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윤이상 콩쿠르 16세 우승 한재민 “연습해야 자유로워져"

2022. 11. 13.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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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에네스쿠 콩쿠르 우승, 제네바 콩쿠르 3위
윤이상 첼로 협주곡으로 윤이상 콩쿠르 첫 우승
“요요 마 젊은 시절 같다” 유럽 명문 기획사와 계약
무대에서 자유로운 원동력은 음악과 첼로 사랑
올해 윤이상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한 16세 소년 켈리스트 한재민.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작년 에네스쿠 콩쿠르 최연소 우승, 제네바 콩쿠르 3위, 올해 윤이상 콩쿠르 우승. 2006년생 한재민(16)은 현재 세계 어떤 첼리스트와 비교해도 빛나는 커리어를 쌓는 중이다. 지난 5일 폐막한 윤이상 콩쿠르에서는 우승뿐 아니라 청중상인 유네스코음악창의도시특별상과 재능 있는 한국인 참가자에게 주어지는 박성용영재특별상도 수상했다. 최근 서울 상암동의 스튜디오에서 만난 한재민은 2020년 처음 봤을 때보다 목소리도 풍채도 훨씬 어른스러워졌다. 아직 10대 중반의 청소년인데 ‘성숙’이란 단어가 떠올랐다.

“2020년 8월부터 2년 넘는 시간 동안 제 뇌리에는 ‘콩쿠르’란 말이 똬리를 틀고 있었어요. 이젠 한 시름 놓고 조금 더 마음 편하게 음악을 할 수 있다는 게 정말 기쁩니다.”

올해 윤이상 콩쿠르는 27개국 146명이 지원했다. 한재민은 한국의 정우찬·김덕용, 프랑스의 플로리안 퐁스와 함께 결선에 올랐다. 크리스티안 바스케스가 지휘하는 통영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는 결선 지정곡은 차이콥스키 ‘로코코 주제에 의한 변주곡’, 윤이상 협주곡, 쇼스타코비치(1번), 드보르자크, 슈만 협주곡 중 한 곡이었다. 윤이상 협주곡을 선택한 한재민은 대회 역사상 이 곡으로 우승한 첫 연주자로 기록됐다.

한재민은 윤이상 곡으로 윤이상 콩쿠르에서 우승한 첫 연주자라는 기록도 세웠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첼로를 사랑하셨던 윤이상 선생님의 인생이 녹아있는 곡입니다. 옌스 페터 마인츠의 연주(카프리치오)를 듣고 좋아서 악보를 봤더니, 연주 가능한 기교인가 싶을 정도로 쉬운 패시지가 없고 육체적으로 이 곡을 끝까지 마칠 수 있을까 했죠. 결선 때 현도 세 번이나 끊어졌어요. 연주 마치고 따님인 윤정 선생님이 오셔서 눈물을 흘리시면서 아버지의 슬픈 감정이 녹아있는 부분을 잘 표현했다며 감사하다 하셨죠.” 한재민은 “악보 마지막 페이지의 음이 솔샤프(G#)다. 라(A)가 이른바 ‘천상계’인데 끝내 거기에 도달하지 못한 윤이상 선생님의 아픔을 느끼며 몰입할 수 있었다”며 아직도 이 곡에 푹 빠져있다고 했다.

한재민은 원주 출신이다. 부모님이 모두 플루트를 전공한 음악가족이다. 피아노와 바이올린를 어머니 후배에게 배웠다. 그는 “집에선 늘 플루트의 고음을 들을 수 있었다. 첼로의 저음을 좋아했던 건 그 반대급부였다”고 했다. 5세 때 시작한 첼로는 그에게 날개였다. 8세 때 원주시향과 협연했고, 국내 콩쿠르들에 이어 헝가리 다비드 포퍼 콩쿠르와 독일 도차우어 콩쿠르에서 잇달아 우승했다. 그는 “첼로에서 내가 내고 싶은 소리는 어떻게든 모두 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재능을 타고났음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13~14세 때 고비를 겪었다고 했다. 잘한다고 하니까 우쭐했었는데 어느 순간 배워야 할 게 많아지고 나이도 먹고 곡 수준이 높아지니 한계에 부닥친 것.

“그때 좀 더 노력하면 될 건데, 내가 못하는 건가, 다른 일 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죠. 그 뒤로 연습을 엄청나게 많이 하며 이겨냈습니다.” 재능이 아무리 뛰어나도 실력을 좌우하는 연습 없이는 자유로워질 수 없다고 한재민은 말했다.

그는 콩쿠르 직전 자신의 연주에 특히 신경을 쓰는 편이다. 경연 때 심사위원의 취향과 맞아야 유리하기 때문이다. 이번 콩쿠르 전 리사이틀에서도 브람스 소나타 연주가 가볍고 급한 느낌이라는 의견을 서너 명으로부터 들었다. 그래서 콩쿠르 가기 전 레슨 때 평소와 달리 곡을 묵직하게 만들어서 갔다. 그의 연주를 들은 스승 이강호 교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좋은 음악은 너 자신을 설득시킬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 충고에 한재민의 마음은 한결 가뿐해졌다. 원주로 돌아가는 길에 ‘콩쿠르든 연주든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하는 게 맞다. 괜히 눈치 보거나 흔들리지 말아야겠다’고 결심했다. 이는 우승으로 이어졌다.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2학년에 재학 중인 한재민의 일과는 단순하다. 수업과 식사, 연습으로 채워져 있다. 아침에 수업 듣고 동기들과 점심 먹고 연습하다가 오후 수업 듣고 저녁 먹고 밤에 연습한다. ‘벼락치기 스타일’이라 콩쿠르가 다가오면 평소 너덧 시간 하던 연습이 8시간, 10시간으로 늘어난다. 밤 연습이 새벽까지 이어지기 일쑤다.

지난 5일 폐막한 윤이상 콩쿠르 경연 장면. 한재민은 "음악은 머리와 가슴으로 하는 것"이라고 했다. 사진 통영국제음악재단


“내가 할 일은 생각과 느낌을 첼로로 잘 전달하는 거죠. 음악은 머리와 가슴으로 합니다. 기교는 기본이고요. 기교가 모자라 연주에 방해되면 안 되겠죠. 아이디어, 운궁과 표현을 만들어 내는 것도 연습의 일부입니다. 생각하다가 막히면 선생님께 도움을 받죠.”

한재민은 마음이 잘 맞아서 늘 함께 연주하고 싶은 피아니스트로 김선욱과 임윤찬을 들었다.

“선욱이 형 연주를 참 좋아합니다. 느린 악구나 피아노로 노래하는 부분은 숨을 못 쉴 정도로 감동적입니다. 선욱이 형의 음악을 대하는 진지한 태도에서 영감을 받아요. 윤찬이 형과는 올해 1월에 함께했던 연주도 그랬는데, 음악적으로 통하는 게 있어요. 서로 말을 안 해도 연주가 잘 맞습니다.”

한재민은 지난 5월 런던에서 기획사인 KD슈미트와 계약했다. 조성진을 비롯해 그리고리 소콜로프, 안드리스 넬손스, 아우구스틴 하델리히 등 화려한 로스터(명단)를 자랑하는 유럽 명문 매니지먼트다. 코닐리아 KD슈미트 대표는 한재민이 쇼스타코비치 협주곡 1번을 연주하는 영상을 보고 “요요 마의 젊은 시절을 보는 것 같았다”면서 앞으로의 활약을 기대했다.

에네스쿠 콩쿠르 우승 직후 한재민은 “나갈 수 있는 콩쿠르는 모두 나가고 싶다”고 밝혔었다. 그런데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다고 했다. “2년 동안 콩쿠르만 준비하다 보니 힘들더군요. 연습하면서 압박감이 대단했어요. 이제 콩쿠르는 잠정 휴무입니다. 욕심이 없어졌어요. 사람도 만나고 운동도 하고 영화도 보면서 내 연주에 제대로 집중할 생각입니다.”

첼로와 함께 달려온 10대 청소년으로서 평범한 또래의 친구들이 부럽지는 않을까. 저마다 길이 다르고 서로 부러워하는 점이 있을 거라 답했다. 후회는 없다. 무엇보다 첼로 연주하는 걸 좋아하고 음악이 좋으니까.

첼리스트 한재민은 "공연 전에는 떨리지만 무대에 오르면 자유로워진다"고 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무대 체질로 유명한 한재민이지만 “공연 전엔 떨린다”고 고백했다. 그러면서도 무대에 나가면 훨씬 더 자유로워진다고도 했다. “무대에서 자유로운 원동력은 음악이죠. 연주하는 게 좋으니까 아드레날린이 발산됩니다. 무대 위 내 모습이 어떤지는 전혀 몰라요. 그걸 신경 쓰는 것 자체가 연주에 방해되니까요.”

한재민은 오는 12월 베를린에서 동영상 촬영과 함께 음반사 도이치그라모폰에서 디지털 싱글을 발표할 예정이다. 곡은 미정으로 내년에 공개될 젊은 연주자들의 프로젝트다. 내년 4월에는 정주영이 지휘하는 원주시향과 협연하고 뉴질랜드 등 해외 연주를 소화한 뒤 통영국제음악제 봄 시즌 실내악과 리사이틀로 국내 팬들을 만난다.

류태형 객원기자・음악칼럼니스트 ryu.taehyung@joongang.co.kr

류태형 객원기자・음악칼럼니스트 ryu.taeh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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