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대화 통한 비핵화 달성은 ‘환상’일까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2022. 11. 13.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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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율의 정치 읽기]
북한이 동해상으로 미상의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고 합동참모본부가 밝힌 11월 9일 오후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관련 뉴스를 보고 있다. (연합뉴스)
인민은 식량난에 허덕이는데, 미사일은 밤낮없이 쏟아붓고 있다. ‘신기한 나라 북한’의 최근 모습이다.

자유아시아방송(RFA) 보도에 따르면, 요즘 북한은 남새(채소)가 없어 김장을 포기하는 가구가 늘고 있다고 한다. 북한은 김치가 가장 중요한 부식이자 식량이다. 북한에서 김장을 못하는 가구가 늘고 있다는 것은 북한의 식량 사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이런 북한이 미사일은 거의 매일 쏴대고 있다. 지난 11월 2일 하루 동안 북한이 쏜 미사일 비용은 1000억원대인 것으로 알려졌다. 브루스 베넷 미국 랜드연구소 선임연구원의 계산이다. 이 금액은 북한의 1년 쌀 수입액과 맞먹는다. 한국국방연구원에 따르면, 2022년 1월 5일부터 6월 5일까지 북한이 발사한 미사일 수는 ICBM을 포함해 26발이다. 발사 비용 합계는 최소 5000억원에서 최대 8000억원에 달한다. 그 이후 지금까지 발사한 미사일을 합하면, 북한의 미사일 발사 비용은 최대 9000억원을 넘을 수 있다. 인민은 굶는데, 굶주림을 충분히 사라지게 할 수 있는 돈을 미사일 발사에 쏟아붓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절대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미국이 북한의 핵 보유를 인정하는 순간, 우리는 물론이고 일본과 대만 등이 앞다퉈 핵을 보유하겠다고 나설 가능성이 농후하다. 하지만 미국이 인정하지 않는다고 북한이 핵을 보유하지 않은 상태로 변하는 것은 아니다.

과거 김대중정부의 대북 정책 핵심은 대북 포용 정책이었다. 햇볕 정책(sunshine policy)이라 불렸던 이 정책은 당시에는 나름 의미가 있었다. 미완성으로 끝나기는 했지만, 대북 포용 정책 덕분에 대한민국 국민은 금강산 관광도 하고, 이후 개성 관광도 하면서, 평화의 중요성을 체감했다. 포용 정책이 갖는 또 다른 의미는 그동안 베일에 싸였던 북한을 실체적으로 ‘알게 됐다’는 사실이다. 북한에도 사람이 살고 있다는 생각이다. 결과적으로 북한에 대한 과도한 증오를 어느 정도 완화시킬 수 있었다. 과도한 증오로 북한을 바라볼 경우, 감정이 이성을 지배하면서 합리적인 대북 정책을 꾸리기 힘들어진다.

때문에 김대중정부의 대북 정책은 현실적이고 합리적이며 냉철한 대북 정책을 수립하기 위한 일종의 초석 역할을 했다. 이후 25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상황은 많이 변했다. 북한은 ‘꾸준히’ 핵 개발을 했고, 그 결과 이제는 핵무기 운반 수단의 마지막 단계인 ICBM까지 개발하고 있다. ICBM은 아직 완성 단계가 아니다. 그러나 개발이 완료되기까지 그리 많은 시간이 소요될 것 같지는 않다.

상황이 변하면 정책도 바뀌어야 한다. 아직도 대북 포용 정책을 주장하는 것은 현실성이 없는 주장이다. 핵 개발 과정에서는 북한에 당근을 제시하면서 핵 개발을 하지 말라고 달랠 수 있지만, 핵무기를 보유한 이후에도 똑같은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은 소용이 없다. 이미 과거 세계 역사가 증명한다. 핵을 포기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흔히 말하는 것이 이른바 ‘우크라이나 방식’과 ‘리비아 방식’이다.

먼저 리비아를 보면 이렇다. 리비아가 핵 개발을 포기한 동기는 몇 가지가 있다. 1988년 스코틀랜드 로커비에서 미국 팬암항공 소속 여객기가 공중 폭파됐다. 여객기 폭파 배후에 리비아가 있다고 미국은 의심했고 미국과 유엔은 대(對)리비아 경제 제재에 돌입했다. 경제 제재 때문에 리비아는 핵 개발에 필요한 자금 확보가 어려워졌다. 이런 와중에 미국은 이라크를 공격했는데, 이는 카다피에게 상당한 두려움을 선사했다. 이런 상황이 맞물려 리비아는 핵 개발을 포함한 대량살상무기(WMD)를 포기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당시 리비아는 핵무기 개발 기술을 겨우 입수한 단계에서 핵을 포기했다는 점이다.

우크라이나는 다르다. 소련이 붕괴될 당시 우크라이나에는 소련이 배치한 핵무기 상당수가 존재했다. 우크라이나가 졸지에 세계 3위의 핵무기 보유국이 됐던 이유다. 핵무기는 통제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미국과 영국, 러시아 등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안전 보장과 경제 지원을 조건으로 핵무기 포기를 요구했다. 결국 우크라이나는 핵무기를 넘겨줬다. 본인들 의지에 따라 핵무기를 개발, 보유한 것이 아니어서 핵을 운용하는 능력이 부족했기 때문에 핵무기 포기를 합리적 선택으로 생각할 수 있는 환경이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경우는 특이하다. 핵무기 6기를 보유했던 남아공은 스스로의 판단에 따라 핵을 포기했다. 제재 해제와 국제 관계 정상화 등 정치적 관점에서 핵을 보유하는 것보다 훨씬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도움을 받아 핵을 개발했다는 사실 자체가 미국과 적대적일 수 없는 입장이었음을 의미한다. 또 남아공 경제에 있어 수출이 매우 중요했기 때문에 제재는 치명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결국 핵을 포기했다.

앞의 사례와 북한을 비교하면 다음과 같은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다. 첫 번째, 북한은 남아공과는 달리 미국과 매우 적대적 관계다. 이는 미국과 신뢰 관계가 형성될 수 없음을 의미한다.

두 번째, 핵 개발 초입에 핵을 포기한 리비아와는 다르게 북한은 이미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

세 번째, 우크라이나와는 다르게 북한은 스스로의 필요 때문에 핵을 개발해 핵무기를 보유하게 됐다.

역으로 생각해보면 미국과 적대적이고, 국제 사회에서 고립되는 것을 감수하면서까지 스스로 원해서 핵을 개발해 핵무기를 보유한 국가가 경제적 대가를 받고 핵을 포기한 사례는 역사상 한 번도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종합해 판단하면, ‘이런 나라들이 경제적 지원을 대가로 핵을 포기했으니, 북한도 잘 달래면 핵을 포기하게 될 것’이라는 판단은 합리적이거나 현실적이지 못하다. 그렇기에 이제부터라도 우리는 ‘한반도 비핵화’에 매달리기보다 ‘확장 억제’에 중점을 두는 외교와 대북 정책에 치중해야 한다. 확장 억제란 동맹국이 핵 공격을 받거나 위협에 노출됐을 때, 미국은 자국 본토가 위협당했을 때 사용하는 핵무기 탑재 투발 수단 등을 동원해 동맹국을 지원한다는 개념이다. 이를 위해 한미연합훈련은 필수적이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점은, 미국은 북한의 핵 포기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하면 한국의 핵 보유 움직임을 차단하는 데 주력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이를 우리가 역으로 이용하면, 핵 보유를 하지 않으면서도 미국 핵의 ‘공유’ 혹은 ‘이용’을 통해 좀 더 확실한 안전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한다.

북한과의 대화는 어떤 상황에서도 필요하다. 하지만 대화를 통해 한반도 비핵화를 이룰 수 있다는 환상은 이제 버려야 한다. 확장 억제가 됐든, 아니면 핵 공유 혹은 자체 핵 보유가 됐든, 핵 전략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공포의 균형(balance of terror)’이다. 이제는 현실을 직시할 때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84호 (2022.11.16~2022.11.22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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