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점심시간] 대구에서 찹쌀수제비 주문하신 분, 놀라지 마세요
다 먹고 살려고 하는 일! 시민기자들이 '점심시간'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씁니다. <편집자말>
[김지영 기자]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니 생각나는 음식이 있다. 사람도 첫 인상이 강렬한 사람이 있듯이 음식도 마찬가지다. 나에게는 찹쌀 수제비가 그렇다. 처음 찹쌀 수제비를 먹게 됐던 날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대구로 처음 이사 온 이십여 년 전, 엄마와 찜질방에 갔다가 출출해져서 시킨 음식이었다.
'찹쌀' 수제비라는 음식이 있길래 '내가 좋아하는 수제비인데 반죽에 찹쌀이 들어갔나 보네...' 하면서 별 생각 없이 시켰다. 식혜도 하나 시켜 놓고 음식이 나오길 기다리며 엄마랑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사장님이 내 앞에 미역국을 한 사발 두고 가시는 거다.
생긴 것도 독특한 미역국이었다. 시장에서 칼국수 시키면 나오는 것 같은 은색 그릇에 미역국이 한가득 들어 있는데, 색은 또 왜 뿌옇고 탁한지. 그 안에 하얀 무엇인가가 동동 떠 있는, 이전에는 본 적이 없는 생김새의 음식이 나왔다.
"저희 이거 안 시켰는데요?"라며 이야기를 하자 사장님은 의아한 표정으로 "찹쌀 수제비 시킨거 아니라예?"라고 되물으셨다. 머뭇거리며 "맞는데..."라고 했더니 "그기 찹쌀수제비라 안카나"라는 말을 남기며 사장님은 휑하니 사라져 버리셨다. 엄마와 나는 뜨악한 표정으로 정체불명의 음식을 쳐다보았다.
▲ 시장에서 칼국수 시키면 나오는 것 같은 은색 그릇에 미역국이 한가득 들어 있는데, 색은 또 왜 뿌옇고 탁한지. |
ⓒ 백종원3대천왕_유튜브캡처 |
일단 시킨 게 나왔으니 먹기는 해야겠고... 찝찝한 표정으로 한 술 떴는데 흔히 아는 미역국 맛에 고소함이 들이부어진 맛이었다. 첫 인상이 워낙 독특했기에 조심스럽게 한 입 두 입 먹어보았다. 국물을 한 숟갈 떠 먹어보고 미역도 건져 먹어 보았다.
정체불명의 하얀 것도 떠 먹어보았다. 쫀득함이 입안에 퍼지면서 경계심 가득했던 마음이 조금 풀렸다. 안에 하얗게 동동 떠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새알심(팥죽이나 호박죽에 들어가는 찹쌀로 만든 동글동글한 떡) 이었다. 아는 맛과 아는 맛이 합쳐져서 생겨난 새로운 맛의 절묘한 조화였다.
텁텁한 듯 보이는 뿌연 미역국이라니. 게다가 미역국에 떡같은 새알심이 들어 있다니. 그런데 코 끝에서부터 선명하게 느껴지는 동시에 먹는 순간 혀 끝부터 치고 들어오는 이 극강의 고소함은 무엇. 식감은 또 어떤가. 걸쭉한 듯하면서 후루룩 넘어가는 국물에 쫀득하고 부드러운 새알심의 조합이라니. 미역국 한 그릇 먹었을 뿐인데 속이 든든하고 보양식을 먹은 기분이었다. 첫 인상만 보고 인상을 찌푸렸던 조금 전의 내가 미안할 지경이었다.
찹쌀 수제비의 진함의 원천은 북어가 들어간 국물이요, 고소함의 원천은 듬뿍 들어간 들깨가루였다. 북어는 해장에 좋은 만큼 간을 보호하고, 몸 속 노폐물의 배출을 돕는다고 한다. 또한 들깨는 기본적으로 따뜻한 성질이 있어서 신진대사 및 혈액 순환을 촉진하고, 면역력을 증진시키는데도 효과가 좋다고 한다.
특히 일교차가 심한 환절기에는 몸을 따뜻하게 하여 감기 등을 예방하는데 도움을 준다고. 북어를 진하게 우려낸 국물에 들깨가루를 듬뿍 넣은 찹쌀 수제비를 먹고 몸이 따뜻하고 든든하게 느꼈던 것이 비단 나의 느낌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이 외에도 들깨는 노화 방지, 콜레스테롤 수치 감소 등 혈관 건강에도 좋고 기력 회복에도 도움이 된다고 하니 몸이 허하고 으슬으슬 추운 요즘 같은 때에 찹쌀 수제비를 한 그릇 먹으면 오던 감기도 물러나지 않을까.
▲ 시부모님과 어린 조카까지 모두의 입맛을 사로 잡은 찹쌀수제비. 들깨가루를 바로 넣지 않고 국물만 쓰고 걸러낸 듯 뽀얀 국물이 인상적이었다. |
ⓒ 김지영 |
얼마 전에 타지에서 온 식구들을 모시고 식사를 할 일이 있었다. 아이들을 데리고 함께 식사를 해야 해서 근처의 산자락에 있는 편안한 식당으로 모셨다. 닭볶음탕이며 닭 백숙 등의 메인 음식을 시켰는데, 뭔가 이색적인 대구의 맛을 느끼셨으면 하는 마음에 찹쌀 수제비를 한 그릇 추가로 주문했다.
다들 나온 음식의 생김새를 보고 "이게 뭐야~? 미역국이 왜 이래~? 수제비 시킨 것 아니었어?"라는 예상 가능한 반응들이 나왔다. 나는 "일단 한번 드셔 보세요~"라며 맛만 보시라며 조금씩 덜어드렸다.
어른들은 너무 맛있다며 두 번 세 번 더 드셨고, 다음에 오면 이것만 한 그릇 먹고 싶다고 하셨다. 입이 짧은 어린 조카는 "더 주세요"라며 아기 새처럼 입을 쩍쩍 벌리며 받아먹었다. 나의 소울 푸드를 공유하고 남들이 함께 좋아했을 때의 뿌듯함이란.
생각해 보면 사람 관계도 마찬가지다. 겉모습만 보고 그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위험하다. 겉모습을 보고 판단한다는 것은 그동안 나에게 쌓인 익숙한 경험에만 의지를 해서 누군가를 판단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첫 인상이 끝까지 쭉 가는 경우도 있지만. 그게 좋은 인상이든 나쁜 인상이든 간에.
하지만 처음에는 새초롬해 보여서 거리를 두었는데 알고 보니 속 정이 깊은 사람이어서 오래도록 연락하고 지내는 경우도 있고, 처음에는 너무 오지랖이 넓고 말이 많은 것 같아서 멀리하던 사람인데 생각보다 진중한 면이 있는 경우도 있었다. 반대로 사람 좋아 보여서 가까이 지냈는데 된통 뒷통수를 맞은 경우도 있었고.
찹쌀 수제비는 대구에서 칼국수를 파는 집에서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가끔은 분식집 메뉴에 등장하기도 하고, 앞에서 언급했듯이 백숙을 파는 식당들에서도 간혹 찾아볼 수 있다.
요즘도 나는 찬바람이 불거나 몸이 조금 으슬으슬해질 때 꼭 생각 나는 음식으로 찹쌀 수제비를 손에 꼽는다. 혹시 추운 날 대구에 올 일이 있다면 특이한 겉모습을 너그럽게 넘기고, 찹쌀 수제비의 진하고 고소한 매력에 한번 빠져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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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제 개인 SNS에도 게재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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