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호영 '이태원 국조' 갈림길…정계 떠도는 2020년 트라우마

성지원 2022. 11. 13.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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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왼쪽)와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10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대화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실시 여부를 놓고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갈림길 앞에 섰다. 대통령실과 친윤계가 더불어민주당과의 국정조사 협상 자체에 반대하는 상황에서 무엇이 실리를 챙길 수 있는지를 놓고 고민에 빠진 모습이다.

주 원내대표는 14일 오전 3선 이상 중진 의원들과 간담회를 갖고 국정조사 문제에 관한 의견을 듣는다. 더불어민주당·정의당·기본소득당 등 야 3당이 국정조사 요구서를 국회에 제출한 가운데 이재명 대표 등 민주당 지도부가 지난 11일 국정조사와 특검 추진을 요구하는 범국민 서명운동에 돌입하자 당내 의견 수렴을 시작한 것이다. 공식적으로는 “국정조사 절대 불가” 입장을 유지하고 있는 여당이지만 야 3당이 의석수를 앞세워 강행 처리할 수 있는 만큼 중진들 의견을 들어보자는 취지다.

현재 여권의 밑바닥 기류는 크게 두 갈래로 나뉘어 있다.

친윤계는 강경하다. 주 원내대표와 함께 당내 투톱인 정진석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10일 민주당의 국정조사 요구에 대해 “의회주의를 볼모로 한 이재명 대표 살리기에 불과하다”고 직격했다. 장동혁 원내대변인도 13일 논평에서 민주당의 서명운동에 대해 “(국회 의석) 169석으로는 이 대표를 지킬 힘이 부족하자 국민들까지 방탄에 이용하고자 한다는 걸 국민들은 다 알고 있다”고 비판했다.

친윤계는 전략적으로도 야 3당의 강행 처리가 유리하다고 보고 있다. 재선 의원은 “압수수색 권한도 없는 국정조사로 이태원 참사를 정쟁화하는 건 애먼 사람들을 제물로 삼아 이 대표에 대한 수사를 막겠다는 것”이라며 “민주당이 일방 통과를 시키면 그대로 두는 게 맞다”고 말했다. 또 다른 국민의힘 관계자는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긴급 현안질의 때도 별로 새로 나오는 게 없지 않았느냐”며 “민주당이 국정조사를 강행하면 오히려 민주당에 역풍이 불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비윤계에선 “여론을 살펴보고 챙길 건 챙겨야 한다”는 신중 기류도 적지 않다. 한 중진 의원은 “현행법에 따르면 국정조사에 참여하기를 거부하는 교섭단체의 의원은 조사위에서 제외할 수 있다”며 “우리도 여론을 잘 살펴보고 참여 여부를 판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사위에 참여하지 않을 경우 민주당의 일방적인 여론전에 끌려다닐 수도 있다는 우려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과 윤희근 경찰청장, 김광호 서울경찰청장, 박희영 용산구청장 등이 국정조사장에 끌려나와 여당 의원의 도움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 야당으로부터 일방적 공격을 받으면 ‘발언 실수’ 등 논란이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협상에 임해야 국정조사 대상에서 대통령실을 제외할 수 있는 현실적 계산도 있다. 초선 의원은 “협상이 시작되면 조사범위라도 협상하는 게 맞지 않느냐”고 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1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이태원 사고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 참석해 한덕수 국무총리의 발언을 듣고 있다. 이 장관은 11일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누군들 폼 나게 사표 던지고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겠나"라고 말해 야당의 비판을 받았다. 뉴시스


주 원내대표의 ‘트라우마’도 협상 전면 거부를 어렵게 만드는 현실적 요인이다. 여야는 2020년 21대 국회 개원 협상 당시 법제사법위원장 자리를 놓고 격한 갈등을 벌였고, 결국 미래통합당(국민의힘)을 뺀 채 개원하면서 모든 상임위원장 자리를 민주당이 가져가는 결과를 낳았다. 당시 원내대표는 주 원내대표였다. 협상 당시 당내에선 “법사위원장을 가져오지 못할 바에는 차라리 상임위원장을 다 내주자”는 여론이 우세했지만, 실제 그런 일이 벌어지자 당내에선 “주호영이 협상을 망쳤다”는 여론이 팽배했다. 지난 9월 주 원내대표가 다시 원내 사령탑에 도전할 때도 중진 의원을 중심으로 “주호영은 협상을 망쳤던 장본인”이란 반대 여론이 형성되기도 했다.

그렇다고 협상에 응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이미 친윤계 의원들은 “용산에서 불쾌해 한다”며 국정조사 도입 가능성을 열어뒀던 주 원내대표를 공개적으로 직격하기도 했다.

이태원 참사와 관련한 비판 여론도 부담이다. 한국갤럽이 8~10일에 걸쳐 전국 성인남녀 100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정부의 사태 수습 및 대응이 ‘적절하지 않다’고 평가한 비율이 70%로, ‘적절하다(20%)’보다 크게 우세한 것으로 나타났다. 3선 의원은 “민심 관리가 중요한데, 대통령실 수석들을 둘러싼 해프닝이나 행정안전부 장관의 발언 등으로 여론이 나빠지는 게 우리 내부에서도 우려되는 지점”이라고 토로했다.

이 때문에 당내에선 “선(先) 경찰수사-후(後) 국정조사” 등 ‘조건부 도입론’도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민주당이 ‘국민의힘이 진상규명을 회피한다’는 주장을 펼칠 경우에 대비해 국정조사를 무조건 반대하는 게 아니라 수사가 미진할 경우 국정조사를 도입하자는 ‘역(逆) 여론전’을 펼치자는 의견이다. 안철수 의원은 지난 10일 방송 인터뷰에서 “경찰 수사가 진행 중이니 결과를 보고 불충분하면 국정조사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른 중진 의원도 “경찰 수사 결과가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으면 오히려 우리가 나서서 국정조사를 해서 남은 부분을 밝혀내자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성지원 기자 sung.ji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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