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심신단련] 느린 사람의 운동, 이렇게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이혜선 2022. 11. 13.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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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이처럼 느려도 나만의 속도로 가고 있는 게 중요

바쁘게 아이들을 키우다보니 어느새 40대. 무너진 몸과 마음을 부여잡고 살기 위해 운동에 나선 엄마들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편집자말>

[이혜선 기자]

토끼와 거북이

토끼와 거북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토끼와 거북이가 경주내기를 했는데, 토끼가 중간에 잠을 자는 바람에 거북이가 경주에서 이겼다는 유명한 이야기. 나는 어릴 때 이 이야기를 좋아했다. 이유는 내가 몹시 느린 아이였기 때문이었다. 엄마 말에 따르면 걸음도 느렸다고 한다. 남들은 돌 즈음 걷는데, 나는 18개월이 넘어서야 겨우 걸었다고 했다. 어디 아픈 거 아닌가 싶어서 여기저기 병원에 데리고 다니기도 했다고.

나는 이해력도 몹시 느린 편이었다. 이해력이 느린 아이는 우리나라 교육제도에서 불리했다. 수업시간에 제대로 이해하기도 벅찼지만, 시험범위를 전부 공부하는데 오래 걸렸다. 남들보다 오랜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스타일이었다. 노력하는 것에 비해 점수도 그다지 높지 않았다.

회사생활도 마찬가지였다. 프로그래머인데, 프로그램에 가장 자신이 없었다. 남들보다 오랫동안 컴퓨터 앞에 앉아 있어야 겨우 일을 마칠 수 있었다. 야근을 할 수밖에 없었다. 빠르게 이해하고, 적응하며, 앞서 나가는 사람들을 보면 자괴감이 들곤 했다. 어른이 되면서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도 나에게 위로가 되지 못했다. 세상엔 잠을 자지 않는 토끼 같은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운동을 하면서도 마찬가지였다. SNS에서는 3개월 만에 10킬로그램 감량, 6개월 만에 복근 완성 같은 인증들이 넘쳐났다. 하지만, 내 몸무게는 1개월에 1킬로그램 빠지면 성공한 것이었다. 게다가 정체기가 있어서 운동을 열심히 해도 몸무게가 안 빠지는 달도 있었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할 수 있었던 건 트레이너 덕분이었다. 

몸을 적응시키며 나아가기
 
 천천히 올리고 내려도 땀은 나고 칼로리는 소모된다. 속도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 이혜선
 
트레이너는 무리하지 말고 몸을 천천히 적응시켜 나가라고 했다. 식사조절도 절대 배고프게 하지 말라고 했다. 단기간에 굶는 것보다 조금씩 자주 먹으면서 몸을 적응시켜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워낙 느린 사람이었던지라 트레이너의 방식이 나에게도 잘 맞았다. 단기간에 성과를 내는 것보다 장기적으로 몸을 적응시킨다는 말이 좋았다. 

또한 트레이너는 무게를 들어 올릴 때 속도를 천천히 하라고 요구했다. 무게를 버티면서 올리고, 버티면서 내려놓으라고 했다. 웨이트 정보를 얻으려고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를 보면 단기간에 무거운 무게를 번쩍번쩍 드는 사람도 있던데, 작은 무게를 천천히 올리고 내리라고 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천천히 해야 자세를 고칠 수 있어요. 빠르게 하면 틀린 동작을 바로 잡을 수 없어요. 운동경력이 짧은 사람이 무리하게 운동하다 부상을 당할 수도 있고요. 중요한 건 몸을 적응시키면서 발전하는 거예요."

들어보니 웨이트도 여러 가지 프로그램이 있고, 운동을 처음 한 사람과 오랫동안 한 사람의 운동 프로그램이 다르다고 했다. 처음 PT를 등록할 때 운동하는 목적이 무엇이냐고 물었던 이유이기도 했다.
 
 웨이트는 나에게 여러모로 잘 맞았다. 그냥 혼자서 조용히 무게를 올렸다가 내려놓으면 될 일이었다.?
ⓒ elements.envato
 
나는 바디프로필을 찍거나 단기간에 벌크업(식사량 조절과 강도 높은 운동을 통해 근육량을 늘리고 체력을 키우는 일)을 할 생각이 없었다. 전체적으로 몸무게를 줄이고, 균형잡힌 몸매를 만들어 오래 유지하고 싶었다. 트레이너의 의견에 따라 나는 천천히 움직이는데 집중했다.

열심히 운동하는 것에 비해서 몸무게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다소 실망스러웠다. 그래도 열심히 했다. 나의 장점은 빨리 하지는 못해도 꾸준히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 면에서 웨이트는 나에게 여러모로 잘 맞았다. 누군가와 경쟁할 필요도 없었고, 공을 맞받아치는 상대가 필요한 운동도 아니었다. 그냥 혼자서 조용히 무게를 올렸다가 내려놓으면 될 일이었다. 

어느 날, 트레이너가 바디라인이 달라진 것 같다고 했다. 몸무게가 꿈쩍하지 않으니 나도 인바디 수치가 궁금했다. 대체 왜 몸무게가 안 빠지는지. 알고 보니 전체적인 몸무게는 그대로였지만, 내부는 변화하고 있었다. 체지방만 쏙 빠지고 골격근량이 늘어 있었다. 그러니 전체적으로 몸무게는 많이 줄어들지 않게 보였던 것이다. 

"전혀 변화가 없는 줄 알았더니 체지방이 빠지고 있었군요!"
"누구나 할 수 있어요. 다만 시간이 걸릴 뿐이죠."

골격근이 늘자 몸의 변화도 있었다. 얼마 전 가족들의 코로나 확진으로 약 2주간 집에 머물렀다. 아이들부터 시작된 코로나 확진은 남편으로 나에게로 옮겨져, 자가격리가 길어졌다. 그동안 운동은 하나도 하지 못했다.

아픈 가족들이 집에 있으니 운동할 시간이 없었고, 마지막으로 나까지 코로나가 확진되어 약 2주간 집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 코로나로 심하게 아픈 며칠을 제외하고는 먹는 것도 잘 먹었다. 먹으면서 '또 엄청 몸무게가 늘어나 있겠군'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몸무게는 생각보다 많이 늘지 않았다. 0.5킬로그램이 조금 늘었다가 며칠 운동하니 금세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이후에도 좀 많이 먹었다 싶은 날엔 조금 늘었지만, 하루 이틀 운동하면 다시 줄었다. 운동을 시작한 이후의 인바디를 돌아보니 몸무게가 계단식으로 줄어들었다. 한동안 정체되어 있는 듯 하다가 빠졌고, 또 다시 정체기를 거치다가 줄어들었다.

천천히 몸을 적응시키면서 1년 동안 몸무게 7킬로그램을 감량했고, 최근 다시 1킬로그램을 감량했다. 복근은 아직 멀었지만, 내장지방 비율은 8에서 6으로 낮아졌다. 세상엔 빠른 시간 내에 살을 빼고 복근을 만드는 사람들이 많지만, 나는 나만의 속도로 가도 언젠간 그 지점에 도달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을 얻었다. 

느린 사람의 운동
 
 거북이처럼 느려도 나는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 rayhennessy, 출처 Unsplash
 
나는 지금도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를 본다. 빠른 시간 내에 멋진 몸매를 만드는 사람들이 지금도 종종 부럽다. 하지만, 이내 나에게 돌아와 '지금도 괜찮아. 충분히 잘하고 있어'라고 다독일 줄 알게 되었다.

어차피 빨리 가는 사람이나 늦게 가는 사람이나 시간만 다를 뿐, 언젠가는 자신이 원하는 목표에 도달해 있을 테니까. 특히나 습관으로 만드는 운동은 경쟁이 중요한 것이 아니니 그저 내 속도에 맞추어서 가면 그만인 것이다. 

물론 천재성과 노력을 겸비한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그 사람들만의 고민이 또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나처럼 평범하다 못해 느린 사람들은 어쩌면 가장 쉬운 해답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자신만의 속도로 가면 되니까. 

다시 토끼와 거북이를 생각해본다. 잠자지 않는 토끼는 목표에 가장 빨리 도달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토끼는 다음 목표를 향해 또 뛰지 않는 한 제자리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만큼 지루한 것이 또 있을까.

잠도 오래 자면 질리는 법이다. 결국 다음 목표를 향해 또 뛰어야 한다. 느리게 가더라도 다음 목표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재미있는 일인가. 나의 다음 목표는 2킬로그램을 더 감량하는 것이다. 오늘도 나는 천천히 나만의 속도로 무게를 올리고 내린다.

《 group 》 엄마의 심신단련 : http://omn.kr/group/good_well
바쁘게 아이들을 키우다보니 어느새 40대. 무너진 몸과 마음을 부여잡고 살기 위해 운동에 나선 엄마들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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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이혜선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blog.naver.com/longmami)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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