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사람의 DM... 꼭 확인해야 하는 여섯 가지
[송혜림 기자]
▲ '석OO이란 이름의 인스타그램 계정. '석OO'이란 이름의 인스타그램 계정. 그의 사진은 모두 도용된 것으로 모자이크 처리했다. |
ⓒ 송혜림 |
1. '석OO'이란 사람이 DM을 보냈다
지난 9일 오전 11시, '석OO'이란 이름을 가진 사람이 인스타그램 DM(direct massage)를 보냈다. 프로필 사진은 검정 반팔티를 입은 한 동양인 남성의 셀카. 자기 소개란에는 '패션스타일리스트 전문 디자이너로 활동하면서 미국에서 연예인 수트를 만들어 봤습니다'라고 기재돼 있었다.
그의 피드는 뭔가 꺼림칙했다. 그가 올린 27개의 게시글은 단 이틀에 걸쳐 업로드된 것이었다. 사진에 대한 별 다른 코멘트도 없었다. 대부분 자신의 셀카거나 옷 사진이었다. 말투도 이상했다. 마치 파파고(papago)로 돌린 듯 문법이 삐걱댔다. 소울 메이트, 사랑하는 달링, 좋은 친구, 사랑하는 애인 등과 같은 단어도 맥락상 맞지 않게 남발했다. 앞서 다수의 언론 보도와 피해 사례들이 말해주듯, 나 역시 어렵지 않게 그가 범죄 목적으로 내게 접근했다는 걸 눈치챌 수 있었다.
잠자코 들어 본 그의 이야기는 이랬다. '미국에서 디자이너 생활을 한 뒤 최근 한국에 들어와 부산에 정착했다', '연예인 무대 의상도 다수 제작해 봤다', '내가 첫 한국 친구가 되어 줘서 영광이다' 등등.
▲ 자칭 '석OO'과 나눈 대화 목록. 그의 프로필 사진은 도용이기에 모두 모자이크 처리했다. |
ⓒ 인스타그램 |
그렇다면 그의 프로필과 피드 사진 속 남성은 누구일까? 그에게 도용이냐고 묻자 뻔뻔하게 아니라고 둘러댔다. 나는 그의 사진을 캡처해 구글 검색창에 업로드했다. 곧 바로 진짜 '사진 주인'의 SNS 계정이 검색됐다. 실제 주인은 인플루언서였다.
진짜 '사진 주인'에게 도용 사실을 알린 뒤, 도용 계정의 팔로워 목록에 있는 일부 여성들에게도 피해 사실이 있었는지 물었다. 한 사람은 그가 카카오톡 대화에서도 사랑한다, 만나고 싶다 등 노골적인 구애를 해 차단했다고 한다. 전형적인 '로맨스 스캠' 멘트들이다.
2. '석OO' 너, 한 명이 아니구나?
'석OO'. 나는 그의 사기 행적을 본격적으로 되 밟아 보기로 했다.
▲ 수많은 '석OO'들. 이름은 같을 수 있다. 그러나 국가와 직업, 하는 일마저 같으면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
ⓒ 인스타그램 갈무리 |
▲ '석OO'이란 이름을 가진 인스타그램 아이디. 해당 리스트에 있는 모든 석OO들은 자기소개가 동일했다. |
ⓒ 인스타그램 갈무리 |
인스타그램에 '석OO'이란 이름을 치자 무수히 많은 계정들이 검색됐다. 이들은 대부분 비슷한 멘트의 자기 소개를 써 놓고 있었다. 이들의 팔로워 목록을 살펴보니 한국 여성 뿐만 아니라 일본, 미국 등의 타 국가 여성들도 여럿이었다. 그들의 계정을 팔로잉하는 사람들의 수도 적지 않았다.
이들이 도용한 사진은 한 사람의 것만이 아니었다. 족히 10명은 넘어 보였다. 사진뿐만 아니라 영상도 녹화해 똑같이 업로드한 계정도 있었다. 사진 속 인물들은 자신의 얼굴이 무단으로 도용됐다는 사실도 모를 거란 생각에 안타까웠다.
그렇다면 이 도용 계정을 운영하는 사람은 한 사람일까? 나는 이 도용 계정들 중 세 사람을 추가로 컨택했다. 미국을 떠나 부산에 정착했다는 스토리는 대개 비슷했다. 그러나 강아지들을 키운다든지, 할머니와 같이 산다든지 등 세부 스토리들은 모두 달랐다. 이어 나는 라인 또는 카카오 보이스톡을 통해 이들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놀랍게도 세 사람 모두 다른 사람이었다. 개중엔 아시아권 억양도 있었고, 괜찮은 수준의 영어를 구사하는 사람도 있었다. 영어가 유창한 사람일 수록 팔로잉 수도 많았다.
나는 그들에게 '부산에 눈이 내리나', '서울까지 버스 30분이면 오지 않냐' 등의 질문을 던졌다. 그러면 그들은 연신 '그렇다'며 황당한 답을 내놨다. 그들은 당연히 부산에 있지도 않았다.
3. '석OO', 기존 계정 없애고 새 계정을 만들다
앞서 내게 맨 처음 말을 걸었던 '석OO'이 기존 계정을 없애고 새 계정을 만들었다. 새 계정치곤 팔로워가 많았다. 무려 85명이었다. 나는 그의 팔로워 목록을 훑어봤다. 그가 팔로워한 계정들도 심상찮았다. 팔로워 수에 비해 팔로잉 수가 비정상적으로 많았다. 그들의 피드에는 의미를 알 수 없는 사진들만 일관성 없게 업로드돼 있었다. 이들이 올린 사진의 업로드 일자는 대부분 작년 하반기에 멈춰 있었으며, 그 중 일부만 '석OO'처럼 최근 하루 이틀에 걸쳐 사진을 대량으로 업로드했다.
'석OO'의 카카오톡 아이디(Al****)를 비롯해 이들 대부분이 힌디어를 쓰는 정황도 포착됐다. 물론 이들의 정체는 아직 미지수다. 누군가의 개인 정보가 팔려 만들어진 피해 계정일 수도 있다. 다만 '미국에서 와 부산에 사는 디자이너', 이 거짓 테마를 갖고 사기 행각을 벌이는 피싱 조직이 현재 어디서 활개치는지 조금이라도 각이 잡히길 바라는 마음이다.
▲ 그의 프로필 사진은 도용 사진임을 확인 하고 모자이크 처리했다. |
ⓒ 라인 갈무리 |
2주 전 내게 'jeong *****'이란 이름의 남성이 석OO과 동일한 방식으로 접근해 온 적이 있다. 그는 자신이 미얀마 UN에서 일하는 엔지니어라고 소개했다. 당시엔 피싱 사기를 의심하고 응답하지 않았으나, 이번 취재를 하며 그에게도 먼저 연락을 취했다. 그의 프로필 사진이 한 한국인 CEO의 사진을 도용한 것이란 사실도 확인했다.
나는 그와 라인(LINE)으로 보이스 메시지를 나누며 그의 근무처에 관해 집요히 캐물었다. 그 곳에서 일하는 자가 아니란 걸 알기에 실언이 튀어 나오길 노렸다.
기자 : "너네 기관에 박민혜라는 한국인이 7년 간 일했는데. 그 사람을 어떻게 몰라?"
이에 그는 크게 당황하더니 불쑥 "내가 아는 한국인은 내 보스(boss)와 너 말곤 없어"라고 말했다. 나는 그가 실언을 했다고 확신하고 그의 보스에 관해 물었다. 그는 자신의 보스도 미얀마에 있으며 현장에서 만날 때만 대화를 나누기에 다른 연락 수단은 없다고 했다.
그 후에도 그의 보스에 관해 집요하게 물었으나, 그는 다른 주제를 꺼내며 회피했다. 그의 말이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거짓인지 알 길은 없으나, 다른 내국인의 존재가 대화 중 튀어나온 건 이 일이 개인적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의심을 하게 한다.
5. 절대로 이들에게 '답'하지 마세요
나이지리아에서 시작된 일명 '로맨스 스캠'. 처음엔 영어권 국가에서 주로 벌어졌지만 번역 어플리케이션의 발달로 아시아까지 우후죽순 확대되고 있다. 로맨스 스캠은 타인의 마음을 이용해 돈을 갈취하거나 몸캠 피싱을 한다는 점에서 범죄의 극악성이 크다.
<아주경제> 보도에 따르면, 최근 4년간(2018년 1월~2021년 11월) 국가정보원 국제범죄정보센터 접수된 로맨스스캠 신고는 총 174건으로 피해액은 총 42억 원에 달했다. 이 중 지난해 피해액이 무려 20억7000만원으로 전년(3억7000만원) 대비 5배 이상 급증한 수치다. 지난해 11월 서울경찰청은 SNS에서 신분을 속인 뒤 친분을 쌓아 10여 억 원을 받아서 가로챈 '로맨스 스캠' 국제 사기조직 일당 14명을 검거하기도 했다.
지금 이 순간도 '석OO'의 팔로워 수는 늘고 있다. 특히 미성년자들의 경우 피싱 여부를 판별하기가 어렵다는 점에서 더욱 위험하다. 만일 모르는 누군가가 당신에게 DM을 보냈다면 아래 사항부터 반드시 체크해보길 바란다.
1. 사진이 도용됐는가. 구글 검색창의 사진 찾기 기능을 통해 쉽게 판별할 수 있다.
2. 그들의 말투가 번역기를 돌린 듯 부자연스러운가.
3. 자신이 미국에서 자랐다고 해도 영어권 국가 사람이 아닐 경우 영어 문법을 틀린다. 영어와 한국어를 동시에 시켜보는 게 좋다.
4. 사랑한다, 보고싶다 등의 애정 표현을 과하게 사용한다면 의심부터 하라.
5. 돈을 요구하거나 영상 통화를 건다면 바로 차단하라.
6. 그 사람 피드에 올려 진 사진들의 업로드 일자가 모두 똑같거나, 그의 팔로잉 목록에 여성 또는 남자만 있는 등 수상한 느낌이 든다면 의심부터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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