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승섭의 금융라이트]정부는 어떻게 금융시장을 안정시킬까
한 달 만에 나온 '50조원 플러스 알파' 지원책
4일 뒤에는 한국은행서 6조 규모 등 우회지원
단기자금시장 여전히 불안하자 2.8조 대책 또
편집자주 - 금융은 어렵습니다. 알쏭달쏭한 용어와 복잡한 뒷이야기들이 마구 얽혀있습니다. 하나의 단어를 알기 위해 수십개의 개념을 익혀야 할 때도 있죠. 그런데도 금융은 중요합니다. 자금 운용의 철학을 이해하고, 돈의 흐름을 꾸준히 따라가려면 금융 상식이 밑바탕에 깔려있어야 합니다. 이에 아시아경제가 매주 하나씩 금융이슈를 선정해 아주 쉬운 말로 풀어 전달합니다. 금융을 전혀 몰라도 곧바로 이해할 수 있는 ‘가벼운’ 이야기로 금융에 환한 ‘불’을 켜드립니다.
[아시아경제 송승섭 기자] ‘강원도 레고랜드’ 사태와 ‘보험업계 콜옵션 미행사’로 국내 금융시장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참고기사: 김진태와 레고랜드는 어떻게 금융시장을 흔들었나, 보험업계 신종자본증권 '콜옵션' 미행사…불안한 금융시장] 정부와 금융당국은 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해 잇따른 조치를 내놓고 있는데요. 어려운 용어 때문에 어떤 대책인지 쉽게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정부가 구상하는 시장안정대책은 어떤 걸까요?
굵직한 첫 대책은 지난달 23일 나왔습니다. 김진태 강원도지사가 레고랜드 사업을 담당하는 중도개발공사(GJC)에 대해 법원에 회생신청을 하겠다고 밝힌 지 약 한 달 만에 나왔습니다. 그 사이 국가가 보증을 선 어음을 제대로 돌려받지 못하게 된 투자자들은 지갑을 닫아버렸죠. 투자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기업들의 자금 확보가 어려워집니다. 그래서 정부와 금융당국이 유동성을 확보하기 위한 대책을 만든 거죠.
당시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김주현 금융위원장,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최상목 대통령실 경제수석 등 범 경제·금융관료 수장들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그렇게 열린 ‘비상 거시경제금융회의’에서 유동성 공급 프로그램이 50조원 플러스알파(+α)로 확대 운영하겠다는 계획이 발표됐습니다.
우선 ‘채권시장안정펀드(채안펀드)’ 20조원이 투입됩니다. 채안펀드는 2008년 11월 리먼브라더스 사태로 처음 생겼습니다. 기업들이 자금난을 겪자 91개 금융사가 돈을 각출해 10조원을 조성했죠. 당시 시장에서 팔리지 않는 기업들의 채권이나 어음을 사들여 자금을 공급했습니다. 2020년 코로나19로 금융시장이 요동치자 20조원이 채안펀드를 다시 만들었는데, 이때 쓰고 남은 돈이 1조6000억원입니다. 정부는 상황이 급박한 만큼 일단 이 1조6000억원을 활용해 채권과 어음의 매입을 시작했습니다.
캐피털콜(Capital Call)도 이달 초부터 본격적으로 집행하고 필요하면 추가 조성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캐피털콜은 ‘필요할 때마다 돈을 꺼내 쓰는’ 투자방식입니다. 목표한 투자자금을 다 모은 뒤 투자금액을 집행하지 않습니다. 투자자금의 일부만 모아놓고 투자를 한 뒤, 추가적인 투자수요가 생기면 그때그때 바로 집행하는 거죠. 채안펀드가 캐피털콜 방식으로 운용되고요.
‘회사채·기업어음(CP) 매입 프로그램’도 8조원에서 16조원으로 확대 운용합니다. 지난달 12일 기존 6조원에서 2조원으로 늘린 지 11일 만에 나온 결정입니다. 회사채·CP 매입프로그램은 2020년3월 코로나19가 시작되면서 만들어졌습니다. 채안펀드가 민간금융사의 각출로 이뤄졌다면, 회사채·CP 매입 프로그램은 정책금융기관이 중심입니다. 산업은행과 신용보증기금, IBK기업은행이 참여합니다.
회사채·CP 매입 프로그램은 지원기관과 방식에 따라 여러 세부 프로그램으로 나뉩니다. 산은·기은의 매입 프로그램은 5조5000억원에서 10조원으로 늘었습니다. 또 기존에는 일반기업의 CP만 사들였지만, 시장안정을 위해 금융회사가 발행한 것도 매입하기로 했습니다. 신용보증기금은 기존 프로그램 예산 6000억원에서 별도로 5조원을 추가 확보합니다. 중소·중견기업의 회사채를 집중적으로 사들이죠. 시장상황을 고려해 건설사나 여신전문금융회사 지원도 추진합니다.
유동성이 부족한 증권사에도 3조원을 지원합니다. 증권사들은 프로젝트파이낸싱(PF)-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에 많은 투자를 했습니다. 강원도 레고랜드 건설에 돈을 빌려준 것도 증권사였고요, 그 방식이 PF-ABCP였습니다. 그런데 돈을 돌려받지 못하면서 일부 증권사들이 일시적인 유동성 부족사태에 직면했습니다. 이러한 증권사에 대해서는 한국증권금융이 자체 재원으로 유동성을 지원해줍니다.
지원 방식은 증권사와의 환매조건부채권(RP) 거래, 증권담보대출 등입니다. 한마디로 특정한 조건을 걸고 돈을 빌려주겠다는 겁니다. 다만 증권사에 자금을 지원하면 도덕적 해이 논란이 빚어질 수 있습니다. 리스크가 큰 방식으로 수익을 잘 올리다가 위기가 오니 국가 지원을 받는 모양새니까요. 그래서 돈을 빌려줄 때도 시장금리보다 높게 금리를 책정합니다. 지원할 때도 증권사의 여력과 긴급성을 따지고요.
주택도시보증공사(HUG)·주택금융공사 사업자 보증지원은 10조원 규모로 이뤄집니다. 부동산 PF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우량한 프로젝트에도 돈을 빌려주려 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에 주택도시보증공사와 주금공이 각 5조원씩 보증을 서주겠다는 거죠.
4일 뒤에는 한국은행에서 대책이 나왔습니다. 총 6조원의 유동성을 공급하기로 했는데요. 증권사 등의 환매조건부채권(RP)을 매입하는 방식입니다. 환매조건부채권은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미리 정해둔 조건으로 다시 매도(매수)하는 금융상품입니다. 한은은 RP를 사고팔면서 유동성을 조절합니다. 한은이 RP를 사고 돈을 증권사들에게 빌려주면 시장에 자연스럽게 유동성이 늘어나게 되죠.
각종 우회지원 조치도 내놨습니다. 은행들도 한은에서 돈을 빌리는데 이때 담보를 맡깁니다. 담보는 보통 국채나 정부가 보증한 채권만 인정되고요. 하지만 담보로 인정해주는 채권을 은행채권과 공공기관채권으로 확대합니다. 더 많은 채권을 맡기고 더 많은 돈을 빌려올 수 있게 된 거죠. 한은은 이 조치로 은행들이 최대 29조원의 유동성 자산규모를 추가확보 할 수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금융유관기관의 대책 발표로 채권시장은 다소 안정을 찾았지만 단기자금시장은 여전히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문제가 됐던 PF-ABCP는 만기가 1~3개월로 짧습니다. 계속 새로 어음을 발행하면서 자금을 상환해야 하는데, 중·소형 업체들이 차환에 어려움을 겪고 있죠. 영세한 업체들의 PF-ABCP는 약 1조5000억원 정도로 많은 파이를 차지하진 않지만, 등급이 A2로 대형증권사보다(보통 A1) 낮습니다.
그래서 금융당국은 지난 11일 다시 대책을 발표했습니다. PF-ABCP 문제해결에 집중한 지원방안이죠. 규모는 2조8000억원 플러스 알파(α)입니다. 건설사가 보증하는 PF-ABCP는 산은·신보의 CP 매입 프로그램을 활용합니다. 산은이 14일 별도 기구를 설립하고, 건설사가 보증한 PF-ABCP를 사들입니다. 신보는 매입금액의 80%를 보증하고요. 매입대상은 A2등급의 PF-ABCP입니다. 기업별 한도는 중견기업 최대 1050억원, 대기업 최대 1500억원으로 정했습니다.
증권사의 경우 대형 증권사들이 출연해 만든 이른바 ‘제2채안펀드’에 산은과 한국증권금융이 자금을 보탰습니다. 총 1조8000억원의 자금을 조성하고 A2등급의 PF-ABCP를 우선 매입합니다.
송승섭 기자 tmdtjq850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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