 공간에는 호텔과 연결되는 철문이 있는데 굳게 닫힌 그 문에도 역시 직원 외 출입을 금한다는 표시가 있다.

철문 문고리에는 밖에서 열 수 있게 밧줄이 묶여있다. 11일 현장을 찾았을 때 닫혀있던 그 철문이 참사 당시에도 닫혀있는지는 아직 공식적으로 확인이 안 된다. 이태원 참사를 수사 중인 경찰청 특수본 관계자는 “해밀톤호텔 관계자들을 소환 조사하기 전이라 그 부분은 확인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다만 용산소방서 측은 “그 문을 통해 사람들이 호텔 안으로 피신했다는 기록은 없다”며 잠겨있었을 가능성을 시사했다.

배지터의 현장 영상을 보면 계단 위 공간은 그가 처음 올라갔을 때만 해도 여유가 있었다. 그 철문이 잠겨있지 않았다면 밖으로 열 공간은 있었던 셈이다. 그런데 그 공간까지 미어터져 “그만 올리라고”라는 소리가 나올 때까지 철문이 열리지 않은 것을 볼 때 잠겨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만약 그 철문이 열렸다면 어땠을까.

해밀톤호텔과 바로 옆 도로(골목길)를 잇는 직통계단은 비상시 막힘없는 대피를 위해 설치됐다. 철제 여닫이문이 설치돼 있다(위 사진). 함종선 기자

중앙일보 취재 결과 그 계단은 비상시 막힘없는 대피를 위한 용도였고, 그 철문은 호텔과 계단을 이어주는 문이었다. 용산소방서 관계자는 “건축법상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하는 ‘직통계단’이고, 그와 연결된 철문은 비상문”이라고 말했다. 소방시설설치유지 및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비상문을 폐쇄하거나 잠그는 행위는 불법이다.

지난 2017년 비상문이 잠긴 탓 등으로 인해 29명이 숨진 제천스포츠센터 화제 이후 일선 소방서들이 ‘비상문=우리 모두의 생명문’이라는 스티커를 작성해 대대적인 캠페인을 할 정도로 비상문 관리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는데, 대형건물인 해밀톤호텔의 비상문과 비상계단 관리는 제대로 안 돼 있던 셈이다.

물론 비상문과 직통계단 등은 건물 내부의 사람을 위한 시설물이다. 하지만 ‘안에서 밖으로 밀 때 열리고 밖에서 당길 때 열리는’ 비상문 규정이 제대로 지켜졌고, 밖에서 사람이 문을 당겨 호텔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면 해밀톤호텔의 비상문은 그 골목길의 ‘생명문’이 될 수 있었다는 것이 전문가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직통 계단 입구에 있는 철제 여닫이문도 불법이다. 포털사이트의 로드뷰를 보면 2015년까지는 여닫이문이 없었으나 2017년 이후에는 계속 있다. 소방서 측에서 호텔 철문을 열게 할 순 없었을까. 용산소방서 관계자는 “현장에서 워낙 시급한 상황이어서 그 부분까지는 생각하지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법 규정대로 철문이 열려있었다면 많은 사람이 호텔을 통해 안전하게 밖으로 나올 수 있었을 것이고, 결과적으로 사상자를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함종선 기자 ham.jongs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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