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거지 알바' 고백한 배우, 오히려 응원하게 되네요

서인희 2022. 11. 13.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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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지 않아도... 보이는 나에서 자유로워 지는 삶을 찾아서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서인희 기자]

 최근 여러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는 최강희씨
ⓒ 위라클 유튜브 캡처
얼마 전 배우 최강희가 설거지 아르바이트를 했다는 내용의 기사를 보았습니다. 최강희는 30∙40대라면 모를 수 없을 만큼 유명한 연예인입니다. 기사에 나온 영상을 찾아서 그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연예인이 아니라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시도해 보고 싶었다는 이야기로 시작해서 본인이 겪었던 우울증까지 밝은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습니다. 전성기 때처럼 화려하지 않아도 단단해 보이는 그의 모습은 저의 시간과 겹쳐졌습니다.

내 몸 하나로 할 수 있는 일

그동안은 주로 머리를 쓰는 일을 하며 살았습니다. 수시로 새로운 보고서와 논문, 책을 읽고 이상이 현실에 어떻게 가 닿을 수 있을지 고민하는 일에 큰 가치와 기쁨을 느꼈습니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고민은 치열했고, 기획은 설렜으며 실행은 늘 다음 숙제를 남기는 시간의 반복이었습니다. 당연하게도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 한 발 물러서 바라볼 틈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연료가 떨어진 차가 덜컹이는 듯 불안정한 일상 끝에서 완전히 멈춘 것이 지난여름이었습니다. 똑똑하고 대단한 사람들이 가득한 사회에서 낙오자가 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마다의 '뜻'을 위해 움직이는 치열함 속에는 각자의 이용 가치와 계산이 가득합니다. 필요에 의한 만남과 헤어짐도 넘쳐납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그저 마음이 많이 아파지고 나서야 저는 그 끝없는 반복이 맞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울증과 공황장애, PTSD 진단을 모두 받고 먹던 약. 10알이 넘는 약을 먹고도 숨을 편히 쉬지 못하고 잠들지 못했었다.
ⓒ 서인희
사람에 대한 공포가 심해지고 공황상태가 언제 올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늘어나니 집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갈 수 없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평화로운 일상이었지만 때때로 이 두려움이 활력을 집어삼킬지 모른다는 또 다른 불안도 생겼습니다.

조금 움직여야겠다고 느끼던 어느 날 '사람에게 곧바로 영향을 주지 않는 일, 복잡한 관계로 얽혀야 하거나 상처를 주고받지 않는 일을 해봐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집에서 10분이면 걸어갈 수 있는 거리의 음식점 주방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몸을 움직여 땀 흘리는 일을 하는 것이 오랜만이라 무척 낯설었지만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이었습니다. 전혀 모르는 타인을 위해 정성껏 음식을 만들고 식기를 깨끗하게 닦는 일은 사람에 대한 두려움을 줄여주었습니다.

약 없이도 잠을 자고 맑은 머리로 일어납니다. 매일 나에게 집중하니 숨쉬기 어려워질 상황을 만들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필요와 기대'가 없는 사회생활이 사람에게서 받은 상처를 아물게 할 수도 있음을 느낍니다.

완전히 소진되어 멈추었을 때 그 상태 그대로 머무르는 시간은 분명 필요합니다. 그러는 동안 다시 움직일 때 무엇을 중심에 두고 싶은지 실마리를 찾을 수도 있습니다. 그 중심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멈춤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같다고 생각합니다.

찬란하지 않아도 괜찮은, 보통으로 살기

죽는 순간까지 배우면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그 배움의 과정에서 '나'를 버리거나 바꾸는 일들이 흔쾌하거나 유쾌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종종 스스로를 속이기도 하면서 지냈습니다. 나의 가치관은 틀리지 않았고 이 방향이 맞다고 믿으면서요.

굉장히 뛰어난 사람은 아니더라도 내 자리에서 조금 더 멋지고 좀 더 대단한, 혹은 영향력도 있고 변화를 만들어가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사회에 이로운 일을 하며 타인에게 인정받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크고 대단한 일들 앞에서 작은 불의는 참고 넘기는 선택이 가능하지 않았습니다. 큰 변화를 위해 일상의 작은 부당함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상황들이 불편했습니다. 여기에 맞고 틀림은 없습니다. 그저 개인이 무엇을 더 중요시 하느냐의 다름일 뿐입니다.

다만 그 시간을 살아보고 저는, 대단하게 멋진 일을 하는 사람이 되기보다는 바로 옆 평범한 사람들에게 만만하고 편안한 사람이 되고 싶어졌습니다. 세상에는 그런 사람들도 분명 필요하다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Love yourself. 직장에 다니는 동안도 저런 메시지를 늘 지니고 있었지만, 그렇게 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 서인희
단순한 일상에도 열정은 가능합니다. 그동안 하던 일을 멈추고 내 몸 하나로 할 수 있는 일을 하니, 이전의 그것만이 전부는 아님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오히려 그 자리에서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을 더 응원하게 됩니다.

어쩌면 설거지를 했다는 배우 최강희도 비슷한 생각을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더 빛나거나 더 많은 영향력을 가진 '대단한' 혹은 '훌륭한' 사람이 아니어도 괜찮다는 생각 말입니다. 나의 가치는 타인의 인정으로만 결정되는 것은 아니니까요. 바로 옆에 있는 한 사람을 다정하게 대하는 것으로도 세상은 느리지만 분명하게 나아질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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